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등학생까지??'

바람이 이리도 차가울 수가 없다. 한겨울을 오두막에서 견디게 하기 위해 혹독한 초겨울을 나게 하는 자연의 배려에 군말 않고 찬기를 받아들인다. 겨울로 가는 길목이라 그런지 오두막 주위가 을씨년스럽다. 내년 봄에는 산수유나무도 심고, 이곳에 될지 모르지만 매화나무도 심고 싶다. 세월의 흔적이 짙은 오두막일지라도 그 주위에 자리잡고 있는 나무들의 다양한 표정으로 인해 산골의 여운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잠을 잔 탓에 아이들도 허둥대고, 에미도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아침에 그리 호들갑을 떨다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태풍 지나간 집 마냥 공기가 허망하다. 초보농사꾼, 아이들 마을입구의 스쿨버스 있는 데까지 데려다 주고 오더니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으로 앉는다. “선우엄마, 산골 애들 잘 지켜봐야겠어.”

영문도 모르고 아침에 폭탄 맞은 머리를 진정시키는 내게 던진 말은 긴 여운을 남겼다. 차 안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초등학생이 공부 스트레스로 자살을 했다는 거였다.

진정시키던 머리는 다시 놀라 머리 속만큼이나 쑥대밭으로 변한다. 한참 철딱서니 없이 뛰어 놀 나이에 공부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으면 어린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그런 결정을 하고 그리하기까지 얼마나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진다. 소독내 진동하는 한 쪽에서는 희미한 생명 부여잡고 하루 하루를 실낱같은 희망으로 모든 걸 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 쪽에서는 멀쩡한 몸뚱이를 스스로 내던지는 일이 벌어진다.

   
애든, 어른이든 아주 힘든 상황을 접하게 되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단 그 생각을 이내 거두어들일 여력이 있느냐, 그런 여력이 없어 길게 물고늘어지다 마지막 결정을 내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여력은 스스로 키울 수도 있지만 주위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과중한 공부 스트레스를 준 것과 같은 비중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고민덩어리를 마음놓고 풀게 할 수 있도록 멍석을 펴 주었느냐는 것이다.

귀농하고 몇 달을 팬팬이 놀던 산골아이들.
어느 날 숙제를 봐주는데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인 선우가 덧셈, 뺄셈을 못하는 것이다.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하고, 하루에 한두 시간은 싫어도 학습하기 위해 진득이 앉아있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나의 개똥철학이 발동했다. 고민 끝에 학습지를 두 과목 한 것이 산골아이들 공부의 전부. 그것도 지금은 너무 멀어 못 온다 하여 끝이 난지 오래다.

무조건 자연에서 자유롭게 놀게 하는 것이 막말로 장땡은 아니다. 요즘 많은 아이들이 정신이 산만한 탓에 단 몇 분도 집중을 못하여 소아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규칙적인 학습과 놀이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가족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삼박자가 맞물려 돌아간다면 도시이건, 산골이건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워낙 놀라운 일이라 이 기회에 개똥철학 운운하면서 내 마음도 다잡아보고, 산골아이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는 기회로 삼기 위해 여러 말을 하게 되었다. 산골아이들이 오기 전에 이럴 때 마음을 추스르기 좋은 글 하나를 읽는다.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통하여 왔으나 당신으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또한 당신과 함께 있으나 당신의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은 줄 수 있으나 생각은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있으니까요. 당신은 그들의 몸을 가둘 수는 있으나 마음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있으니까요...” / 칼린 지브란의 「예언자」중에서-

사진 - 산골아이들에게 21단 기어 달린 자전거를 새로 사주었다. 산골에 공터도 생겼고, 언덕이 많아 달릴 수 없다는 불평을 초보농사꾼이 접수한 것. 날씨에 상관없이, 복장에 상관없이(아침에 자고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데 선우가 자전거를 타고 있다. 내복입고...)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아들이는 산골아이들. 학습지 후속타로 한두 시간 엉덩이 붙여둘 거리를 열심히 연구하는 에미 속도 모르고 좋다고 얼굴이 발그레지도록 자전거를 지치는 산골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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