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도 그랬지만 주부는 칼이 잘 들어야 일이 수월하다. 도시에서는 아버지께서 갈아주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친정에 가겠다고 전화드리면 대뜸 "막내야, 칼 신문지에 잘 싸가지고 가방에 찔러넣어 오너라'' 하신다. 그러면 난 집에 있는 칼은 다 갖고 나선다.
딸이 들어서면 딸 얼굴도 안보시고 가방 먼저 받아 칼부터 꺼내신다. 그러시고는 당뇨병으로 힘든 몸을 어찌 어찌하여 하루 종일 칼만 가신다. 엄지 손가락으로 날을 슥 문질러 보았다 다시 갈았다를 반복하시며 하루 종일 잘 노신다.
다리가 굳어진다며 의자를 찾으시고 다시 자리를 고쳐 앉으시면 한동안 다시 칼을 가신다. 이 칼로 어찌 살았느냐고 계속 중얼거리시며 날이 서기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만에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는데 신문지에 싼 것을 내놓으신다.
"막내야,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가시기 전날 네 칼 마저 한 개 두고 간 것 갈아서는 이리 싸놓으시고 가셨구나'' 엄마와 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한 겹 한 겹 신문지를 풀며 아버지의 애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그 위로 다 헐어버린 내 상처에 애비의 애림이 흘러내린다.
한동안 그 칼을 쓰면서 `이제는 이 도시에서 누가 내 칼을 갈아주나'하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귀농 한동안 그 칼을 썼으니 얼마나 칼이 무뎌졌겠는가. 오는 이 마다 칼을 갈아 쓰란다. 갈아써도 되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의 손끝을 느끼고 싶어서이리라.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너무 들지 않으니 손가락이 위험할 지경까지 되었다. 혼자 칼을 간다.
초보농사꾼이 낫을 간다고 사다놓은 슷돌에 나의 아버지를 흉내내며 이젠 딸이 칼을 간다. 먼저 물을 숫돌 위에 적시고 그 위에 칼을 반복하여 문지른다. 이 방법이 맞는지 틀리는지 조차 모른다.
물을 부으면 아버지의 얼굴이 흘러내리고 그 위로 눈물이 구른다. 눈이 침침하여 이내 때려친다.
그래도 갈았다고 며칠은 잘 든다. 그리고 한 일 년을 그리 살았다. 얼마 전에 선우가 낫을 간단다. 말렸다. 아직 서투르니 다음에 좀더 크면 아빠처럼 씩씩하게 갈라고 했다. 아이는 알았다고 하고는 나모르게 낫을 반듯하게 갈아놓았다. 그래도 칭찬을 아꼈다. 자꾸 할까봐.
그리고 어느 날 혼잣말로 `칼이 이리 안드는데 칼도 안갈아주고....' 초보농사꾼에게 불평하는 소리를 선우가 들은 모양이다. "엄마, 저 칼 잘갈 수 있어요.'' "이 담에 갈아주렴''
칼을 갈려면 이 추위에 물을 밖에서 만져야 하고 그러면 손이 얼어터질 지경일텐데 하는 생각만 했다. 그 땐 한 겨울이었다. 아이는 칼을 멋지게 갈아와서는 혼이 날까봐 식탁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고 가버린다.
내 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인다. 아무말 없이 칼을 써보니 내가 간 것과는 질이 다르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사실 너무 요긴하게 칼을 쓰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말이었다.
작년에 야콘캐는 날 부엌 칼을 가지고 밭에 갔다가 잃어버리고 왔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올해 비닐을 치기 위해 올라갔다가 초보농사꾼이 발견하고 찾아내려 왔다.
선우가 오길 기다렸다. "선우야, 엄마 칼 좀 갈아줄래?'' "네~~에~~~'' 한 톤이 높다.
숯돌을 비스듬히 놓고 자리를 잡는다. 멀리서 보니 그렇게 신중할 수가 없다.
"아버지, 제 칼 걱정마세요. 선우가 잘 하고 있어요. 그곳에서도 남의 칼을 갈아주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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