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나이 港,11월과12월 사이

오호츠크를 향해 끝없이 밀려가는 먹장구름은

그곳의 오랜 관습이다.

잠시 머문 잿빛하늘로부터

그들 발자국 같은 젖은 눈이 내리면

두꺼운 철갑 위를 멍울져 번지던 붉은 메꽃들

꽃들에게 침식당한 늙은 게 잡이 배들은

오라에 묶여 요동 없는 날이 길어진다. 그런 날,

사람들은 뱃속에 산채로 버려져

항구엔 가끔 싸구려 보드카나

달러를 팔러오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며칠씩 눈이 내리는 동안

굶주린 까마귀들과 좁은 배를 뛰쳐나온

짖지 못하는 러시아 개들이 사람보다 많았다.

그것은 고요한 슬픔 같은 것이어서

낮도 밤같이 어둡고 적막하기만 했다.

도무지 세련이나 정리 같은 것들이 연대하지 못해

낡은 흥건함이 차라리 평안했던 곳, 그곳은

내면에서 이면으로 밀려난

떠도는 것들의 은신처이기도 했으므로

내장 속을 흐르는 피마저 차갑게 응고되어야

외로움이나 그리움 따위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땐가 녹슨 뱃속에서 구역질처럼 튀어 나온 사내가

그의 내장을 덥혀주던 싸구려 보드카를

바다위로 다 토해내고 기어이 그 자리에 쓰러지기도 했다.

바람은 불지 않았으므로 내린 눈들이

점점 부풀어 올라 솜이불 같던 저물녘

나는 그 속에 누워 내가 건너온 바다와

바다위에 찍힌 숱한 발자국을 더듬다

어느 순간,

말없이 남겨 두고 온 것들이 와르르 밀려들 때면

비스듬히 바다 쪽을 향해 몸을 기울여

심하게 출렁 거리기도 했다.

결국 남겨진 것은 나였으므로

참으로 지리멸렬한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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