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도서관에 갔다가 '능소화'라는 소설책을 하나 발견했다.습관적으로 첫 표지를 넘기자 '원이 엄마의 편지'라는 제목의 속지가 나왔다.그 안을 보니 400년 전에 남편의 무덤에 넣은 아내의 편지가 소개되어 있고, 1998년도, 무덤 속 편지에 대한 신문기사 내용이 연이어 소개되어 있었다.그 당시 KBS '역사 스페셜'에서도 이 내용을 다루어
얼마 전에 수원에 있는 농수산식품 연수원으로 2박3일 교육을 갔었다.이 교육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2박 3일을 1차, 2차, 3차에 걸쳐 즉, 3개월 동안 이루어지는 교육이다.자기 부담 교육비가 있었지만 좋은 교육이기에 거리와 비용을 마다 않고 갔었다.귀농하고 초보농사꾼이나 나나 끊임없이 교육을 다닌다.주로 비싼 자기 비용과 교통비를 치르면서도 좋
산골에 새인연이 된 접시꽃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햇살이 비추면 세상이 죄다 보일 정도로 꽃잎이 투명하다.한번에 피어재끼는 백합과는 달리 아래서부터 순차적으로 꽃을 피운다.위의 꽃이 피면 아래 꽃은 쉽게 얘기해서 사라져준다.즉 자리를 내어줄줄 안다는 거다.그것도 꽃잎이 흩어져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정사정 없이 제 몸을 통째로 떨군다. 시간을 끌지 않는다.
오늘은 읍에 다녀오다가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 꾀골재 할머니를 보았습니다.일단 차를 세워 할머니를 부르니 너무 반가워하십니다.아무 연고도 없이 울진으로 온 산골가족을 늘 친 혈육처럼 이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우리 반 할머니... 길가에 죽 내놓은 짐을 차에 실으니 미안해 하십니다.우리 집 꺾어지는 곳에서 내려 달라신다. 기름값 비싸다고... 들
산골은 잔디꽃에 이어 지금은 금낭화가 한창입니다. 팔뚝에 이쁜 주머니를 죽 걸고 나와서는 바람에게 아양을 떱니다. 헤어스타일은 얼굴 양쪽으로 묶은 것도 모자라 위로 틀어 올렸네요. 그러더니 이내 바람과 놀아나고 있습니다.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니 삐삐 머리를 한 소녀들 같습니다. 멀리서도 소녀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듯하여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네요.살면
귀농하고,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에게 편지를 쓴다.뻑하면 배신 때리고, 그 놈의 입 간수 못해 내가 한 말 죄다 남의 귀에 쏟아 부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보다 귀농하고 너를 믿고 한 말이 참으로 많았다.너에게는 기쁜 일보다는 속앓이를 하는 일을 더 털어 놓았었지.주현이가 아프다고, 그래서 오늘 포항 병원에 다녀왔다고, 초보농사꾼과 말다툼했는데 참 밉다고
달력을 찢었습니다.7이라는 숫자가 어찌나 씨게 달려드는지 뒤로 자빠질뻔했습니다.벌써 한 해의 반을 살았습니다.살았는지, 그저 흘려 보냈는지는 나만이 아는 일이겠지요.오늘같은 날, 뒤로 남아있는 반년을 생각하며 이를 꾹 깨물고, 양손에 힘을 불끈 줘보지만 해마다 연말의 결과물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습니다.7월,인디언들은 이 달을 사슴이 뿔을 가는 달이라고도 했
선우야,오늘은 답운재밭에서 아빠와 퇴비 뿌리는 일을 도왔어.원고 정리하느니 뭐니 하면서 아빠 일을 못도와 드린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오늘은 삽들고 나섰지. 아빠는 엄마 책내는 원고 일이나 하라셨지만 농사 일이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누가 옆에서 조금만 거들어 주어도 한결 수월하잖니. 오랜만에 답운재밭을 갔더니 밭 옆 개울가에 양
귀농하면서 아이들과 약속한 것이 달랑 둘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한 해에 최소한 한번은 기회가 닿는대로 다른 나라 사람들의 풍습을 익히고 삶의 모습과 그 문화를 배워 보자는 것이었다. 해마다 그 약속을 지켜 왔고 올해도 땜빵할 차례가 되었다. 지난번에는 주현이가 여행을 골랐으니 올해는 선우가 여행지를 고르게 되어 있었다. 선우는 뜸도 들이지 않고 거침없이 &
아침에 새들의 노래 소리에 눈을 떴다. 그 추운 겨울에는 어디서 몸을 피하고 있다가 이렇게 봄이 왔다고 떠들어 대는지 신통하기까지 하다. 도시에서는 그 놈의 고막을 터뜨릴듯한 사발시계의 철 후려치는 소리에 잠을 깨다보니 하루 중 골 때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소리에 잠을 깬 산골의 아침은 머리가 온화하다. 거기에 햇살까지 보태주면 무엇
친정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서울에 갔었다. 어제 맘 같았으면 새벽차를 탔어야 옳았다. 그러나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이 있다고 했듯이 발목을 잡는 급한 일들.... 첫차 놓치고, 둘째, 셋째 차 놓치고....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발을 동동거리다 탄 서울행 버스.... 그렇게 목동의 한 병원에 도착하여, 달랑 한 시간 엄마 얼굴을 눈에 넣고
몇 날 며칠 동안 이삿짐을 날랐다. 오두막을 허물고 그곳에 새 보금자리를 짓기로 했기때문이다. 남들은 말한다. 새 집을 짓게 되어 얼마나 좋으냐고. 그러나 대답은 No다. 좋기보다는 '추억어림'때문에 어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심한 날은 가슴이 울렁거리고 우울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나처럼 철저히
안개 비 오는 날의 연속이라 그런지 노을이 갑자기 그립다. 짱짱했던 해가 막 좌판을 걷을 무렵이면 먼 산 아래 노을이 붉은 속살을 펼쳐 보이곤 했었던 가을날들. 그 붉은 속살 아래 서면 내 얼굴도, 오두막도, 노란꽃도 모두가 덩달아 붉게 전염된다. 뚜렷한 형체는 어디로 가고 노을의 관리하에 들면 모든 것이 부드러워지고 몽롱해진다. 노을의 구성 성분에 환각제
요즘 아침 잠을 깨워주던 새들이 기특하기만 했다.창호문 가까이에다 대고 모닝콜을 해주니 하루가 도시에서보다 부드럽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여간 고마운 존재가 아니다.그런데 요즘 또 하나 터득한 것은 그런 새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거다.아침에나 인식했던 새들을 밭에서 일할 때도 그들과 늘 함께 있다
철늦은 민들레꽃의 샛노란빛이 화사하기 보다는 측은하다.남들은 벌써 다녀갔건만 무엇을 하다 이제서야 홀로 피어 섞이지 못하는지.그 집안에 복잡한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몸살을 앓다가 이제야 몸을 추스려 그래도 제 할 일을 하려고 서둘러 늦은 꽃을 피운 것인지...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나처럼 성격이 느긋하여(좋게 얘기하면 느긋하고 좀더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느려
생강나무꽃, 개나리, 진달래, 금낭화, 붓꽃 순으로 산중의 봄을 장식하는 꽃들...지들끼리 묵언의 약속이 있었던 것처럼 해마다 그 순서는 꼭 지켜져 피고 진다.뭐 어쩌다 뒤바뀔 수도 있으련만 어떤 자연의 충격요법에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굳건한 것만은 두 눈으로 해마다 확인하고 있다.뻑하면 배신때리는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그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내가 멀리 떨어진 뒷간가는 길로 들어서면 철지난 밭에 앉아 있던 새들이 일제히 파드득거리며 놀라 날아아간다.눈이 더 오기 전에 겨울양식을 마련하려 했는지, 연말이라고 일가 친척이 모두 모여 망년회를 하는지 몰라도 내가 방해를 한 것같아 슬 미안해진다.저러다가도 눈이 사정없이 내리면 온다간다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그럴 때 뒷간가는 길이 허전함은 말하면 잔
귀농 전, 둘이 월급을 탈 때는 서로의 월급의 소중함이나 애틋함이 덜했음을 고백한다.'나도 이만큼 버는데...'하는 되먹지 않은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그러나 귀농하고는 더 적은 수입인데도 뙤약볕에서 함께 땀흘리고 함께 고생하여 얻다보니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혼자 잘나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죽으나 사나 부부가 힘을 합해야 수레가 굴러가는 그런 시스
눈이 펑펑 온다.저 혼자 오게 두면 좋으련만 바람은 썩은 고기를 본 하이에나처럼 어디서 타났는지 단박에 참견을 한다.눈을 이 골짜기로 몰고 다니고 저 골짜기로 몰고 다닌다.눈이 줏대없어 보인다.그러나 그것도 보는 이의 편견일 뿐.둘은 서로 좋아 산골을 휘젓고 다니며 그들 방식대로 망년회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들의 휘날림에도 리
12월의 숲은 온몸으로 운다.잎이 무성한 오뉴월의 숲이 상체로 우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온몸으로 이를 악다물고 울어서인지 날카롭다.그래서인지 듣는 이에게 그들만의 문자로 문자메시지를 금방이라도 박을 것만 같다.그러나 머리숫이 많은 상체를 뒤흔들며 우는 소리는 웅장하다.온몸에 걸치고 있던 것들을 다 떨구어 내고 투명한 몸으로 우는 겨울의 그들.그래서 12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