반란斑爛이 하 봄 꽃 또 피었네. 바람이 향기를 훔쳐 꽃잎 흩어지는 날이네. 몸 누인 나무아래 하늘의 별들과 잠들기 전 꽃잎처럼 쏟아지는 은하수를 볼 수 있으면 좋은 밤이네. 찰나를 건너는 반란 말일세.1.분별없이 따라나선 길 위의 시간 이제 보내야겠네. 기대의 끝이 여행이라 여기지만 실은 우연의 사소한 시작점일 뿐이라네. 팽팽한 시위를 견디며 걸려있던 내일은, 오늘 여겼던 것들이 무너지는 또 하루의 연속에 다름없더군. 멀리 날아갈 수 없는 깃빠진 화살이란 걸 알았다면, 꽃길 밟는 봄날처럼 낙엽 위에 흘려 쓴 필흔이나 눈밭을 들끓으
듬 북 장 심 춘 자서둘러 도착한 겨울 양식糧食 보퉁이가 작아졌다.해가 갈수록 작아지는올해가 마지막일지 가슴 가운데 바람길이 생겼다.콩 볶는 냄새타닥타닥 무쇠솥 아궁이에서 장작 타는 소리검불 골라내다 꾸벅이는 겨울밤보퉁이 안에서 싸락눈이 보글보글 내렸다.달그락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두부 넣고 끓이면 심심한 국이 되고 양 볼에 살이 올랐다. 양미리 몇 마리 둥둥 띄워 김장 김치 쫑쫑 끓이면 간간한 찌개가 되고 고단을 녹이는 안주가 된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아득한 구수함설해목 쓰러지고눈밭을 뛰는 노루 발자국 마을로 내려오면그리
야생 장미올라브 하우게(Olav H. Hauge)/임선기 번역 꽃노래는 많으니나는 가시를 노래합니다.뿌리도 노래합니다-뿌리가여윈 소녀의 손처럼얼마나 바위를 열심히붙잡고 있는지요올라브 하우게의 시집 ‘어린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중에서* 올라브 하우게(Olav H. Hauge) (1908 ∼ 1994) 우리가 만나는 다듬어진 장미는꽃잎도 줄기도 잎도 모두 매끈하고 예쁘다.가시가 없는 품종도 있고 상품으로 나올 때는 가시를 제거한다.고객의 요구에 맞게 색감도 형태도 날이 갈수록 달라진다.손에 잡고, 향을 맡고, 가까이 두어 생명을 느낀다
불문부답不問不答 두서없는 편지 같다부푼 열매처럼이별을 기다리는 검은 몸비닐은 침묵으로 펄럭인다등을 채근하며마른가지도 주억거린다지겹게 싸워온 바람을 안고숭숭한 마른 뼈로 내려서는상처투성이 고요 *이하 (본명; 이창호) 울진읍 출생 경희대학교 졸업 2020년 웹진 시인광장 제10회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현재 경희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 전공
울고 들어온 너에게김 용 택 (1948∼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두 손으로 감싼다 언어는 의미의 서술을 위해 동작한다.말은 언어를 빌려 소통의 길을 연다.소통의 길을 연다는 것은 독자와의 새로운 모색과 공감의 세계의 합일을 이루어내는 극치의 표현수단이며 그것이 시詩가 되는 것이다.의미를 비틀었던 은유와 비유 환유와 시인의 몽유까지도 독자는 반드시 알아내야(해석하거나)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용에 담긴
무월舞月*에서 1.친구는 참혹한 광란의 풍경을 전송해 주었다.경계의 눈(雪)이 스러지자 붉게 덮인 잿빛 연기로 가득 채운 허공속을 먼지처럼 새들이 날고 있었다. 맹렬한 짐승의 무리에 쫓겨 탄식도 없이 쓰러진 낮은 지붕들만 뻘겋게 웅크리고 있었다.붉은 해무가 빨리 걷히길 망연히 하루하루를 기다리고 있었다.화선(火扇)을 따라 소용돌이치는 바람이 에워싸고 있었다. 노을보다 위태로운 화염이 골짜기를 타올라 능선은 넘치듯 끓고 있었다. 비극의 해는 능선으로 매일 떠오르고 침묵의 잔해들만 검은 피를 흘리며 서 있었다.깃발 펄럭이는 바람에 몸을
추수秋收 추석이 한참 지났는데곧추 자란 피만 잘 여문 걸 보니바깥어른 편찮으셨는가 보다 이른 봄부터 늦여름조석朝夕으로 나뭇짐을 부리시더니누굴 위한 채비였었나 보다 안마당 장독대 갈무리까지 잘 마친 걸 보니 안주인여행이라도 가실 모양인가 보다 널고 털어 말리던 가득했던 마당 비워진 걸 보니바쁜 빚이라도 갚으려 하셨나 보다 마른 바람만 떠도는 이 계절을먼 사람을 다시 또 만나고 싶어셨는지... 몇 남지 않은 마을은짧아진 날을 세는 낡은 지붕으로하현달잘 익은 호박처럼 걸려있고 먼 데서 바람 몰고 온 한 철눈길만 어둑해진다
흘음吃音 이하(李下)이화령梨花嶺을 뒤쫓아 넘어 온 능선들새재에 이르러 붉은 얼굴로 취해 있었다내 뒤를 따라 오르며그녀 가슴을 적시고 떠도는 노래 오랜 인연의 이름 떠나보내고 있었다먼 사내를 향해 입술을 떠난 날 선 몇 마디뱀의 혀처럼 소름 돋아 있다터벅거리는 길 어깨 건너 새는 접은 몸 숲 깊이 숨기고 있다컴컴한 계곡을 지난 바람 휘청거리며 쓸고 온 것인지 느린 숲의 발등 더욱 서늘해진다 서리 맞은 달빛 그녀의 음율音律보다더 시리진 않았을 거다 황량으로 내버린 마음 가 닿을 수 없어연흔緣痕 허문 무주無主를 바위에 새기려던 건 아닌지
슬픈 등뼈 김윤배 가이드는 사파리를 안내하며 읊조리듯 말한다 아프리카 남부 오지로 들어가면 불륜을 저지른 남녀를 매달아 달리게 하는 형벌이 있습니다 추장이 지휘하고 부족 모두가 이 극형장면을 보게 됩니다 모든 정염이 잿빛으로 변한다는 걸 알았다하더라도 달빛을 꺾었을 남녀입니다 정오가 되면 남녀를 묶어 말에 매답니다 궁사는 말 엉덩이에 화살을 쏩니다 말이 놀라 뛰기 시작합니다말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옵니다돌아온 말의 로프에는 남녀의 등뼈가 매달려 있습니다밀림은 검게 빛나고 별들 광활한 어둠 속으로 숨습니다달빛은 등뼈를 희미하게 비춥니다
설화說話 경북 울진 불영사 대웅전돌계단 아래용궁에서 파문당한 거북 두 마리지상연옥은 피할 수 없었던지천축을 건너온 부처에 사로잡혀수천 년 참선에 들고 있다 꼬리는 감출 수 없어 본존本尊 탱화에 남기고억겁에 두터운 *금진金塵을 등에 얹고 있다 동트기 전세상을 깨우는 목어木魚가 울 때마다긴 목을 빼고막막한 세상으로 포행布行을 나선다 *무쇠처럼 무거운 먼지나 티끌. 안녕하세요? 시인 이하입니다. 출향인의 한 사람이며 또한 시인으로 본지를 통해 고향 선후배님들께 인사드리게 되어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코로나 시대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그거 아는지 모르겠다.그리움을 달래는 방법도 계절마다 다르다는 거 말이다.물론 사람마다 다른 것은 기본이고... 난 말이다.날이 좋은 날에는 별의 다섯 모서리에 그리움을 걸어둔다.모서리가 튼튼하여 떨어질 리가 없고, 그리움이 곰팡이 나고, 좀먹는 일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눈오는 날의 그리움은 어떻게 하나???오늘처럼 이렇게 그리움을 다듬어간다. 나만의 의식처럼...그러고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이 조금씩 온도가 낮아진다.그러나 정여울 작가는 "그리움도 살았는 생명체와 같아서 제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저 살려두는 수밖에 없다."고 했
평소에는 사감선생님처럼 차가운 시선을 간직하고 살았을지라도 훌훌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 떠나는 순간에는 어린왕자와 같은 따사로운 눈빛이 된다.귀농하여 내게 벅찰 정도의 농사를 땀흘려 지었고, 누구보다 바닥부터 기었다.그것은 내가 기본을 배우기 위함이었기에 후회는 없다.그러는동안 나도 모르게 기초공사 정도를 하였다고 볼 수 있고, 내가 생산한 농산물로 조금씩 가공을 하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뚜벅뚜벅 길을 가고 있다.그런 중간중간 바람이 들듯 훌쩍 자리를 떠나 나를 돌아보고 내가 꿈만 꾸는 것들을 햇볕에 쬐이곤 한다.그 몸
산골에 봄이 왔음은 무엇으로 판가름할까?다른 지역에 매화가 피었느니 어떻느니 침튀길 때 산골은 뭔 소리냐는 듯 폭설이 내린다.산골의 봄은 생강나무꽃으로 판가름 난다.지금 산골 주위에 생강나무꽃이 피었으니 봄은 맞다.그러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눈에, 서비스로 우박이 쏟아질 때도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초보농사꾼의 얼굴에 유난히 호기심이 그득하다.워낙 호기심이 많은 남자와 살다보니 그의 표정이 내게 전염될 때가 많다. 초보농사꾼의 호기심 발원지는 슈
나의 귀농을 몇 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난 뭐라 말할 수 있을까.분명한 건 이 단어를 빼면 나의 귀농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자연, 책, 여행 그리고 내 의지대로 굴러가는 느림의 삶!!!그 중 여행의 한 파편을 이야기하려고 한다.내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이다.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모두가 다 혼자다.“라고.... 우리는 좁은 계단을 따라 마음의 방마다 들어찬 고독과 마주서기 위해 떠나야 하고, 혼자라는 것을 더욱 뼈저리게 인식하기 위해 떠나고, 질척거리는 삶 속
(2009년 8월 글이다)비가 온다.아침부터 오는 비가 하도 반가워 마당을 어슬렁거렸다.한참 기분 째지게 걷고 있는데 발 아래 떨어진 꽃이 가슴 철렁하게 만든다.봄부터 여름 내내 키만 키우며 나의 애간장을 다 태운 생명이 있었다.내 키만만 백합 한 그루!!마을의 대소사를 공지하는 이장님네 스피커처럼 얼마 전부터 동서남북을 향해 꽃을 피웠었다.꽃밭의 다른 꽃들이 그를 우러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일단 기럭지에서 밀렸으므로...그렇게 새하얀 얼굴로 산골가족의 가을 기분을 좌지우지하던 백합이 그만 땅에 떨어진 것이다. 사
어느 날, 그가 말했다.“나 겔(Ger) 하나 사고 싶은데...”나는 겔이 유목 텐트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머리에 바르는 젤인 줄 잘못 알아들었다.그런데 유목민들이 초원에 치는 그 겔을 말하는 거였다.순간, 벼락같은 충격을 받았다.‘이건 뭐지?’ 난 17년 전에도 이런 벼락을 맞았었다.그때도 그는 너무 자연스럽게 “귀농하고 싶은데......”했었다.그는 현대자동차 소장이었고 그 지역부에서 최연소 소장으로 자신을 길을 빡세게 달리고 있었다.그런 그가 내뱉은 ‘귀농’이라는 말은 불덩이 같아 주워 담을 수도 없었고, 집
앞의 글에서 말했지만 1년 동안 노지에서 자란 슈퍼 약도라지를 올 봄에 캤다.네 농가가 모여 도라지를 캐고 각자의 집으로 도라지를 나누어 갔다.지금껏은 네 농가가 공동으로 슈퍼 약도라지를 키웠지만 이제부터는 각자의 몫이다.각자의 색깔대로, 각자의 자연 조건에서 키워야 한다.4월은 워낙 바쁜 농사철이다 보니 바로 정식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물기가 빠져나가기 전에 바로 가식을 하기로 했다. 가식을 안하고 미루다가 고생해서 키운 것 혹여 하나라도 죽일까봐 그 날은 늦은 시간까지 도라지 밭 정리까지 하고 헤어지느라
청춘일 때, 여름이면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 중 하나가 ‘해변으로 가요.’가 아니었을까.“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대학 때, 과 친구들과 어느 섬으로 놀러갔을 때의 그 쏟아지던 별들을 잊지 못한다.요즘 뜨고 있는 책 중에 (부제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에 나오는 대목을 읽으며 난 또 그 섬에서 본 별들을 떠올렸다.이 책을 쓴 정재찬 교수는 말했다.“별은, 밤하늘에 쓴 신의 시”라고...밤하늘에 쓴 신의 시라는 표현에 가슴팍으로 별이 별이 들어와 앉는다.이 글을 쓰는 오늘,
난 여행을 갈 때마다 “우리는 추방당한 후에야 비로소 그곳이 낙원이었음을 깨닫는다.”는 헤세의 말을 옹알이하며 주섬주섬 서둘러 짐을 싼다.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이번에는 청춘인 딸이 입에서 ‘봄’ 하면 개구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어느 날, 뜬금없이 전화하여 던진 말 덕분에 울타리를 털고 나서게 되었다. “엄마, 나 엄마랑 유럽 배낭여행 가고 싶은데, 우리 뜨자.”딸아이가 자신이 아르바이트하여 번 돈을 개미처럼 모아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지 채 두 달도 안되어 다시 내지른 말이지만 그 딸에 그 엄마라고 몇 초의
“차를 혼자 마시는 것은 제일 제대로 마시는 것이고,둘이서 마시는 것은 잘 마시는 것이고,3~4인이 함께 마시는 것은 그저 맛을 보는 정도이고,5~6인이 마시는 것은 제대로 마신다고 할 수 없고,7~8인이 둘러앉아 마시면 차를 보시는 하는 것이다. “ 이 기막힌 말은 중국 당나라 때 문인 육우가 쓴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 에 나오는 대목으로 알아요.정말 그런 것 같아요.차를 여럿이 침튀겨가며 마시고 돌아오면 왠지 차 맛은 생각나지 않고 말, 말, 말만 머리에 말풍선처럼 둥둥 떠다녀요. 그러나 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