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사람을 세상으로 내보낼 때, 그릇을 하나씩 선물로 주었다.

같은 크기의, 같은 재질로 된 그릇 말이다.

사람들은 그 그릇에 각자의 성격, 인격, 취향, 지식에 따라 각기 다른 내용물을 담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 그릇이 사원이 되도록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 사기, 탐욕, 질투, 욕심, 거만 등을 쑤셔 넣어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아예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누군들 후자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까마는 이 모든 것은 선천적인 일, 환경 탓으로 돌릴 일도 아니라고 본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가치관의 전환으로 가능한 일이지 싶다.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 시점에서 내 그릇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지금껏은 남의 그릇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은 눈을 내 안으로 돌릴 때라고 본다.

내 그릇이 찌꺼기로 얼룩져 있는지, 악취가 풍기는지 말이다.

닦고, 털어내고, 새는 곳은 떼우는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연말이라 모두들 바쁘다고 한다.

그 바쁜 것이 무엇때문에 바쁜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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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끄트머리에 섰다.

해마다 맞이하는 연말이지만 삶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연말의 의미가 무겁게 느껴진다.

거기에는 첫째 ‘나이값’이라는 의무와 두 번째, 죽음으로 내달린다는 의식이 평소에는 조용히 엎드려 있다가 이때만 되면 진하게 깨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근래 들어 사람을 처음 보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나이값을 저울질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 저울질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끝나고 그 평가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쪽집게가 되어 간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도 그 평가를 비껴갈 수 없다는 것이 사람 긴장하게 만든다.

 

나이값이란 그렇게 무서운 거다.

두 번째, 죽음으로 내달린다는 것.

많은 이들이 죽음을 말하면 주로 눈살을 찌뿌린다.

그러나 죽음을 부정적인 의미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죽음은 삶의 이면이다.

동전과 같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뜀박질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거다.

한 해 끝에 왜 이런 해골복잡한 얘기를 하느냐고 하겠지만 이때 만큼이라도 머리 뻐근하게 생각해야 한다.

원샷을 외칠 때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때 만큼은 충분히 묵상하고, 침묵해야 하며 몸서리치도록 고독해야 한다.

그런 자만이 한 해 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방치해 두었던 마음의 뜰을 살필 수 있다.

마음 구석구석을 비질하고, 부서진 곳은 흙을 개여 떼워야 하며, 상처난 곳은 바닷물이라도 길어다 소독해야 한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새해가 코 앞에서 남실대고 있다.

충분히 침묵하고, 몸서리치고, 동백나무 잎처럼 앞마당을 반질반질 청소한 자만이 그 새해를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딪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내게 묻는 말이다.

그대 지금 고독에 몸서리치고 있는가?

((이 글은 2007년 겨울 끝에 쓴 글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 배동분 : 2000년에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짓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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