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떠난 유럽 배낭 여행

나의 귀농을 몇 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난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이 단어를 빼면 나의 귀농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 책, 여행 그리고 내 의지대로 굴러가는 느림의 삶!!!

그 중 여행의 한 파편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라고....

우리는 좁은 계단을 따라 마음의 방마다 들어찬 고독과 마주서기 위해 떠나야 하고, 혼자라는 것을 더욱 뼈저리게 인식하기 위해 떠나고, 질척거리는 삶 속에서 내 의식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린 떠나야 한다.

모눈 종이라는 삶의 그 쬐그만한 칸을 꾸역꾸역 메우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으므로 떠나야 하고, 삶의 걸음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갈팡질팡할 때 우리는 떠나야 한다.

그래서 난 귀농하면서부터 아이들에게 여행을 가르치기 위해 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소모했다.
그렇게 키운 딸이 청춘이 되었고, 그와 함께 배낭을 둘러매고 유럽으로 떠났다.
몇 년 전에 독일, 이태리, 스위스 등의 유럽 여행을 갔을 때와 달리 이번 여행이 더 심장 뛰는 것은 배낭여행이라는 것도 있지만 체코를 둘러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입에서 ‘프라하’ 하고 발음할 때 전해오는 가슴 속 울림과 겨울의 터널을 지나 ‘봄’하고 발음할 때 느끼는 감정이 같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속에는 먼저 역사의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름 아닌 ‘프라하의 봄’이라는....

1968년에 일어난 민주자유화운동과 이를 막기 위한 소련군의 군사개입이라는 아픈 역사가 우리의 머리를 옥죄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서인지 긴 겨울동안 얼어 있던 것들이 봄에 환생하듯 ‘프라하’라고 발음하면 왠지 아리함 위에 싱그러움이라는 감정도 느껴지는 곳이라 늘 나의 신경이 그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러다 이번 긴 유럽 배낭 여행 중에 가게 된 프라하라서 그 기대감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딸과 난 프라하 성(Prague Castle) 주위를 먼저 둘러보기로 한 날이다.
트램을 타고 가기도 하지만 우리는 되도록 걸어서 다니기로 했다.

프라하 성은 우리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주위에 어떤 건물도 견주지 못할만큼 웅장하고, 화려하며, 프라하 성 혼자서도 우뚝 솟아 위엄을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화영 작가는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에서 "관광객이 찾아가는 성은 이미 성이 아니다."라고 했다.
프라하 성을 둘러 보는데 그의 말이 생각났을까.

프라하 성은 내가 생각했던 고즈넉한 곳에 웅장하고 범접할 수 없는 표정으로 우뚝 솟은 성이 아니었고, 성이 지니고 있는 비밀스러움을 느끼지도 못했다.
거기에 관광객까지 북적였으므로 김화영 작가의 그 말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 (멀리로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성당의 탑이 보인다.)

프라하 성은 1918년 대통령관저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도 성의 일부를 체코 대통령의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러움이 삐져 나왔다.

프라하는 목적지에 들어서야만 감동하는 것이 아니고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표정들이 펼쳐져 있다.

걸어가는 골목길도 아기자기하고 내려다 보는 지붕들도 하나의 명화를 보는 듯 가슴 밑 명치께가 뻐근해져 온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성 비투스 대성당(ST.Vitus Cathedral)이었다.
지금의 모습은 14세기에 들어서 카를 4세가 고딕양식으로 지으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니 그 오랜 세월의 땀과 꿈이 현세의 사람들에게까지 웅장하고, 아름답게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타바 강과 카를교에서 바라봤을 때 보이는 높은 첨탑은 성 비투스 성당의 탑이다.
얼핏 보고 난 프라하 성으로 착각될 정도로 성과 성당은 지척에 있다.

 

이곳 성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이니 두 말 하면 입 아플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성 비투스 대성당의 어마어마한 규모, 웅장함과 아름다음에 오래도록 그 주위를 맴돌았다.
탑돌이 하듯이...
그것은 어느 종교의 건물이라기 보다 성당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문 바로 위의 ‘장미의 창’을 비롯하여 본당 주위의 화려하고 정교하며 기품이 있는 예배당 벽면 등에는 금으로 장식되어 있어 얼마나 열정적으로 공들여 지은 건축물인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성의 지하에는 5인의 성자들과 카를 4세, 바츨라프 4세 등 체코의 왕들과 대주교 등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그렇게 프라하 성에 빠져 몇 바퀴를 돌며 정신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동안 12시에 맞추어 프라하 성 정문으로 갔다.

▲ (프라하 성 맞은 편에서 교대식을 위한 행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 프라하 여행에서 덤으로 얻은 선물은 프라하 성의 “근위병 교대식”이다.
근위병 교대식은 하루에 여러 번 이루어지는데 가장 큰 교대식은 12시 정각에 대통령궁이 위치한 프라하 성 내부 광장에서 이루어진다.

이 교대식은 체코를 찾는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모여든 가운데 열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12시가 되기 전부터 여행객들이 프라하 성의 정문을 막아서지 않고 질서 있게 관람하도록 계속 주위를 정리했다.


사람들은 점점 불어났고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 누구도 질서에 어긋나면 바로 주의를 주는 등 엄격함이 묻어나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근무를 서고 있는 근위병과 교대할 근위병들은 성문 반대편에서 등장했다.

그 전에 근위병들 가까이로 관광객들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그곳 역시 정리정돈이 미리 이루어졌다.

제복을 입은 근위병들의 교대식은 한참동안 질서정연하고 위엄 있게 이루어졌다.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도 숨을 죽이는 것으로 그들의 의식에 모두 동참했다.
근위병 교대식 하나로도 이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라마다 이런 관광상품이 있겠지만 유독 프라하 성에서의 이 의식이 왜 감동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주위의 모든 건물과 풍경들이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이유 하나를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오래된 성 일부를 아직도 대통령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그 의식이 보여주기 위해 꾸며진 ‘가짜’라는 생각보다 한데 어우러진 ‘진짜’ 같은 생각이 들어 얼굴 색이 모두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숨죽이며 감동받은 것은 아닌지...

딸의 손을 잡고 빨강 지붕들과 거리의 악사 등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체코에서 며칠 묵었으므로 맛난 것을 사먹고 나면 카를교로 프라하 성으로 무엇에 홀리듯 달려 갔다.

갈 때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때깔이 달랐다.
풍경은 말하고, 난 듣는 여행은 그렇게 한 장 한 장 채워져 갔다.

** 배동분 : 2000년에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가공에 힘쓰고 있으며, 밤에는 글을 짓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귀거래사>가 있다.

 

저작권자 © 울진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