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서는 저녁 7시면 한밤중이다.

그 어둔 밤, 비가 내린다.

그것이 샘이 나는지 이어서 눈도 가세를 한다.

끼어든 눈이 염치는 있는지 눈 방울을 키우지 않고 자근자근 비만한 눈을 뿌리고 있다. 일명 싸래기 눈.

어둠 속에서 서로 튀지 않고 도반되어 내리는 눈과 비.

한 해 끝에 서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한 해를 제대로 갈무리 하라는 신의 메시지를 들고온 천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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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거나 대형 마트에 가면 놀랄 때가 많다.

씻어나온 쌀이야 오래 되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채소 등이 씻어져 판매되고 있다.

이제는 콩나물까지 씻어 나온다.

씻고 다듬고, 자르고 하다못해 양념까지 다 해서 나온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마늘을 까서 팔고, 그것을 갈아서 파는 정도야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팔고 있는 알타리를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알타리 무를 다 다듬어 팔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씻어서까지...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알타리의 머리채는 그대로 두고 잘잘한 무만 다듬고, 그것도 모자라 무만 씻어서 팔고 있다.

무청까지 씻으면 금방 시들고 나중에는 썪을 우려가 있으니 그렇게까지 해서 팔고 있다.

옛날 우리네 어머니 세대가 보면 기절초풍할 노릇일 것이다.

산골에 사는 아낙이 아는 것만 해도 그런데 이 외에도 편리해진 것을 들라면 널리고 널렸을 것이다.

주부인 나로서도 반가워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뒷맛이 머위 잎을 먹은 것처럼 씁쓸하다.

아니 뜨악한 느낌까지 든다.

인간을 더 편리하게 해 주는 일에 초치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편리해진다는 것은 좋아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이웃 동네분이 얼마 전에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란 분이고 초보농사꾼이 형이라고 부르며 가깝게 지내는 늘 한결같은 분이다.

그 분이 몇 해 전에 배추 농사를 지어 팔 곳이 없어서 이곳의 어느 아파트에 어렵사리 들어가 배추사라고 외쳤단다.

그랬더니 아파트 베란다 문을 열고 되외치는 소리

"아저씨, 배추 하나 좀 들어 봐 주세요. 이쪽으로 돌려봐 주세요"하더란다.

한참을 시키는대로 배추 한 통을 들고 그 뙤약볕에 서커스단이 접시 돌리기를 하듯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나니 알았다면서 몇 포기 집까지 갖다 달라고 하더란다.

높지도 않은 아파트에서 금방 튀어 나와 뒤집어 보고 사면 될 일을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며 배추를 이리 저리 돌려 보라고 하다니...

나이도 배추잎처럼 새파란 여자가...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얼굴이 뜨거웠다.

모든 주부가 그렇다고 싸잡아 몰고 가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렇게 편리해짐으로써 귀신같이 절약한 시간을 어디에 쓰는가 하는 물음에는 정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마늘을 까느라, 그것을 빻느라, 알타리를 일일이 다듬고 씻느라, 콩나물을 다듬고 씻느라, 배추를 뒤집어 보느라 사용했던 그 시간들을 절약하여 우리는 어디에 쓰고 있는가.

요즘 낮에 전화해서 집에 있는 주부는 왕따 아니면 인간관계에 하자가 있는 사람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렇다면 늘 바쁘게 돌아 다녀야 인기 있고, 인간관계가 좋은 주부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무슨 일로 바쁜지는 상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너나 없이 모두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언제부턴지 몰라도 정신없이 바빠야 제대로 살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바쁜 것이 무엇 때문인지 이젠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알타리 무까지 씻어주는데 절약한 시간을 우린 무엇을 하는데 쓰는지 자신에게 물을 일이다.

그렇게 절약한 시간을 내 안의 뜰을 들여다 보고, 영혼을 단속하는데 사용하면 오죽이나 좋을까.

현대는 시간을 절약하는데, 무엇을 빨리 해치우는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런 반면에 그 알뜰살뜰히 절약한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선 지금만이라도 우리 모두는 멍해질 필요가 있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명상이고, 나사 하나쯤 풀린 사람처럼 멍한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나를 들여다 보고, 자신이 어디서 와서,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갈 것인지를 거듭거듭 자신에게 묻고 대답해야 한다.

남이 침튀겨가며 하는 증시얘기며, 꼭집게 과외 얘기며, 판교 이야기 등에 귀기울이기 이전에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 시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탁해지고, 말라 버리는 영혼에 물을 주고, 싹을 틔우는 시간이다.

그러한 시간을 많이 쌓은 자만이 험하고 탁한 세상에 영혼을 맑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제 떼에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일, 일하지만 우리는 이렇다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고....

너나 없이 새겨들을 일이다.

내가 말은 이렇게 좌판 위의 화려한 옷처럼 장황하게 늘어 놓았다마는 남의 말할 처지는 못된다.

오라고 손짓한 것도 아닌데 울진의 산중에까지 삐집고 들어와 둥지를 튼 나로서는 이 한 해의 끝에 더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 있을 일이다.

(이 글은 2007년 겨울에 쓴 글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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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동분 : 2000년에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짓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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