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관련 국내 유일 유적 … 지역민 추진위 결성 반가워

필자는 2012년 2월 15일자 본보를 통해여 울릉도 수토관련 유적의 보존 필요성에 대하여 역설한 바 있다.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02, 303번지 일대 20여 필지는 옛 월송정 자리로 조선시대 수군 진지로 사용되던 ‘월송 포진’ 성터였다.

월송포진은 요즘 말로 하면 해군 진지와 같은 역할인데 주로 왜구들의 침구를 막기 위한 관방시설이었다. 울릉도는 당시 평해군 관할로 평해군수와 월송포진성의 책임자인 월송 만호가 2~3년에 한번씩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를 수색하고 섬에 은거하고 있던 불순한 세력들을 토벌하였다.

울릉도가 한국영토였다는 것은 신라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가 나무 사자를 싣고 가 우산국을 복속시킨, 삼국사기의 기록으로도 이미 입증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한국은 일본에게 엄청난 피해를 본 나라이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막 시작한 시기인 663년에 왜군은 42,000명이란 대군을 한반도에 보내 신라를 침략했다. 왜구가 우리민족을 가장 극심하게 침공한 것이 고려 후기이며 결국은 1592년 임진왜란이란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무려 7년 동안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임진란 후 다소 조선 침구가 뜸해지는 듯하더니 1693년 양국 어부들간의 충돌인 이른바 ‘안용복’ 사건이 일어난 이후, 다시 왜구들은 상시로 조선을 침구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잡아갔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공한 것이 무려 900여회나 되며 결국에는 한일합방이라는 치욕적인 역사를 만들고 말았다. 그럼에도 일본은 반성의 기미없이 지금도 독도를 일본영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조선 전기부터 울릉도에 관리를 파견한 예가 있고 안용복 사건직후인 1694년 장한상을 보내어 수토하였다. 매번 수토 시, 왜구들의 일로 마찰이 발생하자 1696년 일본의 ‘에도막부’는 울릉도에 일본인들을 출입하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림으로 조선 영토임이 재확인되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울릉도를 수토한 기록은 1694년부터 한일합방 직전까지 약 200년 동안 총 37회에 이른다. 물론 왕조실록에 기록되지 않은 수토실적도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수토사들의 기록은 울진 군지는 물론 조선왕조실록에 많은 기록들이 남아있고 울릉도 태화관사터의 마애 각석에는 ‘서경수徐敬秀, 조중성趙鍾成’ 등 수토사들의 이름들이 현존하고 있다.

수토사들은 처음에는 삼척영장에서 출항하다가 19세기 이후에는 매번 기성면 구산진의 대풍헌(待風軒)에서 출발하였고 수토사들도 월송포진의 수군만호였다.

울진군에서는 월송포진 성터로 알려진 (구)월송정 터 앞으로 망양~직산간 도로를 개설하면서 작년 8월부터 월송리 303-17번지 일대 1,520㎡에 대하여 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6m 폭의 성 기단부와 문지, 당시의 우물 등이 그대로 발굴되었다.

발굴조사기관인 삼한문화재연구원은 “이번 발굴조사 결과와 지적도를 바탕으로 추정한 결과 당시 월송포진의 성벽 둘레는 328.8m 규모이며 이번에 발굴된 위치는 월송포진의 남쪽 성벽 일대의 유구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현지의 발굴보고회에 참석한 문화재 위원들은 “월송포진 유구는 조선시기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수토유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며 “1738년도에 그려진 정선의 ‘월송정도’와 정확하게 일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선이 울릉도와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였다는 명백한 증거이며 수토책임자들이 주둔하던 주둔지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발굴 결과에 따라 문화재청에서는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도로 개설을 중단하고 유적을 살리도록 조치를 내렸다.

울진군수 또한 ‘월송포진성’과 ‘대풍헌’이 울릉도 관련 국내 유일의유적임을 감안,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어서 매우 반갑다. 앞으로 월송포진 유적지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반드시 이 일대 유적지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과 복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일은 많은 재원이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뜻있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월송포진성 복원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지자체의 일을 돕고자 나서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로 국가적 차원에서도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월송 포진성이 복원 된다면 울진군으로서도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관광지가 될 것이지만 국가적으로도 일본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국내 유적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울진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