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를 뿌리려고 작년에 씨를 받아두었던 바구니를 찾았다. 바구니에서 그대로 엎드려 일년을 보낸 터라 그런지 냉큼 내 가슴으로 와 안긴다. 봉선화, 채송화, 과꽃씨등을 심으려니 여간 땅이 가문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비가 오면 심기로 마음먹고 검고 하얀것들을 다시 올려 놓았다. 아무리 가물어도 오늘 꼭 심으려고 했던것이 목화였다.
씨를 어렵게 구한지라 물을 매일 길어다 줄 요량으로 언덕에 심었다. 지금 아이들이 목화를 기억할까? 아마 문익점이라는 위인전에서나 들어본 이름일게다. 한 숟가락 정도 되는 양이지만 어서 자라 나의 아이들에게 "옛날 분들은 이불솜을 이 꽃에서 구했단다'' 라고 얘기해 주려고 서둘러 심었다.
가문땅에 심은지라 물을 길어다 주는데 꽤 인내력을 필요로 했다. 올해 씨를 더 많이 받아 내년에는 한밭 가득 목화를 심어야 겠다. 내용이야 있든 없든 많은 아이들이 목화를 보러 오도록.....
귀농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이들이 제일 걱정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잘 적응을 할까? 햄버거, 치킨, 피자등이 먹고 싶을텐데, 재래식 화장실에 쭈구려 앉아 볼 일을 못볼텐데, 학교에 다녀왔을때 에미,애비가 저 윗밭에 가 안보이면 무서워 하지 않을까.... 그런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지금은 아이들이 싫어할지 몰라도 크고 나면 부모에게 고맙다고 할거야'' 남편은 자신에 찬 소리를 했다. 그러나 난 글쎄 였다. 막상 귀농하고는 애들 상태만 살폈다. 짐정리, 집정리 등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집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집을 위해서 있는건 아니다 싶었다.
더욱 아이들의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였다. 최소한의 문화충격을 줄여주어야 할 의무가 내겐 있었다. 남편은 이삿짐만 내리고는 서울로 갔다. 사표수리는 언제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적응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암세포 번지듯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적응을 못했다.
화장실 갈 때 대낮에도 두놈이 같이 가주고 한참을 그러더니 낮에는 혼자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두워지면 후레시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가주었다. 도시에서는 놀 때에도 각자 노는 일이 많았다. 이곳 산골에서는 둘도 없는 친구다. 아이들이 둘인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그러다 애들 아빠가 산골로 합류하게 되니 아이들이 더 명랑해지고 재미있어 했다. 아이들은 논리적이고 머리로 다가오는 지 에미보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다가오는 지 애비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나도 보다 단순하게 행동해야 팬들을 놓치지 않을것 같다.
얼마전에는 아침에 주현이가 "학교에서 오는 길에 덕거리 친구집에서 놀다 오면 안되느냐''고 물었다. 그곳은 마을 입구로 어른도 15~20분 걸리는 거리다. 그 전에도 놀다 온다기에 올때는 혼자 걸어서 오라고 했는데 결국 지 아빠를 불러 그때 아빠와 약속한 바가 있었다. 혼자 걸어올 자신이 없으면 놀러가지 말라고 친구도 없는 곳인데 아이들 데리러 가는 것 쯤이야 당연히 해야 하는건 아닌가 생각하니 그이가 야속했다.
주현이는 혼자 걸어올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결론이야 어땠든 고맙기까지 했다. 그러나 저녁이 다 되어도 아이 그림자는 안보이고 나무 그림자만이 늘어만 갔다. 이제 초등학교 아이를 너무 일찍 산골아이 취급한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애려왔다. 전화를 하자니 버릇될 것 같고 선우에게 집 입구 다리까지 가보라고 일렀더니 한참후에 어둠만 데리고 나타났다.
이제는 버릇이고 뭐고 애 놀랄까 싶어 뛰어 나갔다. 비포장길 끝날 즈음에 하얀 물체가 보였다. "주현이니?'' "네 엄마!'' 아이의 목소리는 맑고 밝았다.
"주현아, 혼자 걸어왔어? 왜 이렇게 늦었니?'' 아이는 극히 침착한데 에미만 호들갑이다. "엄마, 오다가 냇가보며 생각도 하고 또 오다 멈추다 놀고도 왔다'' 어린것이 에미보다 낫구나 싶었다.
아이는 길가에 아무렇게나 타다 세워둔 두발 자가용을 보더니 샬롬 샬롬 노래를 부르며 뛰어가 탄다. 헤브라이어로 샬롬은 "평화''라는 뜻이다.
이제 봄이 지나려는 듯 바람도 기가 죽어있다. 어쩌면 바람이 봄 따라 갈지도 모른다 싶을 정도로 처마밑에 걸어둔 풍경이 제 구실을 못한다. 오늘 밤에는 개구리와 함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줘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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