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배운다[1]

▲ (프로슈토 디 파르마 햄 농장주 까를로(Carlo)씨)

평소에는 사감선생님처럼 차가운 시선을 간직하고 살았을지라도 훌훌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 떠나는 순간에는 어린왕자와 같은 따사로운 눈빛이 된다.

귀농하여 내게 벅찰 정도의 농사를 땀흘려 지었고, 누구보다 바닥부터 기었다.
그것은 내가 기본을 배우기 위함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그러는동안 나도 모르게 기초공사 정도를 하였다고 볼 수 있고, 내가 생산한 농산물로 조금씩 가공을 하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뚜벅뚜벅 길을 가고 있다.
그런 중간중간 바람이 들듯 훌쩍 자리를 떠나 나를 돌아보고 내가 꿈만 꾸는 것들을 햇볕에 쬐이곤 한다.
그 몸짓 중 하나가 몇 년 전, 유럽으로 배움의 길을 떠난 일이다.

명품 햄 하면 어디가 떠오를까?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디 파르마라는 직인과 왕관표시가 찍힌 햄일 것이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로마냐 파르마시..

인구 18만의 소도시 파르마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프로슈토 햄을 만들어 세계로 수출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우리는 뭔가를 대단하게 한다고 하면 일단 크게 벌려야 성공하는 줄 아는 현실이기에 더더욱 난 그 프로슈토 햄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도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남유럽의 특징은 대가족 농업경영에 있다는 것도 나의 관심을 끌었다.

햄하면 일단 왕관표시가 턱하니 찍혀야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위해 몇 년 전, 현지로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내가 여행이라 하는 것은 놀러가는 것만 여행이라 부르지 않는다.
‘내 울타리로부터 훌훌 털고 어떤 관심과 나를 이끄는 곳으로 떠남‘을 의미한다.
그 떠남에서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나의 꿈을 찾는 것이 포함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대단한 ‘프로슈토 디 파르마’ 햄을 생산하는 농장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우선 그런 가공농장이라면 시설이 어마어마할줄 알았는데 중속규모라는 것에 우선 놀랐다.
또 앞에서도 말했듯이 가족경영 형식으로 총 4명이 연간 5만 개를 생산하는 곳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프로슈토 햄은 이탈리아 북부도축장에서 생후 9개월 이상 되고 무게가 150키로 정도의 돼지를 도축한 후 돼지뒷다리만을 5일 안에 공급받는다고 한다.

첫단계 - 돼지다리를 3도에서 5일 동안 소금을 치고 보관한 다음 기계로 마사지한다. 그리고 다시 염장을 한다.
두 번째 단계 - 2도에서 2주간을 보관하고, 마사지한 다음 소금기를 제거한다고 한다.

세 번째 단계 - 같은 2도에서 선풍기를 돌려 4개월 동안 건조시킨 다음 세척 후 다시 5도의 냉장고로 이동하여 숙성한다.
네 번째 단계 - 6개월 후에는 돼지기름에 소금과 후추를 넣어 살 표면에 발라준다.

▲ (숙성 정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이렇게 1년 숙성을 거친 것은 협회에서 나와 철저한 검사를 실시한다.
그래야만 세계에서 인정하는 파르마 왕관 인장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검사관은 숙성된 뒷다리를 뼈로 다섯 군데 찔러 향을 맡는다고 한다.
그 향으로 숙성도를 판단한다고 하는데 이 때 사용되는 뼈는 말뼈라고 한다.
말뼈는 향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말뼈로만 검사를 한다고 한다.

▲ (말 뼈로 햄의 숙성정도를 체크하고 있다. 이것으로 품질이 결정된다.)

내가 방문한 농장 대표인 까를로(Carlo)씨도 검사관으로도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코에 5천유로 보험이 들어 있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것은 앞에 설명했듯이 향으로 햄의 숙성도와 질을 평가하기 때문인 것 같다.
프로슈토 햄은 2년 숙성일 때가 최상이며 3년까지 보존할 수 있고 중량이 많을수록 오래 보존할 수 있단다.

저장고마다 다른 숙성기간을 보이고 있는 돼지 뒷다리가 걸려져 있는데 각 단계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온도가 달랐고 냄새와 색깔도 달랐다.

천장에서는 농장주가 끊임없이 관리하고 있다는 뜻인 듯 팬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대충 뒷다리 하나면 판매가가 약 150유로 정도이고 1키로 기준 25~30유로라고 한다.

돼지 뒷다리마다에 찍힌 칩으로 생산이력의 추적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농장에서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막 슬라이스해온 최고급 프로슈토 파르마 햄을 먹어 보았다.
이 곳에 오기 전, 각종 향신료 등으로 절여진 햄에 길들여진 입이 호강하는 순간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슈토 햄 가공현장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은 내게 큰 격려였고 시사하는 바가 컸다.

첫째, 로마시대부터 돼지고기 다리를 저장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지금까지 그것을 이어왔다는 점이 눈에 들어 왔다.

둘째, 무엇이 뜨면 여기저기서 서로 만들어 팔아 서로 망하는 우리네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돼지를 사육하는 것은 아무 곳에서 해도 되지만 햄 가공만큼은 파르마 남부 지역에서만 하도록 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하겠다.
그렇게 되면 전통을 유지하고 집중적이고, 철저한 관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셋째, 세계적으로 유명한 햄을 생산하는 것이라면 대기업에서 달라들어 대형 가공시설에서 만들어지는 것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가족단위의 작은 농장에서 생산하도록 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넷째, 그 지역에서 흔한 것을 이용하여 명품화를 이루어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 역시 돼지 뒷다리와 소금이 풍부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은 제품으로 재탄생할까를 그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하고 전통을 이어왔다는 것이 부러웠다.

▲ (세계적인 명품인 햄을 만드는 곳의 주위 풍경이다. 대형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놀랍게도 한적한 시골 마음처럼 보이는 곳에 농장에 있었다.)

다섯 째, 농가 레스토랑과 시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6차 산업으로의 접목이 자연스럽게 잘 되어 있었다.

무엇을 배운다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있을까?
내게 당장 필요해서 배우는 것이 아닌 배움은 더 사람을 여유있게 만들과 깊은 사고를 하게 만든다.

이번 이탈리아에서의 여러 가지 배움이 그랬다.
여유 있게 사고하면서 하나하나 그들의 역사와 노고, 땀과 그들의 영광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어항을 묻어 두었다가 확인하는 그런 기분이다.

이탈리아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길을 떠나보면 알아듣던 알아듣지 못하던 말을 걸어오는 풍경이 있고, 말을 걸어오는 교훈이 있다.

그래서 난 자주 내 울타리를 떠나고 싶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배동분: 2000년에 금강송면으로 귀농하여 농사지으며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과 <귀거래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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