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언니가 넷에다 오빠가 있다. 큰언니는 거의 `엄마마침'(이 말은 우리 배씨 일가만 쓰는 충청도용어인듯 한데 확실히 파악할 수 없음)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릇 큰 장녀다보니 나머지 아가들은 큰언니 말이면 엄마 말씀과 동일시하여 복종을 하며 자라다보니 언니에게선 늘 과꽃냄새가 났다. 막내인 나 다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큰언니의 큰아들인 구민이. 그랬으니
태풍이 지나가고 나니 이어서 가을바람이 산골로 들이닥쳤다. 계절이 바뀔라치면 하다 못해 전주곡이라도 울려 주고 메인 게임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는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도 주지 않고 그답 가을바람이 산골을 차지해 버린 거다. 그러니 여름 끝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사람으로 치자면 좀 덜떨어진 사람처럼 어정쩡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모든 것
산골에 비비린내가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비가 온다. 사람이 맞은데 또 맞으면 아픔이 배가되듯이 비맞은 상처에 또 다시 비를 맞는 논이며 밭이 안스러운 그런 밤이다. 불켜진 방으로 기를 쓰고 들어오려는 나방의 몸부림 소리가 빗소리 속으로 희석된다. 비오는 날에는 마음이 너그러워져 나방을 방에 들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들어와서 사람의 정신을 건드리고 다니는
사전 신고도 없이 목숨을 거둔 고추 때문에 우울한 날이 계속되었다.아무리 마음을 돌려먹으려 해도 제어장치가 내 손에서 떠난지 오래다. 보다 못한 구름이 나를 고통에서 깨워 오두막 발치에 있는 개울로 데리고 간다. 그리 언성을 높이고 흐르더니만 산골의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소프라노도 아니고, 알토도 아니고, 중간음 메조로 한 구석을 지키고 있다. 헨리 데이빗
산골에 비가 여러 날 오니 오두막 주위의 변화에 둔해진다. 밖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오두막에서 지내는 시간이 전부이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우산을 쓰고 장독대가 걱정이 되어 가보았다. 언저리에 달맞이꽃이 피어있다. 그리도 비바람부는 날이 계속되었건만 제 때에 꽃을 피운거다. 그리 기특할 수가 없다. 달을 향해 목을 길게 길게 빼다 그만 키가 그리 멋없이 커버렸
비가 온다. 태풍이 무사히 지나감을 안도하며 잠시 비개인 하늘을 휘 둘러본 것 뿐인 시간이 경과했는데 다시 비가 온다. 산골농사는 비보다는 가물어야 그나마 농사가 된다는 이웃 어른의 말씀이 떠올라 간사한 마음은 어느새 `가뭄'편에 냉큼 줄을 선다. 지난 비로 논둑 한 귀통이가 몸체에서 떨어져 나갔는데 그 상처에 다시 비를 때리니, 이번 비에 또 논둑이 터져
2002년 6월 24일 비가 온다. 사람이 있는 마음을 어떤 이유에서 둘러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내 마음을 내 맘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내 마음 움직이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산골에서도 간혹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도시 같았으면 친한 사람 만나 차 한 잔 앞에 놓고 침튀겨가며
작년에는 고추보식을 하나도 안했다. 죽은 놈이 거의 없어서이다. 그래도 다들 그러려니 했는데 이웃에 귀농하신 분 댁은 보식하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힘드시겠구나'하고 생각은 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우리 산골에도 보식의 붐이 일어 그 붐을 안탈 수 있겠는가? 고추모종에 문제가 있어 그 모종만 깡그리 죽었다. 근 삼천종이 넘는다고 하는데 아직도 자세히 알
도시에서도 그랬지만 주부는 칼이 잘 들어야 일이 수월하다. 도시에서는 아버지께서 갈아주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친정에 가겠다고 전화드리면 대뜸 "막내야, 칼 신문지에 잘 싸가지고 가방에 찔러넣어 오너라'' 하신다. 그러면 난 집에 있는 칼은 다 갖고 나선다. 딸이 들어서면 딸 얼굴도 안보시고 가방 먼저 받아 칼부터 꺼내신다. 그러시고는 당뇨병으로 힘든 몸
꽃씨를 뿌리려고 작년에 씨를 받아두었던 바구니를 찾았다. 바구니에서 그대로 엎드려 일년을 보낸 터라 그런지 냉큼 내 가슴으로 와 안긴다. 봉선화, 채송화, 과꽃씨등을 심으려니 여간 땅이 가문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비가 오면 심기로 마음먹고 검고 하얀것들을 다시 올려 놓았다. 아무리 가물어도 오늘 꼭 심으려고 했던것이 목화였다.씨를 어렵게 구한
도시에 살면서 얼마나 정신 없이 살았는가를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다. 아침에 죽지 못해 일어나(늘 늦게 잠을 자니 당연한 현상!) 남편과 아이들을 보내고 원고보는 일을 하다, 직장인들 Report채점하다, 과외있는 날은 또 그리 정신없이 보내다보면 아이들이 오고 학원에 가방쥐어 주며 뒤통수에 대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얘기 되풀이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