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실을 갔었다. 바람이 세찼지만 마음 한 켠에 뭉클함이 있어 꽃버선 신고 나섰다.
오두막에서 멀지 않은 곳 개울가. 지난 여름 태풍 루사가 왔을 때 간도 크게 강이 되어버렸던 그 개울가. 지금은 기가 죽어 겨우 숨만 쉬고 있다.


그 곳에 쭈구리고 앉아 그의 소리를 들어주기만 했다. 사는 동안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두 배로 했던 자신이 기형임을 이제사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의미에서라는데 난 어찌된 영문인지 기형으로 살았다. 새해에는 기형의 해가 아닌 정상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로 듣는 연습을 하고 있다.


   
개울은 말하고 난 듣기만 한다.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듣는 즐거움도 묘한 의미가 있음을... 거기까지 깨닫고 오두막으로 오는데 마음이 충만해짐을 느꼈다.
마음을 비우고 들음으로써 충만해지는 이치를 깨닫고 돌아오는데 까치밥 같은 빠알간 나무열매가 지 소리도 좀 들어달란다. 내일은 그 나무열매에게 마실을 가기로 했다.

새해를 얼마 앞두고 있다. 책상 위의 알사탕 집어먹 듯 생각 없이 한 살을 집어먹곤 하였는데 올해는 한 살 삼키기가 이리도 힘이 든다.
서운한 것도 아니고, 서러운 것도 아니고, 아쉬운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런 앓이로 보면 올해보단 작년이 월등했다. 그렇다면 왜일까?


그런 의문을 풀려면 귀농했을 때로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람이 같은 지역에서 이사만 가도 정 붙이고, 눈 붙이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하물며 서울에서만 거의 말뚝 박았던 사람으로서 그 물을 떠나는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울진은 생전 생각해 보지도 않은 말뚝터였다. 그리고 귀농, 마음이 바빴다. 내 마음을 내려놓기보다는 아이들 마음을 상처 없이 땅에 잘 세워두기에 급급했다.


우리 네 식구 산골에 정 붙이기도 전에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이 심심잖게 생겼다. 그게 힘들었다.
뙤약볕 아래서 김매는 일이며, 참을 해 나르는 일이 고달픈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세치 혀에서 나오는 말이 가슴에 원치 않는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산불이 났다. 너무 엄청난 일이라 어찌 감당을 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거기, 아무도 없어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마음으로 손을 허우적거려 보았지만, 깔깔한 바람만이 건조한 마음에 부채질을 할 뿐이었다.


낯선 곳에서 마음 붙이기가 온몸에 빼곡히 문신 새기는 것보다 더 힘들지 않았나 싶다.
어찌어찌 상처를 볏짚으로나마 얼기설기 덮을 수 있을 무렵 해가 바뀌고 태풍 루사가 신차 테스트하듯 그 위력을 산골에 과시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실개울이 강이 되어 버렸는데도, 논의 큰 모서리를 뜯어 먹었는데도, 산사태로 호수밭이 뒤덮여 버렸는데도 사람의 욕심마냥 성이 안 찼는지 루사는 산골을 쉽게 떠나지 않았다.


어둠이 내리면서 오두막 바로 뒤의 산이 제발 잘 붙어있기를 빌어야 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초보농사꾼은 산사태를 걱정하느라 산에서 조금 떨어진 좁은 흙방에서 나머지 식구들을 자라하고는 날이 밝도록 손전등 들고 산을 오갔다.
아이들 깰까 봐 어둠 속에서 빗줄기 사이에 대고 악을 썼다. "거기, 누구 없나요?'' 흔적도 없는 울림에 빗줄기는 함석지붕을 더 세게 치며 내 입을 아예 막으려 들었다. 다시 한 번 이 울진에 아무도 없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힘듬이 있어서 한 해가 목구멍에 걸려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러 날을 그리 앓이를 하고 터득한 결과, 원인은 홈페이지였다.
홈페이지를 연 것은 귀농이라는 너무 판이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도 한 방식이고,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질도 손바닥 뒤집듯이 할 수 있음을 그 곳에 풀어내고 싶어서였다.


또 하나는 나처럼 마음고생하며 이 길을 선택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반딧불이 수준의 역할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위의 역할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않게 홈에 오시는 분들에게 위로받음이, 용기얻음이 얼마였던가.


말만이 아니다. 어찌보면 사람의 눈과 귀에 대고 직접 ‘거기, 누구 없느냐’고 애원했던 것보다 보이지도 않는 이 곳에 대고 힘주어 말했을 때의 그 힘과 온기는 ‘붉은 악마’ 수준이었다.
그랬다. 그런 분들을 처음으로 만나 든든했던 해가 저물어 가니 목구멍에 암 덩어리만한 정 덩어리가 걸렸던 거였다. 새해에 덤으로 받은 이 덩어리를 어떻게 녹여 나도 역시 그리 허공에 대고 손을 허우적거리는 이에게 향기로 다가설 수 있을까 하는 눈물어림이 컸던 거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정신적인 바탕 위에서 성장한다고 했듯이 남의 손을 잡아주는데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능력도 아니고 따뜻한 눈길로 손을 잡고 `소풍나온 길’을 두런두런 얘기하며 함께 가면 그 뿐이라는 것을 한해의 끄트머리에서 삼키게 되었다.


새해에는 분꽃 같은 정스러움으로 산골의 공기를 뎁히다 보면 나 모르는 사이 울진 사람이 되어 기쁘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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