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행차하기 전, 호롱불 마냥 별 하나가 먼저 나와 다른 별들의 길을 터놓는다.그러면 다른 별들이 팝콘터지듯 이내 하늘에 삐져 나온다.그것을 보며 인생사에도 다른 이의 등대가 되어 주는 사람이 있음을 생각해 본다.그것을 보며 건조하고 뻑뻑하게 돌아가는 인생사에도 사람 사이에 녹슬지 않고 잘 돌아가도록 구리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나는 등
“언제나 나는 나의 입이 노래하면 나의 귀가 들을 뿐이구나”라고 니체가 탄식했다지.절절하고 애절한 고독의 극치구나 생각했었다.그러나 자연에 기대어 아니 얹혀서 살다보니 그 보다 더 절절한 것은 노래도 가슴으로, 후렴도 손가락의 끄덕임과 함께 가슴 안에서 불러재끼면 인디언들이 가슴 속 가슴이라고 하는 영혼이 들을 뿐인 고독의 참맛을 알게
초보농사꾼이 오늘은 겨울준비를 하러 갔다.어제도 그의 애마 세레스에 한 차 가득 나무를 해왔는데 오늘도 나무를 하러 갔다.연식이 오래된 세레스는 내게 인사라도 하듯 시커먼 연기를 뿜어주고 사라졌다.날이 저물려고 망설이는 시간.썩은 세레스가 늙은이 가래끓는 소리를 내며 가까이 닥아온다.쌩소리나게 나가보니 어제보다 더 많은 나무가 실려 있고 그의 어깨에 힘이
눈이 온다. 비가 왔었는데 어느새 눈으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는 소리없이 오니까. 어느 시인은 눈오는 소리를 여인의 옷벗는 소리라고 표현했던데 난 아직 옷벗는 소리를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귀고래를 소제하고 마음을 청정하게 먹고는 얼굴 양쪽에 붙어 있는 구멍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는 사이 눈을 쌓이고 쌓여 고립이 되었고, 내가 원하는 소리는
산골의 겨울 바람은 강도가 단순하다. 강아니면 약.드셀 때는 지붕이 다 날아갈 정도로 강하고, 안그러면 바람이 부는지 마는지 그저 싸늘한 기운만 온몸을 감싸는 그 정도다.거기다가 지붕 아래 풍경을 걸어두었는데 얼마나 바람과 놀아났는지 절단이 났다. 그만 꼭지가 떨어지고 만 것이다. 난 풍경을 좋아한다.풍경을 보면 절이 생각난다.나는 성당을 다니지만 절과 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고 니체가 풍선에 바람 넣듯 자꾸만 넣어줍니다.귀농 전같았으면 '좋은 말이군'하는 반응으로 끝장냈겠지만 울진의 산자락에 들어와 사는 지금은 니체 말마따나 이 인생을 다시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목에 핏대 세우며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니 물위를 걷는 게 기적이
숲은 천연염색 강연장이다.수강자가 있든 없든 제 몸을 하루가 다르게 염색해 보이며 가을을 강의하고 있다.형형색색으로 염색이 잘 되었다 하여 그것을 뽐내거나 거들먹거리지도 않고 그것에 연연하지도 않는다.때가 되면 그 아름다운 옷도 다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겨울을 난다.인간사에서는 정신나간 행동임에 틀림없다.인간이야 작은 거 하나라도 손에 들어오면 꼭 쥐고 놓을
농부들이 여름이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풀과의 전쟁이라는 말이다.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풀과의 전쟁은 이미 끝났고 지금은 패자부활전 아니면 부상병 치료를 할 때이다.주로 패자는 농부이고 부상병 또한 농부이다.당연하다.자연을 이겨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그러나 자연은 배려하는 마음도 깊어 그 부상병을 위해 파란 하늘을 선물로 준다.파리디 파란, 눈이 시리도록 파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갔다가 '능소화'라는 소설책을 하나 발견했다.습관적으로 첫 표지를 넘기자 '원이 엄마의 편지'라는 제목의 속지가 나왔다.그 안을 보니 400년 전에 남편의 무덤에 넣은 아내의 편지가 소개되어 있고, 1998년도, 무덤 속 편지에 대한 신문기사 내용이 연이어 소개되어 있었다.그 당시 KBS '역사 스페셜'에서도 이 내용을 다루어
얼마 전에 수원에 있는 농수산식품 연수원으로 2박3일 교육을 갔었다.이 교육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2박 3일을 1차, 2차, 3차에 걸쳐 즉, 3개월 동안 이루어지는 교육이다.자기 부담 교육비가 있었지만 좋은 교육이기에 거리와 비용을 마다 않고 갔었다.귀농하고 초보농사꾼이나 나나 끊임없이 교육을 다닌다.주로 비싼 자기 비용과 교통비를 치르면서도 좋
산골에 새인연이 된 접시꽃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햇살이 비추면 세상이 죄다 보일 정도로 꽃잎이 투명하다.한번에 피어재끼는 백합과는 달리 아래서부터 순차적으로 꽃을 피운다.위의 꽃이 피면 아래 꽃은 쉽게 얘기해서 사라져준다.즉 자리를 내어줄줄 안다는 거다.그것도 꽃잎이 흩어져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정사정 없이 제 몸을 통째로 떨군다. 시간을 끌지 않는다.
오늘은 읍에 다녀오다가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 꾀골재 할머니를 보았습니다.일단 차를 세워 할머니를 부르니 너무 반가워하십니다.아무 연고도 없이 울진으로 온 산골가족을 늘 친 혈육처럼 이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우리 반 할머니... 길가에 죽 내놓은 짐을 차에 실으니 미안해 하십니다.우리 집 꺾어지는 곳에서 내려 달라신다. 기름값 비싸다고... 들
산골은 잔디꽃에 이어 지금은 금낭화가 한창입니다. 팔뚝에 이쁜 주머니를 죽 걸고 나와서는 바람에게 아양을 떱니다. 헤어스타일은 얼굴 양쪽으로 묶은 것도 모자라 위로 틀어 올렸네요. 그러더니 이내 바람과 놀아나고 있습니다.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니 삐삐 머리를 한 소녀들 같습니다. 멀리서도 소녀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듯하여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네요.살면
귀농하고,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에게 편지를 쓴다.뻑하면 배신 때리고, 그 놈의 입 간수 못해 내가 한 말 죄다 남의 귀에 쏟아 부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보다 귀농하고 너를 믿고 한 말이 참으로 많았다.너에게는 기쁜 일보다는 속앓이를 하는 일을 더 털어 놓았었지.주현이가 아프다고, 그래서 오늘 포항 병원에 다녀왔다고, 초보농사꾼과 말다툼했는데 참 밉다고
사람은 대부분 잠재적으로 때가 되면 막연하게 어디론가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사는 것같다. 연어처럼....어떤 이는 때를 잘 가릴 줄 알아 살아 생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어떤 이는 그러지 못하고 소풍나온 좌판을 접는다는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교직에 한 평생을 몸 바치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온 서면 쌍전리 새밭의 어느 귀향인을 만나 보았다.▷ 대부분
달력을 찢었습니다.7이라는 숫자가 어찌나 씨게 달려드는지 뒤로 자빠질뻔했습니다.벌써 한 해의 반을 살았습니다.살았는지, 그저 흘려 보냈는지는 나만이 아는 일이겠지요.오늘같은 날, 뒤로 남아있는 반년을 생각하며 이를 꾹 깨물고, 양손에 힘을 불끈 줘보지만 해마다 연말의 결과물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습니다.7월,인디언들은 이 달을 사슴이 뿔을 가는 달이라고도 했
선우야,오늘은 답운재밭에서 아빠와 퇴비 뿌리는 일을 도왔어.원고 정리하느니 뭐니 하면서 아빠 일을 못도와 드린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오늘은 삽들고 나섰지. 아빠는 엄마 책내는 원고 일이나 하라셨지만 농사 일이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누가 옆에서 조금만 거들어 주어도 한결 수월하잖니. 오랜만에 답운재밭을 갔더니 밭 옆 개울가에 양
귀농하면서 아이들과 약속한 것이 달랑 둘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한 해에 최소한 한번은 기회가 닿는대로 다른 나라 사람들의 풍습을 익히고 삶의 모습과 그 문화를 배워 보자는 것이었다. 해마다 그 약속을 지켜 왔고 올해도 땜빵할 차례가 되었다. 지난번에는 주현이가 여행을 골랐으니 올해는 선우가 여행지를 고르게 되어 있었다. 선우는 뜸도 들이지 않고 거침없이 &
아침에 새들의 노래 소리에 눈을 떴다. 그 추운 겨울에는 어디서 몸을 피하고 있다가 이렇게 봄이 왔다고 떠들어 대는지 신통하기까지 하다. 도시에서는 그 놈의 고막을 터뜨릴듯한 사발시계의 철 후려치는 소리에 잠을 깨다보니 하루 중 골 때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소리에 잠을 깬 산골의 아침은 머리가 온화하다. 거기에 햇살까지 보태주면 무엇
친정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서울에 갔었다. 어제 맘 같았으면 새벽차를 탔어야 옳았다. 그러나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이 있다고 했듯이 발목을 잡는 급한 일들.... 첫차 놓치고, 둘째, 셋째 차 놓치고....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발을 동동거리다 탄 서울행 버스.... 그렇게 목동의 한 병원에 도착하여, 달랑 한 시간 엄마 얼굴을 눈에 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