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독일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추방당한 후에야 비로소 그곳이 낙원이었음을 깨닫는다.”는 헤세의 말을 내가 자주 여행하고 싶어하는 이유로 덧대고 싶다.

나의 울타리로부터 훌쩍 떠나봐야 내 울타리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그 속에서의 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으로 그 울타리를 꾸려 갔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떠난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그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내가 몸 담았던 알처럼 생긴 공간에서 난 어떤 생각으로 무얼 위해 살았는지를 들여다 보기 위해서가 그 첫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귀농 16년차를 마무리하고 17년차를 맞이하면서 삶의 구도를 다시 잡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장거리를 가려면 중간중간 내가 서있는 자리를 들여다 보고 변화된 상황에 걸맞게 계획을 수정하여 다시 내 인생의 기차를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야 할 시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 지난 여행 때 이태리에서...

마지막은 내가 늘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고민해오던 농촌어메니티를 위해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싶어서다. 오스트리아는 그래서 이번 여행계획에 넣었다.

작은 마을이 어떻게 해서 전세계인의 입을 쩍 벌리게 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이유 등도 한몫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아이들을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귀농 때부터 끊임없이 다른 나라를 들여다 보고 느끼고 배우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이 청춘이 되고 나서부터의 여행은 아이들도 나도 각자의 삶을 맑은 시냇물처럼 훤히 들여다 보기 위해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딸과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라 설레기도 하지만 배낭여행이라는 점에서 순간순간 당황하고, 실망하고, 혹은 기대 이상이라 행운이라 생각하며 길 위에 서는 거라 더 용기가 필요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한국을 떠나 이번 배낭여행의 첫 번째 나라인 독일로 간다. 독일은 이번이 세 번째이지만 여느 때보다 더 설레는 이유는 내가 자빠지도록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프를 가기 때문이다.

▲ 지난 스위스 여행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부침이 많은 삶을 살았던 헤세에게는 배울 점이 한둘이 아니다. 여행광이자 독서광이라는 점이 질투를 느끼게 하지만 그 외에 사십이 넘어서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나를 꿈꾸게 만든다.

나라면 ‘그 나이에 무얼 그린다고...’라며 체념했을 것이다. 그러나 헤세에게 그림은 그의 나머지 삶을 더 풍요롭고 윤기나게 해주었다.

이제 나 역시 오십이 넘은 시점이지만 헤세처럼 나를 나답게 해주고 내 삶을 구리스를 바른 것처럼 윤기나게 해줄 새로운 그 무엇에 도전하려고 한다. 그 계획에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헤세의 고향 칼프를 찾아간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늘 듣는 다락방의 시계초침이지만 오늘은 나의 등을 떠미는 소리로 들리고 많이 비우고, 더듬이를 재정비해서 많이 느끼고 오라고 속삭이는듯하다.

이 시간 초보농사꾼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 본다.

딸이 배낭여행이라는 마약과도 같은 말을 꺼냈을 때 제일 먼저 박수를 쳐준 사람은 초보농사꾼이었다. 아무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귀농해서 열심히 노력한 당신이니까 충분히 자격있다며 그는 내 등을 떠밀어 주었다. 3년 전인가 유럽을 떠날 때도 그가 꼭 다녀오라며 일일이 다 준비를 해주었는데 이번에도 그는 나보다 더 앞서 유럽에 발을 들여 놓는 듯 힘을 실어주었다.

야콘즙 짜는 것만으로도 1년 노동 중 반 이상의 노동을 하는 이 시점에 야콘, 야콘즙, 각종 효소 등을 택배로 발송해야 하는 일까지 떠맡기고 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더 주저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내가 길을 떠날 때는 먼저 나서서 내 신발끈을 묶어주는 사람이었다. 이 새벽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초보농사꾼을 바라보며 되새겨본다.

‘그래, 선우아빠, 더 많이 나를 비우고, 거기에 나머지 삶을 가기 위한 영혼의 연료를 담아 올게. 고마워.’

날이 밝아온다. 이제 짐을 싸서 문을 나서려고 한다. 세상을 다시 보기 위해 나의 각도기를 돌리려고 한다.

‘그대의 각도기는 어디를 향해 있는지요?’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 배동분 : 2000년에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짓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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