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독도 항해의 전진기지 구산리 대풍헌에서

▲ 수토사들의 출항모습

울진군이 주최하고 울진문화원이 주관한 ‘2016 울진 수토사 뱃길 재현’은 구산항 일대에서 성대하게 재현 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관내 육군, 해군부대 장병들과 영남대학생들과 후포고등학교 학생 일반풍물놀이패 150여명이 출연해 옛 수토사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 내었다.

이날 뱃길 재현은 조선시대 울릉도, 독도 항해의 전진기지인 평해읍 월송리 ‘월송포진’에서부터 출발해 구산항 마을 중심에 자리한 대풍헌까지 행렬이 재현 되었다. 이어 대풍헌에서 수토출항식을 마치고 고유제를 지낸 뒤 뱃길 재현과 학술탐사까지 행사가 진행 되었다.

수토(搜討)의 의미와 역사는 어느 지역을 수색하여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기 위하여 조사한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울릉도수토란 울릉도에 들어가서 섬의 형편을 조사하고 몰래 울릉도에 들어가 사는 주민이나 혹은 일본인이 우리 영토에 들어와 있는지 수색하여 토벌한다는 의미이다. 조선 후기 1693년 안용복이 울릉도에 들어갔다가 일본 어부들에 의해 납치되어 일본으로 끌려간 사건으로 인해 조선과 일본 사이에 울릉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조선은 삼척영장과 월송만호를 수토사에 임명하여 3년 또는 2년에 한 번씩 교대로 울릉도를 수토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이는 1694년 장한상의 울릉도 수토로부터 1894년 수토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될 때까지 200년간 시행한 국가정책이다.

또 대풍헌(待風軒)은 동해안 해변의 구산리 마을 중심부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원래 이 건물은 동사(洞舍)였으나, 조선 후기 구산항에서 수토사들이 순풍(順風)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가 되었으며, 구산항이 울릉도 수토 출항의 기점임을 알려준다. 또 이곳에는 삼척영장과 월송 만호 등 수토사 일행의 각종 경비를 조달하는 방책이 적힌 완문(完文) (1871)과 수토절목(搜討節目) (1883)이 있으며, 대풍헌에 걸린 다수의 현판 (1851~1906)은 당시의 지역 상황을 잘 알려준다. 그러므로 대풍헌은 조선시대 울릉도를 순찰하던 수토사들이 머문 장소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며, 특히 고문서와 현판들은 우리나라가 울릉도를 지속적으로 관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수토사들이 승선하는 모습
▲ 뱃길 재현에 출연한 학생들 모습
▲ 수토사들을 태우고 힘차게 출항하는 모습
▲ 안전과 수토의 성과를 위해 조상에게 고하는 고유제 모습
▲ 월송포진에서부터 대풍헌까지 행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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