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2년 글입니다)

난 시골에서 태어났으나 서울에서 머리에 먹물 많이 넣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부모님 손에 이끌려 서울로 올라왔다.

아주 코흘리개 때...

서울에서 자식들 공부 많이 시켜 훌륭한 사람 만든다는 부모님의 대명제 아래 온가족이 터전을 서울로 옮겨 앉은 것이다.

서울에 말뚝 박고도 방학만 되면 시골로 튀었다.

박완서님 역시 공부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서 방학만 되면 시골 박적골로 내달렸다고 하셨는데 나 역시 기회만 되면 서울에서 천안 병천으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빠져나갔다.

그때 어린 희미한 기억에 할머니는 회색빛 시루에 의식을 치루듯 성스럽게 콩나물을 키우셨다.

널다란 물보관 항아리에 물이 담겨있고 그 위에 길다란 작대기 두 개를 놓고, 다시 그 위에 구멍이 숭숭 뚫린 시루를 얹으셨다.

안그래도 회색빛이 돌아 우중중한 시루에는 언제나 검은 천이 덮여져 있었다.

할머니는 하루에 몇 번씩 검은 천을 걷어내고 널다란 맨 아래 항아리에 있는 물을 천천히 부어주고는 날이면 날마다 기다리셨다.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다 어느 날, 시간이 흘러서 보면 할머니가 덮은 천이 불룩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어쩌다 그 천을 걷으면 노랗고 튼실한 콩나물이 ‘제발 그 놈의 천 좀 걷어달라’고 사정하는듯 머리로 천을 치받고 있었다.

그렇게 콩나물을 기르는 일은 다른 특별한 것도 없었지만 하루에 몇 번씩 할머니가 물을 주시는 모습은 참으로 어린 내 눈에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자식을 키우는 것도 이에 견줄 수 있지 않을까.

그저 관심을 기울리고 기다리는 것...

그 꼴난 엄마의 정보력만 믿고 엄마가 아이를 소 끌고 가듯 목적지를 향해 고삐를 바짝 휘어잡고 끌고 가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끌고는 가겠지만 어거지로 물을 먹게는 못한다는 것까지 아는 엄마는 드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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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는 닭이 4마리 있다. 그 중 한 마리는 다리 하나가 없어 늘 뒤뚱거리며 걷는데 딸 아이가 붙여준 이름은 ‘아리’다.

'아리'라고 하니 이름이 좀 있어보일지 모르지만 병아리의 병 자를 떼어내고 아리만으로 단순하게 지은 이름일 뿐이다.

그 녀석은 산골가족이 종이박스에서 키우다 몸집이 커지자 보일러실에서 키웠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이 다가가면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와서 아는체를 하는 녀석이었다.

안아주어도 가만히 있고 강아지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주어도 가만히 있었다.

바로 그 ‘아리'가 몇날 며칠 알을 품고 앉았더니 병아리를 7마리나 낳았다.

초보농사꾼이 밭에서 내려오다 닭장 아리에 병아리 7마리가 어미를 쫓아다니는 것을 보고 와서는 내게 그 감격을 후두둑후두둑 땀보다 먼저 튀겨냈다.

나도 새생명의 탄생을 축하해 주기 위해 호수밭 입구에 있는 그들의 거처로 올라가 보았다.

내가 나타나자 그렇게 강아지처럼 굴던 ‘아리’가 나를 경계하며 제 몸의 큰 털이란 털은 다 세우고 소리까지 내지르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무렴, 네 새끼를 해치겠니?“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새끼들의 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내게 엄포를 놓는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그 많은 새끼들을 죄다 제 날개 아래로 뒤뚱거리며 긁어모으더니 감쪽같이 숨겼다.

새끼에게 변고라도 생길까 신경을 바짝 쓰는 ‘아리’가 안스러워 같은 어미로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럴 때는 머리통이 360도 회전되지 않는 것을 한탄하면서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은 어제처럼 그를 두렵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다음 날에도 난 야콘밭에 가면서 머리만 그쪽으로 꺾어질듯 돌리며 갔다.

모가지를 있는대로 돌리며 순간 파악한 것으로는 어제 그 정도의 숫자가 어미 옆에서 꼬물꼬물 방정을 떠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2, 3일이 지나고 보니 어떤 놈이 다 물어가고 꼬마병정처럼 달랑 병아리 세 마리만 어미 근처에서 알짱거렸다

‘얼라리? 나머지 병아리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어린 것들이 어미품을 떠나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떤 표독스러운 것이 낮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어둔 밤을 틈타 물어간 것이 분명했다.

이건 분명 산골에 ‘위급상황’이 발생한 것 맞다.

이대로 오늘 밤을 넘겼다가는 나머지 생명들도 무사하지 못할 게 뻔하다고 결론내렸기 때문이다. 초보농사꾼이 ‘위급상황경계령’을 내렸고(그래봤댔자 경계령에 주의를 기울일 사람은 달랑 나밖에 없지만..)우리 둘은 밭일도 때려치우고 머리를 짰다.

재건축도 어렵고 부수고 다시 지어올리는 안이 현재로서는 제일 합리적이라고 얼마전에 결론지었었다.현재, 제일 나처한 일은 닭장이 허술하다는 것이다.허술하다고 수리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지금 당장 지을 수도 없는 것은 별채와 창고 공사가 한창이라 이것이 다 마무리 되면 새로운 터를 물색하여 새집을 지어줄 요량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는 위급상황이니 응급조치를 해야 했다.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 짓자, 아니다 저쪽 개울가에 짓자, 최소한 나무는 어찌 조달한다지만 망은 읍에까지 나가서 사와야 하는데 그러자면 오늘밤에 또 몇 식구가 사라질지 모른다.....

우리의 기발하고는 거리 먼 발상들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일단 몇 년 동안 닭을 키웠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고 산골의 ‘안전’에 구멍이 뚫린 상태를 알고도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부부가 일도 안하고 합의를 본 사항은 달랑 밤에 응급조치를 하기로 한 것이다.

오늘 고3 딸 주현이가 기숙사에서 나오는 날이니 그와 함께 고민하고 행동을 같이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러니 그 ‘아리’가 자식을 낳은 것도 보여주어야 했다.그뿐 아니라 인터넷을 뒤져 계란 노른자를 병아리가 잘 먹는다는 정보는 주워들어서 닭똥내가 나도록 계란 노른자를 한 접시씩 으깨주며 키운 닭이었다.어미닭 ‘아리’는 병아리 시절, 주현이가 어미를 떠나와서 체온유지가 급선무라며 패트병에 떠거운 물을 담아 병아리 옆에 놓아주고 물이 식기가 무섭게 자다가도 뜨거운 물을 교체해 주었었다.

딸아이에게 병아리를 보여주는 것이야 응급조치를 취하고 다음 날 보여주어도 되지만 딸 아이의 정서와 그의 오감을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그래서 저녁으로 미뤘다.

기숙사에서 온 딸 주현이에게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는 설명을 해주었더니 얼굴빛이 환해졌다 이내 싸늘해진다.

어미닭 ‘아리’가, 그것도 개 벤자민이 다리를 물어뜯어 한쪽 발로 뒤뚱거리며 살던 ‘아리’가 새끼를 낳았다는 대목에서는 복사꽃처럼 환해저더니, 그 새끼가 어느 못된 짐승에게 희생되었다는 대목에서는 벌레씹은 얼굴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 셋이서 머리를 짰다.

해결안은 금방 튀어나왔다.

역시 머리의 신선도면에서 우리와 비교가 안되는 머리 하나가 가세를 하니 팡팡 돌아갔다.

예전에 관상용 병아리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용하던 미니 닭장에 ‘아리’ 자식들을 넣어주기 한 것이다.

문제는 그 미니 닭장이 집 뒤 나무창고에 끼어 있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오늘 밤을 손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라 행동에 들어가기로 셋이 합의를 보았다.

딸 주현이가 손전등을 들고 우리 부부가 끼어 있는 집 뒤 어둔 곳에 끼어 있는 미니 닭장을 꺼냈다.

말이 미니 닭장이지 무게가 어마어마했고, 튼튼하기로는 방공호 벽처럼 끄떡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 산골 일이라면 얼 일 재껴놓고 달려와 도와주는 김승하씨 작품이니 여문 것에 대해서는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딸과 셋이서 있는 힘을 다해 세레스에 실었다.

그리고 호수밭 입구의 그들의 거처로 갔다.

복병은 또 있었다.

새끼들만 미니 닭장에 넣으면 이제 막 태어난 병아이들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길 거라는 문제제기를 심리학과 시 짓는 것에 관심이 많은 딸 주현이가 문제제기를 했다.

맞다.

그 점을 우린 짚어내지 못했다. 문제제기도 딸이 했지만 해결방법도 딸 아이가 내놓았다.

어미 닭 ‘아리’도 같이 미니 닭장에 넣어주자는 거였다.

비록 닭장이 넓지는 않아도 자식을 떼어놓으면 어미에게나 이제 세상에 막 태어나자마자 형제들이 줄줄이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아기 병아리들에게나 그 방법만이 최선이었다.

어미닭을 먼저 잡아 닭장에 넣은 다음, 병아이들을 넣어주었다.

‘아리’가 자기 자식들이 또 어찌될까 벌써 자기 품안에 순식간에 죄다 감추었다.

사실 고3 딸아이에게 어미 닭이 어떻게 목숨걸고 자식을 보호하는지, 또 병아리들은 막무가내로 어미를 쫓아다니며 어린시절을 보내는지를 보고 느끼게 하는 일이 나의 커다란 의무였다.

딸 아이도 신기한듯 ‘인생공부’를 하고 있다.

초보농사꾼은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병아리들을 고3 딸아이의 손바닥에 놓아준다.

그는 어린 생명의 체온이 얼마나 따뜻한지, 그의 몸무게가 얼마나 새털처럼 가벼운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오랫동안 세 마리의 병아리들을 번갈아 손으로 쓰다듬어주는 딸 아이.

그리고 물통을 찾아다 물을 부어주고, 먹이를 넣어주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혹여 병아리들이 딱딱한 바닥을 느낄까봐 푸근하라고 이불처럼 톱밥을 미니 닭장 전체에 골고루 펴주는 딸 아이.

자연에서 자라서 생명가진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아는 딸 아이.

난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연이 일러주는 공부를 놓칠까 먼저 고민하고 배려한다.

되도록 산골 집에서, 그 주위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이들을 동참시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정서의 곳간은 신선해지고, 거기에 따뜻한 감정, 감동들이 쌓일 것이고, 그의 더듬이들이 녹슬지 않게 기름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딸 주현이더러 미니 닭장 위로 열리는 문을 닫아주라고 했더니 뚜껑을 덮어주며 그가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아리야, 걱정마 이제 네 자식들이 안전할테니.. 자식들 품고 잘자렴...”

딸 아이의 주문대로 산골의 새생명들은 그렇게 안전하게 엄마 품에서 달을 보며 잠들 것이다.

딸은 이렇게 자연을 떠안아 가고 있다.

이럴려고 난 귀농한 것이고...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 배동분 : 2000년에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짓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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