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 호號에서의 일주일

김명기 시인l승인2015.09.24 16:15l조회수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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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호號에서의 일주일

그해 겨울 러시아 선적 대게잡이 배에 조업감독관이 된 나는 수평선 보이지 않는 바다에 간적이 있었다. 가끔 사할린 반도 어디쯤인가 가물대던 12월 오호츠크, 일상이 가볍게 들려주던 공포란 정말 실없는 말들이었다. 일주일을 설탕물만 마셨는데 설탕물도 쓴맛이 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한 이틀 죽을 것 같았고 그 공포가 사그라질 즈음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밤이면 바다 속 유령들이 선체를 뜯어먹던 소리 그 소리에 놀란 몸뚱인 관 짝 같은 침상 위를 떠올랐다 곤두박질치고 그럴 때면 지금은 이름도 가물한 늙은 러시아 선원이 다가와 쪼그라든 내 귀를 비벼주며 알지 못할 슬라브어를 불어넣곤 했는데 그 낯선 언어들이 나를 토닥여 잠재우면 어느새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곤 했다.

나의 병증은 누군가에겐 곤란한 일이어서 배를 돌리기란 쉽지 않았다. 가난에 몰려 편주片舟에 육신을 맡긴 그들에게 실익 없는 회항回航이란 그만큼 가난의 길이가 늘어나므로 나는 그들이 먼 고향에 가난과 함께 두고 온 아내나 자식들에게 곤란한 짐이 되어 있었다. 회항에 불안은 간혹 통발 속 청어를 꿰던 사내의 짜증이 되기도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할 선장의 굵은 주름살이 되기도 했으나 누구 하나 내게 불만을 내민 사람은 없었다. 나는 차라리 배 밑창에 침잠한 등껍질 붉은 그들의 재화財貨였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홋카이도 최북단 와카나이로 뱃머리가 돌려진 밤, 지독한 두려움이 파먹은 눈알은 흐려지고 브리지 밖으로 바다 속 유령들을 키울 자양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삶을 양보한 사람들은 조용히 보드카를 마시거나 멋대로 더빙된 외화 속에 빠져 애써 나의 미안함과 마주치려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서서히 멀어지는 간헐적 죽음의 공포로부터 편안한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등 뒤로 선장의 서툰 영어가 희미하게 들렸다. “돈 워리 미스터 킴” 누군가 나를 깨웠을 때 사방이 하얀 와카나이 선창에 배가 묶이고 있었다.

짧지 않은 일주일이었다.

때로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부풀어 황망한 날. 사람만이 희망이었던 그때를 기억한다. 하선의 순간까지 가슴을 맞대어 주던 북구의 이방인들, 비린내 나는 그들의 식은 입김과 어깨를 구부리며 축축한 눈을 맞춰주던 이름 모를 얼굴들을 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오호츠크 겨울 밤바다 위 시린 별이 더욱 서러울 때면 럭키스트라이크를 입에 물고 밤새 통발을 건져 올리던 사람다운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음을. 


김명기 시인  sbehdg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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