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속담에 “다정하게 말하는 것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당연한 말 같지만 현실은 멀기만 하다.


일전에 목욕을 갔을 때의 일이다. 도시에서와는 달리 산골로 와서는 발을 발로 취급하고 신경을 안 썼더니 겨울엔 터지고 피가 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목욕 온 참에 발뒤꿈치를 밀려니 밀개를 안 챙겨 온 것.  용기를 내어 입가에 잔뜩 미소를 달고 어렵게 옆 사람에게 "저기요, 혹시 발뒤꿈치 밀개 좀 빌려주세요'' "없어요'' 어찌나 냉냉한지 몸에 소름이 돋는다. 또 용기를 내어 다른 이에게... 역시나... 없는 것은 좋지만 그 말투며 그 표정에 발뒤꿈치의 때가 쏙 들어갈 지경이었다.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미소와 친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달라이라마는 그의 진정한 종교는 친절이라고 했다. 상냥하게 다가오는 사람에게선 후리지아 같은 상큼한 향기가 있다. 그 향기에 부응하지 못한 사람이 도리어 더 당당한 경우를 자주 본다. 오히려 이빨을 내 보인 이가 더 민망해야 할 지경이다.


   
나 또한 항상 미소짓지는 못한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도 "서로 미소 지으십시오. 물론 항상 쉽지만은 않습니다. 나도 가끔은 우리 수녀들에게 미소짓기 어려울 때가 있어 기도드립니다.''라고 고백하셨다는데 하물며 내가 항상 미소를 짓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노력하고 싶다. 그리하여 내 미소 지은 향기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내 코를 자극하는 경험을 하고 싶은 거다. 향기는 전염되는 것이니까. 그 기대가 허황된 기대가 아니기를...


벌거벗은 김에 목욕탕 얘기 하나 또 하고 싶다. 찜질방이 있는 목욕탕을 갔다. 네 식구 목욕을 가면 남자들과 여자들의 때 미는 시간이 맞지 않아 늘 불만을 했더니 초보농사꾼이 찜질방이 있는 곳으로 가면 기다려 줄 수 있으니 그러잔다. 남자, 여자 함께 흰 옷 입고 들어가는 곳에서 만나 열심히 네 식구 땀을 내는데 한 쪽에서 웬 여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사정없이 몸을 흔든다. 일행의 누구도 말리는 이가 없다. 뭐 소화가 안되는가 보다 하고 머리를 돌려도 그 많은 남자들 틈에서 튀는 율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니 초보농사꾼에게 같은 여자로서 민망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 저 아줌마 왜 저래?'' "으응... 소화가 안되서 체조하시는거야.'' 잠시 후 그 아줌마 옆의 일행에게 "희수 엄마, 자기도 춤춰. 땀이 쫙 나와야 뱃살이 쏙 들어간다니깐.''
라다크에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는 말이 있다. 살을 빼고, 온갖 것을 알몸에 덕지덕지 마사지하는 것에 왜 온 정신을 빼앗기는지. 안으로 안으로 수줍게 스며드는 향기를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이가 그립다.

눈고장답게 천지가 눈이다. 간신히 길을 낸 곳만 녹아 맨 살을 드러낸다. 햇살이 조용히 오두막을 비추면 고드름이 얼떨결에 녹아 제 몸의 일부를 땅에 꽂는다. 그 소리에 잠에서 덜 깬 개울도 살얼음을 녹이고 옹알이를 시작한다. 세상 것에 모든 것을 건 사람들의 건조한 마음에 들꽃을 꺾어 오지병에 담아 넣어주고 싶은 그런 날이다.

배동분님의 가족들은 서울에서 줄곧 생활해오다가 2000년 겨울 울진군 서면 쌍전리에 정착한 귀농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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