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대구 훈련소에 두고 반쪽 가슴으로 집에 도착하니 방금 이삿짐을 풀은듯 집이 낯설었습니다.

도둑맞은 집구석처럼 그 자리를 잘 차고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없는 듯 허전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대구 50사단에 아들을 내려주고 산골로 오면서 참고 참았던 눈물이 아들의 소지품과 옷가지를 보자 새 연고를 막 땄을 때처럼 꾸역꾸역 밀고 나오데요.

안그래도 상심할 것을 걱정한 초보농사꾼의 눈을 피해 텅빈 아들 방에 가서 넋나간 사람처럼 아들 대신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자식을 군대 보냈던 엄마들 말이 입대하고 나서 며칠 후면 자식이 입고 갔던 옷가지가 소포로 배달된다고 했었지요.

그 옷을 받아야 하는 어미의 마을을 안다면 그 방법밖에 없을까...

생각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찡한 진동이 오래 갔습니다.

아들은 그런 내 안색을 가슴에 담았던지 입대하기 전, 틈만 나면 "엄마, 그 옷이 그 옷이지 뭐가 슬퍼, 그렇게 마음먹지 말어. 내 옷 받으면 잘 지내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 "엄마, 난 더 멋진 남자가 되려고 상근으로 빠지지 않고 일부러 현역으로 지원해서 가는 건데 옷 받아도 울지마. 우리 엄마 강하잖아. 약해지면 안돼."라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았었지요.

어린 아들이 엄마를 위로하다니 이래서야... 그때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요.

아들 말대로 '난 강한 엄마니까, 난 강하니까'라고 아이처럼 중얼중얼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입으로 수도 없이 자신의 바램을 반복해서 기도하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어느 인디언 책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들을 대구의 50사단 훈련소에 두고 오면서 아들 옷이 오면 내가 강한 모습을 보일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고쳐먹었던 마음은 다 너덜너덜해졌고 이성은 묵을 쑤어놓은 것처럼 굳어져 제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1주일이 지난 어느 날, 소포가 도착했고 초보농사꾼이 들고 왔습니다.

직감적으로 아들의 옷이 왔구나 느꼈고, 그동안의 그 다짐은 어디다 엿사먹었는지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초보농사꾼은 되도록 내가 아들의 옷을 직접 꺼내지 않도록 부지런히 박스를 해체해 버렸습니다.

맨 위에 운동화가 있었던 모양인데 벌써 현관으로 가져다 놓았고, 난 박스 속에 아들이 입고간 옷들과 양말, 팬티까지 곱게 접혀진 것을 받았습니다.

아들 냄새가 났습니다.

어미들만은 알 수 있지요. 제 새끼 냄새를...

엄마가 자기 옷을 보고 통곡할 것을 걱정하며 옷을 담았을 아들 모습이 떠오르자 얼굴을 타고 내리는 눈물은 더 하염이 없더라구요.

옷 가운데에 혹여 빠질새라 꼭꼭 넣어둔 아들의 묵직한 편지가 보였습니다.

낯선 곳에 남아 가족의 얼굴을 일일이 떠올리며 그리움을 한 자 한 자에 박았는지 엄마, 아빠, 동생에게 쓴 편지의 글씨는 뒷장에 베겨나올 정도로 눌러져 있었습니다.

내게 쓴 편지 첫머리에는 "...도대체 첫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옳은건지. 할말이 너무나도 많아 되려 말문이 막혀 버렸다"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어서 남해 유배문학관에 온가족이 들렀을 때 서포 김만중이 쓴 시구 한 구절에 가슴이 절절했던 기억이 난다며 김만중의 글을 인용했더군요.

"편지 앞머리에 '어머니'라고 쓰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져버렸다. -서포 김만중-..."이라는 말로 아들의 편지는 힘들게 첫말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엄마라는 두 글자를 쓰는 순간 망치에 얻어맞은 듯 눈앞이 먹구름이 낀 양 어둑어둑해져오는지...엄마..엄마...우리 엄마..."

글이 눈에 들어오는지, 눈물이 글로 들어가는지 울지 않겠다던 아들과의 약속은 애시당초 물건너 갔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조금씩 써두었다는 다섯 장의 편지..

연고도 없는 울진으로 귀농하고 찰떡처럼 밀착되어 숨소리의 높낮이까지 알아채며 살았던 우리 산골 네 식구, 서로의 마음을 눈만 봐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물에 풀어 살았던 우리 네 식구, 여행을 떠나면 그 어떤 조합보다 환상적으로 맘껏 즐기고 체험하며 같이 저마다의 인생을 적어나갔던 우리 네 식구...

아들은 엄마가 자신을 안스러워하고 그리워할 것을 염려하지만, 집 떠나, 그 좋아하는 가족 곁을 떠나 낯설고, 사람 설은 곳에 남겨진 그가 가족,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어찌 비교하겠는지요.

아들은 입대 후 첫 주일을 맞아 부대 내에 있는 성당에 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고...

"나는 내 가족들을 꿈에서조차 그리워할지언정, 내 가족들은 나를 그리워하지 않고 그저 '잘하고 있으리라' 확신하게 하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네요.

'그래 아들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그리움이란 의지대로 되지 않더라. 그리움은 가을 하늘의 뭉개구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몰려다니더라. 자식을 향한 걱정은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바람이 불 때처럼 그때 뿐 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면 새롭게 피어나더라.

엄마 걱정 말거라. 어미로서 자식 떠나보낸 슬픔이야 어느 엄마나 다 같은 것, 다만 엄마는 무엇이 자식을 위한 길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순간순간 내일 죽을 것처럼 알뜰히 살 거야. 가족 걱정 말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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