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언니가 넷에다 오빠가 있다. 큰언니는 거의 `엄마마침'(이 말은 우리 배씨 일가만 쓰는 충청도용어인듯 한데 확실히 파악할 수 없음)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릇 큰 장녀다보니 나머지 아가들은 큰언니 말이면 엄마 말씀과 동일시하여 복종을 하며 자라다보니 언니에게선 늘 과꽃냄새가 났다.


막내인 나 다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큰언니의 큰아들인 구민이.
그랬으니 구민이에 대한 사랑이 어떠했겠는가. 구민이는 서로 안아주는 증조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들이 많아 바닥에 누워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자전거를 사서 앞에 손자녀석 자리를 철공소에 가 철로 용접하여 그 안에 담고 돌아다니셨다. 사람이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귀염을 독차지하면 악마의 시샘을 받는다던가.


그런 구민이에게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떨어진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내민 배를 만져본 큰언니. 배가 부르고 딱딱하여 병원으로 갔던 것. 검사결과는 `백혈병'


내가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가보니 이유도 모르고 구민이는 병실침대에서 선물을 만지작거리며 웃는다.
졸지에 온 집안은 벼락 맞은 집 같았고 식구들 각자의 스케줄은 쑥대밭이 되었다. 모든 가족의 일정은 구민이 병원스케줄에 자동으로(철저한 당번제!) 맞추어졌다.
그 때부터 신앙심 깊고, 잔정 많은 구민이의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친정, 본가 양가집에서 결정할 일이 생겼다. 식구들 골수검사를 하여 구민이와 염색체가 맞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우선 부모, 형제 먼저 해보자는 의사의 말에 3식구의 검사가 시작되었다.


결과는 구민이의 동생이 맞는다는 거였다. 언니는 의사선생님의 `골수이식수술'에 적극 동의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구민이의 친할머니께서 동생까지 죽여 씨를 말릴 수 없다며 브레이크를 거신 것. 큰언이의 마음은 회칼로 다시 난도질을 당해야 했다.
옛말에 `남편이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에미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듯이 에미마음은 그런 것이다.


큰언니는 병든 자식을 절대로 이리 놔둘 수 없다며 그 큰 비용이 드는 일을 감행했다. 무균실에서의 가슴절임, 골수이식수술시의 천지가 찢어지는 아픔, 수술 후에도 수시로 등뼈를 뚫고 골수를 뽑아내는 골수검사를 할 때마다 자식의 눈물과 자식의 자지러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봐야 하는 에미의 상처와 눈물.
녀석이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골수 검사할 때 악을 쓰면 엄마 마음 아프다고 베개 시트로 입을 틀어막고 참아내곤 했다. 골수검사 한 번 하고나면 시트가 온통 땀과 눈물로 절여지는 고통인데도...


친정집에서 웃음이 사라진지는 오래되었다. 신은 있는가? 몇 번씩 병원 계단에 쭈구려 앉아 묵주를 굴리며 동시에 그 소리를 외쳤던가?
병원의 무균실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다 소독이 되어 들어갔다. 장난감, 옷, 책, 빨대 심지어 음식, 바나나까지 어떤 것도 소독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조카를 만날 때는 우주복 같은 차림으로 들어가서 유리박스와 같이 생긴 곳에서 만나야 했다.


구민이는 그리 병실에서 자신의 나이테를 그려나갔다. 이어지는 수술에 큰언니의 골은 골다공증 환자의 뼛속처럼 비어만 갔다.
그리고 퇴원, 입원, 검사, 퇴원, 입원, 검사로 이어지는 행렬 퇴원은 하였으나 아이의 몸은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다리를 구부릴 수도, 팔을 구부릴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침대와 식탁의자에서만 생활해야 했다.


하루는 급한 볼일이 있어 구민이 밥을 식탁에 다 차려놓고 볼일을 보러나간 큰언니. 한참만에 돌아와 보니 침대에서 배고파 움크리고 에미오기를 기다리는 구민이를 본다. "왜 엄마가 차려준 밥 안먹었냐''고 눈물로 묻는 에미에게 "엄마, 숟가락을 그만 떨어뜨려 줍지 못해 못먹었어. 나 괜찮아.'' "......''
큰언니가 이승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신에게 갔을 때 첫인사를 신이 어떻게 할지 무지 궁금하다. 그믐달처럼 갈리고 갈리어진 언니의 가슴을 보며 신이 무어라할지...
신앙심이 깊어 에미. 애비에게 신앙심을 옮겨심어준 병든 조카.


성모님계신 곳은 너무 아름다울 것이라며 차라리 남을 위해 기도하는 베드로. "엄마, 하느님이 저 기도 많이 하라고 침대에 붙들어 놓으시나봐요.''
세월이 흐르면서 눈에도 눈물이 말라 인공눈물을 넣어주지 않으면 눈을 깜박일 수조차 없게 되었다.
'94년 가을 나의 정 많은 조카는 자기가 엄마만큼 좋아하는 성모님 품으로 돌아갔고, 큰언니는 베드로를 가슴에 묻고 흐느껴 운다.


집안에 새 생명(주현이)이 태어나고 백일도 되지 않아 한 생명은 흙으로 돌아갔다.
군대영장이 나온 청년 구민이의 관은 아주 작았다.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동생보다 훨씬 작아버린 형! 작디작은 관이 천주교 묘지 성모님 옆에 뎅그마니 묻혔다.
그리고 에미는 흙을 단단히 오랫동안 밟아주었다. 에미 가슴에 있는 흙도 함께 밟았다. "막내야, 언니 슬프지 않아. 인간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구민이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이 말을 흩뿌리는 언니의 머리에는 겨울도 아닌데 나모르는 사이 그리 많은 흰눈이 얹어져 있었다.


   
민아! 이모가 막내 이모부 귀농반대하다 결국 허락할 때 네 역할이 컸단다. 사람은 그리 가는 것을...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이모부의 자연으로의 복귀를 결국 허락했지.


보고싶은 구민아! 그곳에도 단풍이 들고 얼음이 얼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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