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눈이 서서히 녹고 있다.잔뜩 얼었던 마음에도 낙숫물 소리가 들리고, 대지에서도 싹들이 겨우내 동상걸리지 않으려고 발가락 운동하는 소리가 드리는듯하다. 이제 개울의 살얼음도 무거운 몸을 풀고 행길로 바짝 나앉으면 나도 겨울의 긴 시간을 털고 대지로 나앉아야 한다.그 땅내음이 물씬 풍기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중이다. *******************
아주 옛날,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이니 한창 팔팔 할 때다.그때 40대 수반에서 50대의 사람들을 보면 '난 저리 어중띠게 늙지 않을 것같은데..'하는 생각을 했었다.왜냐 하면 이리 팽팽한 피부가 어떻게 저리 되며, 머리칼도 어떻게 그리 허옇게 되는지 궁금했었으니까.그러나 지금 4학년하고도 중반에 서고 보니 조금은 알 것같다.갑자기 그리 되었겠는가.이런저런
금탑산업훈장, 최우수 CEO 선정, 2005 한국을 빛낸 기업인 대상 수상`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그런가 하면 출향인의 보기 좋은 모습만 들려와도 우리 또한 남다른 마음 속 힘이 솟아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평해 출신 박 부권 KT링커스 사장에 대한 수상 소식은 이 겨울 듣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박사장은 지난 12월 7일
산골의 밤에 마지막으로 챙기는 일이 요강이다.요강을 비우기 위해 마당에 서면 머리위가 궁금하다.아니나 다를까.이 추위에도 산골가족을 위해 일찌감치 밥을 해먹은 달과 별들이 식솔들을 거느리고 죽 나와 앉아있다.그 날카로운 모서리는 바람만 스쳐도 곧 얼어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그런 산골친구들이 있어 오두막의 밤은 따사롭다.사람은 같은 것이라도 사람에 따라 느
잠이 많은 내가 요즘 이른 아침에 자주 깨는 일이 좋종 있다.허리에 탈이 나서 잠결에 뒤척이다 그 통증으로 인해 잠에서 깨는 것이다.다시 잠을 청하려 하나 바른 자세로 고쳐 눕기조차 쉽지 않다.이제 잠도 달아나고 이런 판국이라면 잠자리를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이 깊은 산중에 자다 깨어 홀로 앉아 보는 일은 흔치 않다.낮의 고된 노동도 노동이려니와 늦게
봄의 가뭄은 겨우내 눈 속에서 산 산골식구들에겐 오히려 반가운 일인지도 모른다.산천이 뽀송뽀송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인간사도 그렇듯이 다 좋을 수만은 없는가보다.가뭄으로 개울이 말라붙어 그 옹아리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귀가 건조하다.귀가 건조하면 이내 마음에도 버짐이 핀다.눈보다 귀다 더 마음에 가까운가 보다.그래서 마음이 건조하지 않도록 듣기를 두 배로
겨울과 봄이 제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흰눈이 아직도 온 땅을 점령하고도 모자라 혹시 봄에게 자리를 빼앗길세라 땅을 다 얼려 놓았다.그 와중에 그 틈을 뚫고 겁없이 올라오는 놈이 있다.원추리싹.어린 것이 그 눈 속에서 동상도 안걸리고 견딘 것이 여간 대견스러운 것이 아니다.고슴도치처럼 삐죽이 머리를 내밀고는 점점 지세력을 확장해 나간다.머리부터 디밀고 보
산골에 바람이 드세다.그 바람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바람 속에 선 사람의 정신상태에 따라 그와 놀아나는 기분 또한 다르다.정신상태가 퇴색한 비로드천 같은 날은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처럼 머리 속이 쑥대밭이다.그러나 독버섯처럼 화려한 날은 바람과 내가 손발이 잘 맞아돌아간다.산중살이 5년만에 이런 터득까지 하니 이러다 돛자리 펴고 앉아 하는 벌이로 전환
날이 추워졌다.일하러 나가려던 발을 접고 마루에 앉으니 등이 시리다.그리도 나의 가을걷이 때 자기도 발 빠르게 가을걷이하던 다람쥐들이 슬 궁금해졌다. 볼에 한 움큼씩 겨울 양식을 물어 나르던 놈들이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잊고 있었다.산골에서는 저나 나나 서로의 가을걷이를 방해하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관심까지 껐던 모양이다. 언제부터 놈들이 안보이기
귀농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아이들 교육문제다. 어른들이야 좋아서 왔다지만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시키느냐며 눈을 가늘게 뜬다.귀농 초든 지금이든 아랫배에 힘주며 한 말이 자연에서 배우고, 부모가 깨어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면 눈의 흰자위만큼만 믿는 표정이다.5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이 자연에서 배우고, 부모가 깨어있고, 그리고 또
가을이 되니 산중의 농부도 똥오줌 못가리지만 다람쥐도 만만치 않음을 자주 본다.입에 겨울 양식을 볼록이 물고 이리 저리 작은 몸을 굴려 가을걷이를 하는 것을 보면 여간 신통하지 않다.오늘도 들로 나가는데 다람쥐와 마주쳤다.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생각나 그가 지나간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어느 절에 한 비구니가 다람쥐의 추수하는 모습을 보고 쫓아가
겨우내 눈 속에서 숨죽이며 있다가, 제 몸을 짓누르는 눈이 녹음과 동시에 하나, 둘 삐죽이 머리털을 내미는 원추리.햇살과 비를 먹고 하루하루 무성한 풀로 자라도 관심을 받지 못하다 어느 날 갑자기 뱀 대가리 쳐들듯 꼿꼿하게 제 목을 추켜세운다.그것도 성에 안차는지, 하루아침에 등황색 꽃을 피우고는 목에 더 바짝 힘을 준다.사람이나 꽃이나 목에 너무 힘이 들
"아빠, 너무 해요!!연호정의 연잎이 기계충을 앓은 것처럼 여기 저기 삐죽거리고 있다.못물의 색이 어떠한지를 읽기는커녕 몇 낱 없는 연잎을 보니 누가 주인(연꽃)이고, 누가 섬기는 자(못물)인지조차 알 수 없다.언제쯤이면 제 구실을 할까를 생각하다가 지금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님을 스스로에게 추궁한다.때가 되면 새 잎이 돋아 연호정을 덮을 것이고, 그들은 스
산골엔 금낭화가 한창이다.비 오고, 흐린 날에 관계없이 정을 가득 담은 주머니를 팔에 주렁주렁 달고 나와 앉아있다.어린놈은 작은 주머니를, 에미는 큰 주머니를...제 몸에 겨운 짓은 하지 않는다.꽃에서도 인생을 배우는 산골이다. 산골에 와서 안타까운 일 중 하나가 꽃밭이었다. 귀농하여 보니 마당이 아주 아담했다. 전 주인 할아버지는 차가 없으셨기 때문에 그
창호는 아침, 저녁 햇살의 밝기도 다르지만, 아침, 저녁으로 들려오는 새소리도 사뭇 다르다.아침에는 지들도 아이들을 깨우느라 분주한지 그 음의 길이가 짧다. 그러나 오후 들면서 들려오는 새소리에는 여운이 있을 정도로 장음이다.그것은 아마도 아침에 산골아이들을 학교 보내야 하는 내 마음이 분주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차가
산골에서 가장 먼저 겨울을 떨치고 일어서는 것이 생강나무꽃이다. 진달래보다도 부지런하다.촌스러운 티를 내자면, 난 산골로 둥지를 틀고나서야 생강나무꽃을 처음 보았다.도시에서야 어디 그런 것을 볼 기회가 있는지.산이야 많이 갔지만 등산로가에는 어떤 꽃이든 살아남을 수가 없다. 혼자만 가져다 보려는 이기심이 작용하여...잎과 줄기에 생강냄새가 난다 하여 붙여진
어제는 무서움에 떨다보니 새벽에서야 잠이 들었다.그 덕에 아이들 방학하는 날인데 학교차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내가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차에 올랐다. 그날따라 초보농사꾼이 없는 걸 아는지 봄날 같던 날씨가 돌변하여 살을 후벼 판다. 오두막을 나와 비포장길을 접어들었는데 길가 산에서 굴러 떨어진 큰 돌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피하기 위해
금방 물에서 헹구어낸 냉이처럼 상큼한 일이라는 것이, 어쩌다 생기는 특이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산골에 와서 터득하게 되었다. 어린 아이가 글자 깨우치듯...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일들이 무진장 널려 있음을 요즘 절실히 느낀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예전에는 그런 고차원적인 생각은 엄두도 못냈는데 산골에서는 그러한 깨우침이 덤으로 주어진다.
귀농하고 더욱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초보농사꾼의 손재주다. 손재주 없는 거야 팔자려니 한다지만 엎친데 덥친격으로 “기계캇다. 도시에서 살면 아무 문제가 없는 단점이다. 아파트에 살았으니 모든 것은 관리실에서 해결해 주고, 그것이 어려운 일은 그 분야의 기사를 부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골살이는 그게 그게 아니다. 직접 나무와 못으로 뚝딱뚝딱 만들어야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왜 여유가 없는지를 산골 재래식 화장실에 쭈구리고 앉아서야 터득했다.난 성격상 무엇을 주절이주절이 걸어놓고 보는 스타일이다.못 하나도 박을 수 없는 아파트 콘크리트 벽에는 무엇 하나 걸기가 쉽지 않았다.그나마 못을 박으려면 드릴 아니면 별달리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보기만 해도 따뜻하여 숲 속에 와 있는 기분이 드는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