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날은 추웠다.

따뜻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봄이라고 입만 열면 떠들었지만 내 입에서는 좀처럼 ‘봄’이란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걸음걸이로 치면 잽싸게 걷는 것도 느릿 느릿 걷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걸음으로 사는 산골의 3월!

그렇다는 건 날씨가 정수리가 뻐개질 정도로 추워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고, 초여름의 그것처럼 ‘나 잡아잡수’ 라며 걷는 날씨도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어쩌면 한겨울의 기세등등한 날씨보다 이런 날이 더 견디기 힘들다는 건 귀농해서 깨쳤다.

어린 아이가 한글을 깨치듯...

그런 날, 금강송면 답운재에 있는 우리집 사과밭에 열기가 뜨거웠다.

예천농업기술센터의 최효열계장님이 오셨기 때문이다.

최효열계장님은 작년에 울진군농업기술센터에서 개강한 사과교육의 전문강사로 오셔서 사과농사에 관심이 많은 농업인들에게 사과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담당하셨던 분이다.

계장님과 초보농사꾼은 강사와 교육생의 인연뿐만 아니라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원의 인연도 있고 하여 여러 모로 우리 사과밭에 관심을 보여주셨다.

 

이번에도 일요일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예천에서 울진 산골까지 직접 오셔서 사과나무의 전지, 유인하는 법, 퇴비와 약재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직적인 현장교육을 위해 우리 사과밭에 와 주신다고 하였다.

초보농사꾼은 이런 좋은 기회를 우리만 달랑 배우는 것보다 같이 교육을 들었던 사과를 심은 농가, 사과를 곧 심을 농가인 분들도 함께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모두 우리밭으로 부르자고 하였다.

이른 아침, 계장님은 그 추운 날 오시기로 예정한 시간보다 한 시간도 넘게 먼저 사과밭에 도착하셨다.

하나둘 사과에 대한 열정을 가득 안고 도착한 울진의 사과농업인들과 구체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직접 전지를 해가면서 사과의 속성, 사과밭의 토양 등 직접 배우는 현장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기로 가득했다.

몇 시간 모두가 우리 사과밭에서 직접 전지를 하고 궁금한 점, 고민되는 점 등을 질문해가며 시간가는줄 몰랐다.

사과밭에서의 교육이 끝이 아니었다.

사과밭에서 모두 이동하여 우리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교육은 계속 되었다.

등 뒤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열기보다 사과농사 초보자들의 열기가 더 뜨거웠다.

잔에 막걸리를 가득 붓고 사과농사의 성공과 풍년을 위해 건배하는 모습에서 울진 사과농업의 미래가 밝음을 예측할 수 있었다.

식사시간 내내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고, 사과밭에서의 열기 못지 않은 열기가 산골 우리집에도 전염되었다.

모두 열 명이 모여 앉아 사과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느덧 소리소문 없이 하루 해가 기울고 있었다.

서둘러 어둡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며 나서는 최효열계장님..

얼마나 고마운지...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부부는 작년 봄, 사과나무를 심을 때부터 이웃의 봉화군에 오래 전부터 사과농사를 전문으로 짓고 있는 지인의 농장을 드나들었다.

직접 전지하는 법도 배우러 가고 적과할 시기에는 배울겸 도와드릴 겸 해서 쫓아가고, 수확시기에도 우리 부부가 달려가 몸으로 배우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과농업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조사에 따르면 FTA에 따른 가격하락 등으로 전국에 포도농사를 접은 농가들의 작목전환 희망 품목이 복숭아, 자두, 사과 순으로 재배의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과공급과잉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명품사과를 생산하는 것이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실패하는 사람이 있듯이 사과농사 또한 그러하리라 믿으며 오늘도 사과밭에서 퇴비를 뿌리고 있다.

** 배동분 : 2000년에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짓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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