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도 천차만별이다.
방금 전에 들은 새소리는 부부싸움하는 소리같다.
내지르는 음절이 길고 격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2주만에 살골에 온 딸 주현이와 너럭바위 위에서 듣던 꾀꼬리 소리는 4음절이다.
거의는 4음절이내인 것같았는데 6음절 이상이 되니 꼭 싸우는 소리같다.

음절이 긴 이 새소리는 처음 듣는다.
어쩌면 들었었는데 귀농해서 이곳에 뿌리내리는 일에 눈이 멀어 귀가 제 구실을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하여튼 그렇다.

그 긴 음절이 계속 똑같은 톤으로 반복되는 건 여느 새들의 내지름과 같으나 음절이 길다보니 사람처럼 뭐라뭐라 대꾸하는 듯 오래 들으니 피곤해진다.
부부싸움 할 때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는 것처럼... 우리네 쌈박질하는 소리도 이러하것지.

그런데 한동안 조용하다.
휴전인가 보다.
한참 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들린다.
언제까지 갈까. 오늘 일 다했다.

오늘은 괜시리 딱따구리의 똑또르르~~~하는 나무의 그 울림소리가 그립다.


고3 딸 주현이가 기숙사에서 산골에 왔다.
2주일 한번 행차하시는 거라서 나 또한 여간 기다려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주현이는 오자마자 아빠, 엄마 일 도와준다며 노동 모드로 전환한다.
아이들의 농사 일 돕기는 ‘생활’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날 이때껏 농사 일을 돕지 않고 넘어간 해가 없었다.
봄, 여름, 가을에는 주말마다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흥얼흥얼 노래도 부르며 잘도 도와주었다.



겨울이라고 봉사활동(?)이 없을까.
겨울에는 야콘즙을 겨우내 가공하기 때문에 산골에는 날로 먹는 날이 없었으니 아이들 역시 눈 내리는 겨울에도 조금씩이라도 일손을 도왔다.
아이들까지 도울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을 때에도 아빠 일을 도우며 아빠와 학교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책 이야기, 여행이야기도 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결코 말리지 않았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집안 일을 돕는 것에 의미를 두고 아이의 나이에 걸맞는 일부터 아니 심부름부터 시켰었다.

참바구니 들고 가기, 물통 가져가기, 퇴비비닐 찢기, 엄마, 아빠 비닐 잡아주기, 고추대 나르기 등등 아이의 힘에 맞는 심부름부터 하게 했다.
그러나 세월밥이 늘어날수록 좀더 가능한 일을 조금이라도 시켰다.
고추모종판 나르기, 고추 말목 제자리에 하나씩 갖다 놓기 등등...
그러다 비닐 함께 펴기, 관리기로 골지을 때 관리기 붙들기, 퇴비펴기, 야콘, 고구마, 고추심고 수확하기 등으로 알게 모르게 확대되었다.

이제는 농사 일의 순서가 어찌 돌아가는지 감잡는 아이들이 되었다.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시는데 젊은 자식이 공부한답시고 들어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단다.



그건 아들 선우도 같았다.
지오빠가 모범을 보였으니 주현이는 자동빵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현이 생각 역시 지오빠가 같았다.
공부라는 것이 몇 시간 도와드렸다고 펑크나는 게 아니라 평소에 공부를 안해서 펑크나는 것이라며 걱정 말라고 내게 설명하던 아이들이었다.
어려서부터 환장하게 더운 날, 일을 도와주고도 불평은커녕 저녁이면 우리 어깨를 주물러주던 아이들이었다.

내가 농사 일을 가르치려고 시킨 것이 아니라 집의 일이 급하게 돌아갈 때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힘을 합쳐 함께 가족이라는 배를 몰고 가는 것이라는 이유가 첫 번째였다.
그 이유 말고 그에 버금가는 이유가 하나 또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문학적 길들이기’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토론을 좋아하고 인간의 심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아이들을 위함이었다.

흙을 만지고, 새 생명을 키우기 위해 거름을 펴고 가뭄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지 관심갖게 하고, 그것을 감사히 수확을 하는 경험이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는 천지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감각세포는 더 활기찰 것이고, 그의 감성은 호수처럼 더 맑아질 것이며, 그의 영혼을 반질하게 윤기가 흐를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사람 중 하나는 간디와 함께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비노바 바베이다.
그는 “땅을 파는 일은 신체의 건강을 위해서 좋을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놀라우리만치 유익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넓은 하늘 아래 꼿꼿이 서서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며 햇살을 받는 것은 그 자체가 요가의 총체였다.“고 하며 육체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늘은 주현이가 고추를 심는다.
지난 번에 왔을 때에도 고추 심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모종이 부족하여 구하여 2차로 다시 심는중이다.
주현이 오기 전에 우리가 심던 것을 주현이가 주말이라고 기숙사에서 2주만에 나와서는 이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모자쓰고, 장화신고, 장갑끼고, 꽃삽 하나 들고 호수밭으로 앞장선다.

모종 심을 때 꽃삽만큼 편하고 효율적인 것도 없다. 이곳 할머님들도 다 꽃삽 하나로 그 많은 모종을 다 심으신다.
주현이도 농사밥이 고봉으로 쌓일수록 알아도 꽃삽을 챙긴다.

이제는 고추를 심으려면 어떻게 순서가 진행되는지 꿰뚫고 있어서 알아서 모종판을 갖다 놓고 미리 뚫어놓은 구멍마다 고추모종을 먼저 놓은 다음 앉아서 심기 시작한다.
한 손으로 고추모종을 잡고 한 손으로 흙을 떠서 덮어준 다음 아이는 꼭꼭 눌러준다.
아마도 ‘가뭄에도 죽지 말고 잘 살아라’라는 마음인 듯 그 누르는 모습이 아주 진지하다.
고추를 심고 나더니 이제는 고추말목(즉, 고추 지줏대)을 몇 개씩 옆구리에 끼고 꽂기 시작한다.

고추 모종 다섯 내지 여섯 주마다 말목 하나씩을 꽂아놓으면 초보농사꾼이 커다란 망치로 튼튼하게 박을 것이다. 주현이가 이렇게만 꽂아주는 일을 해주어도 초보농사꾼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다.
그렇게 말목을 다 꽂아주고는 다음 일을 알아서 한다.
이번에는 아빠가 주현이의 간식거리를 사다 놓았으니 그것을 심을 차례다.

초보농사꾼은 주현이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 참외, 외 등의 모종을 장에서 사왔었다. 주현이 오면 심게 한다며 양보(?)해 놓고 있었던 일이다.
어려서부터도 ‘내가 먹을 간식은 내가 심는다’며 서투른 실력으로 방울토마토 등을 심었던 노하우가 넘쳐나리라 생각한다.
이 간식 역시 비닐에 구멍을 내고 구덩이를 판 다음 방울토마토 모종을 놓고 꽃삽으로 흙을 몇 삽 떠서 그 위에 놓고 꾹꾹 눌러 주는 행동이 매끄럽다.

엄마는 옆에서 구경만 하란다.
여지껏 힘들게 일하셨으니까.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은 아이들과 저녁이 되어 밭에서 집으로 걸어가면서 부르던 하루의 마감을 알리는 뿌듯한 노래이다.^^
주현이의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 있다.



우리 집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퐁퐁 하늘로 올라가고 있고, 그 나무타는 냄새에 딸은 또 한번 감탄을 한다. 공부든 감성이든 다그쳐서 될 일이 아니다.
가랑비교육이라고 가랑비에 옷젖듯이 젖어들게 해야 한다. 아이들의 감성의 촉이 무뎌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산골 엄마의 주 업무이니 난 내 업무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딸아, 네가 홀로서기를 하고 네 길을 갈 때에도 지금처럼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사람에게도 나무처럼 결이 있어서 그 결이 어떠냐에 따라 사람도 판가름이 난단다.

엄만 네 영혼이 쫀드기처럼 꼬들꼬들해졌으면 좋겠어.
그러니 밖의 무늬에 치중하기 보다는 네 안의 무늬에 어떤 결을 만들어낼지에 치중했으면 좋겠구나."

(이 글은 2012년 5월의 글임)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배동분 : 2000년에 울진군 서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짓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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