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위에 개복숭아와 이웃의 유이장님께 선물받았으나 이름을 까잡순 꽃나무들이 핑크빛 튀밥을 펑펑 튀기며 자지러지게 꽃을 피우자 산골을 병풍처럼 빙 둘러치고 늘 그 표정으로 서있는 소나무들이 오두방정을 떠는 그들을 내려다 보며 씨익 웃는다.

어제가 곡우였는데 귀신같이 비가 왔다. 곡우는 봄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비인데 우리집 초보농사꾼에게는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엊그제 죽으라 땅을 콩고물처럼 부슬부슬하게 갈아놓았는데 그위에 수지침처럼 비가 내리 꽂히니 당연히 허탕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촛자 농부는 하늘에서 주는 것을 이내 불평 없이 받아들이려 한다. “그래도 새로 옮겨 심은 개복숭아 나무에게는 더없는 단물일 거야”하며 소나무처럼 씨익 웃는다. 세상에는 ‘하나가 길면 하나가 짧다’는 옛말이 딱 들어 맞는 일 투성임을 오늘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러니 당장 눈 앞에 펼쳐진 현상에 신생아처럼 얼굴 구길일 없음을 또 배우는 순간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주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의 학부모 대상으로 특강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귀농전에 근무했던 '한국생산성본부'의 내 업무 중 하나도 강의를 하는 거였다. 그때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수원의 삼성전자, BC카드, 기업체의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강의, 멀게는 대구까지 가서 강의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귀농을 하고도 특강을 다녔지만 대상이 학부모이긴 처음이다. 일단 선생님 부탁이니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산골교육에 대해서는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서기로 했다.

 

 

교육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왜 귀농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말했다. 왜냐하면 아이들 교육 때문에 귀농한 이유가 50%였으니 말이다. 남들은 교육 때문에 서울로 서울로 갈 때, 난 정신나간 사람처럼 아이들 교육을 위해 되도록이면 더 산중으로 산중으로 들어와 앉았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만 같다”고 <말테의 수기>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이었다. 더 번지르르하게, 더 뻐근하게 살기 위해, 아이들을 더 잘 교육시키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모이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고 확신을 했다. 난 그 얘기부터 했다. 지금은 아이들을 공부 공부, 일류 대학에만 열을 올리지만 세상이 더 복잡해지고, 건조해지면 그게 최선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0년에 귀농했으니 그 당시의 내 생각은 한 가지였다.

앞으로의 시대는 창의력이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고 감성은 건조할대로 건조하여 논바닥처럼 갈라질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정서적이고, 창의적으로 키워야 할까에 내 교육화두가 맞추어졌었다. 그리하여 훗날 애들이 컸을 때는 그런 인재를 더 필요로 할 것이고, 그런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윤기나게 닦으며 살아가리라 확신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귀농했다고 했다.

아이들을 자연에 방목(?)하고 책과 여행을 스승삼아 키운 이야기를 했다. 난 주위의 어떤 모습에도 굴하지 않고 내 교육철학이 시키는대로 자연에서 작정을 하고 키웠다. 사실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건 자식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대학가는 것까지만 열을 올리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대학만 번듯한 곳에 집어 넣어놓으면 자식의 행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고 말이다. 어쩌면 사회가 그렇게 몰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공부, 성적에만 올인한다. 아이들을 성적으로 등급을 매긴다. 돼지나 소를 잡아 등에 퍼런 등급도장을 팍팍 찍어 식별하기 좋게 하듯이 아이들에도 그렇게 9등급으로 분류하여 그 등급별로 아이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자식만 좋은 대학보내면 대수다. 그 결과 농어촌에 사는 아이들에게 배려한 ‘농어촌전형’도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내 자식만 잘 되면 그만이다.

서울에 살면서 주소만 농어촌으로 바꾸어 놓고 자식을 편법으로 ‘농어촌전형’으로 보내다 감사원에 무더기로 적발되었다는 소식은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남의 자식의 혜택을 빼앗아도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시골로 주소를 옮겨 적발된 학부모의 주소를 조사해 보니 비행기 활주로, 고추밭 등이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소름이 돋았다. 성적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린지 오래 되었고, 내 자식 좋은 대학 보내기 위해서는 불법 정도는 일도 아닌 세상이 된지도 한참 되었다. 말이 새고 있다. 난 학부모들에게 책이야기를 중심으로 내 산골교육을 설명했다. 누구나 책 이상 좋은 스승이 없다고 알고는 있다. 모든 부모가 책좋은줄은 다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 안해본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부모들은 잘 안읽는다. 자신은 잘 안읽으면서 아이들에게는 책은 얼마든지 사줄테니 읽으라고 한다. 책이 삶을 윤기나게 하고, 여유롭게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지혜를 준다고 믿는다면 그 신통방통한 책을 부모가 먼저 환장을 해야 맞다. 자신의 삶 먼저 윤기나게 해야 하니까. 부모가 막말로 줗아죽겠어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무얼 배우겠는가. 또 하나는 부모들이 학원, 과외, 성적 등에 에너지를 쏟는 것의 20분의 1만 책에 쏟아도 우리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변할까 생각해 봐야 한다.

한 등수 올리기 위해 온갖 방법과 에너지를 동원하면서 아이의 정서와 창의력 지수 하나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는 그다지 보지 못했다. 난 산골 아이들에게 ‘책읽기’는 밥먹는 것과 같다고, 영혼에 밥을 주는 것이라고 늘 말해왔고, 그렇기에 책읽기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것으로 산골아이들은 교육받아 왔다. 어떤 엄마는 일단 좋은 대학을 가서 그때부터 좋은 책 많이 읽으면 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엄마에게 단호하게 말해주었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감동과 정보와 충격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책도 같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중학생 때, 고1, 고2, 고3 그 나이에 읽어야 하는 책을 몰아서 대학생 때 읽는다면 감동, 충격, 놀라움이 다르다는 거다. 그래서 책은 항상 손에 들고 함께 성장해가야 하는 것이다. 책만 아이의 정서를 책임지고 창의성의 밑거름이 될까. 물론 여행도 그렇고 자연을 바라보는 눈도 참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이병률 시인은 ‘여행은 시간을 빌어오는 일이고,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고 했다. 그렇다. 여행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의 미래에 불을 밝혀준다. 낯선 곳의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삶을 배운다. 백지 상태의 아이에게 삶을 배우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는 여행이다.

엄마의 잔소리나 알량하게 알고 있는 정보를 드립다 주입해 주는 것으로 아이가 삶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길을 떠나보내야 한다. 난 귀농하면서 쥐똥만큼의 돈이 생긴다면 제일 먼저 책을 사고, 그 다음에는 여행을 떠났다. 다른 나라를 하나하나 건너다니며 세상 구석구석의 삶이 어떻게 직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는 일은 아이가 자신의 삶의 퍼즐조각을 맞출 때 꼭 필요한 조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책과 여행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책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자란 아이는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줄줄 알며, 난관에 부딪쳤을 때 절망하지 않으며, 어둠 속에서도 마음 속 등대가 길을 안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디 그 뿐인가. 정서의 뜰에는 계절별로 꽃들이 제 몫을 다해 필 것이다. 아이들은 그 어떤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의 뜰에는 나비가 날아들 것이다. 난 그렇게 침튀기며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으나 강의를 들은 학부모들에게 내 강의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을까?? 현역으로 지원한 아들이 곧 군입대를 하기 위해 대학교를 휴학하고 산골에 내려와 있다.

군대가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지혜롭게 잘 극복해 나갔으면 한다는 내 말이 떨어지자 “엄마, 내가 읽은 책이 얼만데...지혜롭고, 슬기롭게 극복할 자신있어. 아무 걱정 마.”라고 한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오늘 내 강의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았지만 과연 집에 돌아가 아이들과 얼마나 실천을 할지는 알 수 없다. 가치관을 바꾸는 일은 숫돼지가 새끼 낳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니까. 누구나 행복해지는 법을 너무나도 잘, 넘쳐나게 알고 있다.

다만 실천하는 사람만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런 사람만이 자식에게 열매맺는 법을 귀뜸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12년 4월의 글임.)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배동분 : 2000년에 울진군 서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짓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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