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니 개울의 옹알이 소리도 제법 여물어졌다. 바람도 칙칙한 옷을 한 겹 벗어던졌는지 날렵해 보이고, 바람이 늘 놀다 휘젓고 간 숲도 그 때깔을 달리하고 있다. 그리 잘 나가다가 눈이 온다.


어제도 오고, 성이 덜 찼는지 오늘도 같은 속도로 내리 꽂히고 있다.
그 눈이 숲에 앉으면 숲이 되고, 밭으로 제 갈 길을 정하면 밭이 된다. 호수밭 웅덩이에 앉으면 함께 웅덩이가 되고, 나목(裸木) 위에 앉으면 이내 꽃이 되는 눈
그 순간의 눈은 이미 눈이 아니다.

   
산골아이들이 봄백수되는 날이다. 일찍부터 방학하는 날인데 가방을 가져가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을 하던 아들놈이 창밖을 보더니 "다 틀렸네'' 한다.
어제 트렉터가 와서 길을 뚫어주고 난리치는 것을 보고는 내일 학교 못가면 어쩌나를 걱정하며 잤던 터였다. 산골에서 이런 고민은 흔한 일인데도...
밤새 눈이 너무 많이 왔고, 여전히 오고 있으니 그 말이 나올 만도 했다.


이리 차바퀴를 오지게 감싸고 있는 눈을 본 초보농사꾼 차를 포기한다.
어서 어서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게 서둘라는 주문을 한다.
초보농사꾼이 서두르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장화를 신으라고 아이들에게 말하고는 자신도 긴 장화를 발에 낀다.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을 분위기 파악을 못한 난 “이른 아침에 어디 가느냐?”고 초보농사꾼의 뒤통수에다 대고 던지니 아이들과 함께 걸어갔다 오겠단다.
장화신고 학교가면 아이들이 골린다고 안 신겠다는 선우도 지 애비 장화 끼는 것을 보더니만 슬그머니 애비 장화 축소판 모양인 제 것을 낀다.


주현이는 노오란 장화를 신지만 장화의 목이 짧은 것이라 이내 걸어가면 장화 속으로까지 눈이 들어와 아침인사를 하리.
예전 같았으면 니들끼리 걸어가라 하고는 이내 오두막에서 손을 흔들었을 사람이다. 하지만 날이 무지 추웠고, 그 추운 날 눈 위를 장화신고 걸어본 사람은 그 발이 어찌되는지를 아는 터라 이내 아이들과 두런두런거리며 나선다.


산골에 와서 더욱 느낀 것이지만 아이들 교육은 엄마의 것이 아니다. 그 말은 엄마의 역할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애비의 모험적이고, 호기심 많고, 저지르고 보는 성격에, 와일드한 것 등 산골아이들이 지 애비에게서 취사 선택적으로 받아야 할 요인이 너무나 많다는 얘기다.


귀농 전에 나 또한  나름대로 아이들 교육에 최선을 다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 땐 뭘 몰라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도시에서야 애비의 제대로 된 얼굴 보는데 2박3일 걸린 때가 많지 않았던가. 회식이다, 모임이다 술 취해 들어오면 아이들이 자고, 다음 날은 전날 차를 두고 왔으니 새벽 별보고 나가 버리면...


도시에서도 그 점을 알고 주일이면 무조건 배낭 걸머지고, 아니면 모험적인 일을 찾아 이리 저리 쫓아다니곤 하였지만, 산골로 와서 지 애비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을 보니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나머지 빙산을 평생 못보고 성장하는 도시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아니, 바다 밑에 그런 빙산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자라버린 아이들도 많으리...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깨어있으면 얼마든지 훌륭한 교육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믿음이 아직까지 귀농하고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으니...
산골에서는 산골부부나 아이들이나 각자의 희망을 일구며 산다. ‘희망에 사는 자는 음악이 없어도 춤춘다’는 영국속담처럼 온 가족이 같은 길을 가며 함께 춤출 수 있다는 것 또한 축복이다.
눈이 무릎까지 오는 길을 박씨 일가들이 걸어간다.
무엇 때문에 이 깊은 산골에 와서 아이들과 이 시린 눈길을 걸어가는지...
초보농사꾼의 모습과 어린 박씨들의 모습이 차창 밖의 풍경 지나가듯 스쳐지나간다.
무엇이 그리 이른 아침 그들을 눈길 위로 내 몰았는지...


형광등을 켰을 때와 촛불을 켰을 때 창호문으로 비추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형광등은 눈부시게 모든 것을 다 들추어내지만, 촛불은 은은한 속삭임으로 시린 가슴을 녹여주고,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은 눈감아 줄줄도 안다.
오두막의 방문은 모두 창호문이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기도하기 위해 촛불을 켜놓으니 주위는 어둑어둑하나  마음은 그리도 밝을 수가 없다.
옛날 사람들의 지혜가 떠오른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남의 잘못을 잘 들춰 내지 않았나보다.
촛불 녹아드는 창호문
달빛 스며드는 창호문


오늘날은 어떤가?
형광등, 할로겐, 또 뭐라더라... 온갖 밝기를 자랑하는 조명등이 신형 자동차 쏟아지듯 한다.
그러다보니 눈만 밝아져 이웃의 단점만을 들춰낸다.
눈보다 마음이 밝아지고 싶은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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