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비비린내가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비가 온다. 사람이 맞은데 또 맞으면 아픔이 배가되듯이 비맞은 상처에 또 다시 비를 맞는 논이며 밭이 안스러운 그런 밤이다. 불켜진 방으로 기를 쓰고 들어오려는 나방의 몸부림 소리가 빗소리 속으로 희석된다.

비오는 날에는 마음이 너그러워져 나방을 방에 들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들어와서 사람의 정신을 건드리고 다니는 꼴이 보기 싫어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풍경소리에 빗소리까지, 귀만 예민해져 밤의 깊이를 가름하기가 힘들다.

태풍이 온다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올해만 해도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는 보슬비로 시작하더니 8월의 마지막을 질기게 물고 늘어지려는듯 점점 힘이 세어지니 9월이 왔는지 갔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날이 밝았을 때는 이미 루사가 다녀갔음을 안팎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두막 앞마당에 물길이 거미줄처럼 엉켜있었고, 그 조용하던 개울이 그동안 화병을 앓았었는지 그만 가슴을 터뜨리고 말았다.

   
집 앞 얌전한 개울이 강이 되어 버리니 사람도, 차도 당분간 화병의 파편을 모면키는 어렵게 되었다. 논이며, 밭이며, 길도 내 앞길을 막아서며 앞다투어 속내를 드러낸다.
논은 한쪽 살이 뚝 떨어져 나갔고, 밭도, 경운기 길도 제모습을 고수하는데 역부족이었다고 간밤의 고충을 토해낸다. 거기까지는 그렇다치고 전기가 끊어지니 물은 세트로 움직인다.

피해복구에 바쁜 것이 아니다. 피해복구는 이미 인간삽의 수준을 떠났다. 우선 냉장고의 것을 재료의 해동 정도에 따라 식탁으로 오르는 순서를 정해야했다. 나날이 해동속도는 가속화되고 전기는 들어올 기미가 안보였다.

설거지는 얼떨결에 흐드러지게 생긴 개울 중에서 해왔다. 루사 덕분에 졸지에 `수해백수'가 된 산골아이들이 개울설거지의 자칭 담당이 되었다.
간밤에 산사태의 우려로 뜬 눈으로 새며 부디 다음 날 산골 가족들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하던 때를 생각해 모든 것을 맑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 설거지도 순서를 분담해가며 산골아이들과 추억만들기에 돌입했다.

다음에는 온 식구들이 후질러 들이는 빨래가 문제였다. 그것도 산골아이들이 걱정말란다. 바구니에 비누와 담아주니 신이 나서 개울가로 간다. 잠시 후 선우가 뛰어와 빨래판과 빨래방망이를 달란다. 에미가 빨래방망이질 하는 것은 못봤을거고.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마음같으면 그냥 하라고 손을 내저었겠지만 산골에 와서 모든 것을 체험하게 하고 싶은 속내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하우스에 가서 골동품 수준이 되어 버린 두 도구를 찾아주었다. 엄마도 자신들의 모습을 구경하러 오라는 말도 친절하게 흘리고 가는 선우.
오두막에 있으니 조급증만 나고 복구도 시작 기미가 안보이니 골이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선우가 한 말이 생각나 개울가로 가보았다. 아이들 빨래터로는 걸그작거릴 게 없었다. 워낙 깊고 넓게 패여 개울을 오르내리려면 한참 기어올라 와야 하는 것 말고는... 뙤약볕 아래서 재미있게 빨래방망이질하는 아이들을 보니 근심이 녹아내린다. 에미도 같은 수준이 되어 빨래를 거든다.

어둑 어둑해지니 초보농사꾼 또 바람을 잡는다. 박씨 일가 개울에서 멱감기를 빙자한 바가지 싸움이 시작되었다. 바가지를 먼저 챙긴 애비더러 반칙이라며 `수해백수'들이 억울해 한다. 씩씩한 엄마 잽싸게 바가지 두 개를 가져다 주니 생난리가 났다. 독가촌이니 이리 좋을 수가 없다.

전기도 물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골이 나기 시작했다. 전기가 안들어오니 일찍 서둘러 저녁을 먹는다. 촛불 아래서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고는 박씨 일가 촛불 아래 대화가 시작된다. 그러니 그 또한 이런 일이 없으면 누리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이른 저녁 아이들과 촛불 아래서 무릎을 맞대고 얘기하는 초보농사꾼의 그림자가 촛불 아래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이웃분이 묻는다. "선우엄마는 고추가 그리되도, 물난리가 나도 어쩜 그리 밝을 수 있지?'' 좋게 해석해 주면 될 일이지만... 고추가 잘 안되었을 때, 물난리 때 그리 긍정적일 수 있는 건 두 가지 기준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과 인간능력 밖의 일이라는 조건 말이다. 무엇이든 내가 최선을 다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덮는 편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결과가 그리 되었을 때는 나 자신을 닥달하느라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경우가 많다.

또 인간능력 밖의 천재지면, 화재, 발병 등에 의한 일은 더더욱 덮기가 수월타.
신이 인간에게 일생 동안 골고루 기회를 3번 준다고 한다. 그것을 잘 포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은 불공평하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신이 기회를 줄 때 "자, 기회간다'' 하고 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심지를 잘 읽고 가슴의 울림을 들은 후 그것을 기회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개똥철학이다. 그러니 나쁜 결과만 놓고 울 일이 그답 없다.
칼릴지브란은 "작은 것에서 만족을 찾는다는 것, 인간이 지닌 많은 문제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일도 어떤 특별한 집중력을 가질 때에는 가능하다''고 했듯이 긍정적인 사고도 특별한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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