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그리도 멋들어지게 치장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특이한 음성으로 시선을 끌려 용쓰던 새들이 올핸 그다지 수선을 피우지 않는다.

재래식 화장실 문을 열고 볼 일을 보다 보면 앞 산 소나무에서 공중제비를 하며 더 강력한 몸짓으로 알짱거리던 놈도 보이지 않는다.

설령 알짱거려봤자 새 이름에 까막눈인 내가 다정스레 이름 한 번 못 불러 주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보이던 놈들이 얼씬을 안하니 슬그머니 그리워진다.

산골에는 앵두나무가 딱 한 그루 있다.
귀농하던 해 그 한 그루에 어찌나 많은 앵두가 열렸는지. 산골아이들에게 바구니를 하나씩 걸어 주었더니 거의 다는 지들 입에 시주하고 바구니엔 달랑 몇 알이 엎드려 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작년.
이번에는 더 큰 바구니를 들려 보냈다. 한 해 더 자랐으니 자식들을 더 많이 달고 나와 있으리라는 현명한(?) 판단에.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산골아이들의 입이 문어입처럼 되어 바구니를 허공에 돌리며 들어온다. 아이들의 입을 보아도 벌건 자국은 없고, 바구니도 동물의 벗은 허물처럼 비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앵두나무를 보니 옛날 설탕 대신 썼던 당원만한 것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산골에는 오래된 대추나무가 많다.
말 그대로 토종임을 나무를 보면 담박에 알 수 있다. 그 늙은 나무에도 귀농하던 해에 대추가 어찌나 많이 열렸는지, 두 항아리에 효소를 담아둘 정도였다. 그러기에 작년에는 벼르고 있다가 야무지게 주워 모아 알뜰히 효소를 담을 요량으로 눈에 힘을 주고 있었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명언을 그대로 대입시켜야 했다. ‘해거리’ 그거였다. 앵두도 대추도 해거리를 하는 거였다. 이 외에도 이 까막눈이  알지 못하는 사이 욕심을 놓고 정해진 수순에 따라 해거리를 하는 자연이 얼마나 많겠는가.

얼마 전의 일이다.
산골엔 워낙 느닷없이 오는 이들이 많지만 그 날도 호수밭 일을 하는데 누렁이가 짖는다. 오두막까지의 거리가 상당하다보니 내려가기가 싫었다. 창백한 얼굴이 여유롭게 여행 삼아 들린 것 같진 않았다. 주인아줌마를 찾는다.

큰 챙 달린 모자에 수건 두른 모습 등이 일하러 온 아줌만줄 알았단다. 자살하려고 농약검색하다 내가 아는 의사선생님의 사이트를 갔었단다. 다른 사람의 죽고 싶다는 글에 내가 답글 단 것을 읽게 되었다고. 하도 여러 명의 그런 사연에 답글을 달아서 그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조카얘기였단다. 맞다. 나에겐 귀한 조카가 있었다.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 사연을 읽고 우리 홈페이지를 알았고 여기까지 흘러왔단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단다. 얼추 정리가 되어가고 아이들도 딴 판이 된 경제사정에 그런대로 적응해 가는데 자신이 문제라고. 전세방에 사는 것도 힘들고, 차가 바뀐 것도 힘들고, 아는 이들이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들도 다 야유로 들리고... 어디 한 군데 마음 둘 곳이 없더란다.

결국 신경안정제 먹고, 수면제 먹고... 그러다 농약관련사이트를 보고 우리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단다. 도시에서 그리 편하게 살다가 정말 비가 새어 양동이를 대어놓은 오두막에서 사는지, 서랍장 위에 이불을 쌓아놓고 사는지, 대학원 나온 여자가 정말 호미 들고 김을 매는지...등등 확인해 보고 싶더란다. 하루아침에 그럴 수도 있는지...

난 속으로 생각했다. “쑥대밭이 아니구나. 어설프게 쑥대밭이 되어 그런가보다. 삭월세도, 길에 나앉은 것도 아니고, 타고 온 차도 그 정도면 아주 준수한데...”
달리 해줄 얘기가 없었다. 나보다 나이도 들어 보이는데 거기다 대고 뭘 얘기해봐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밖에 더 되겠는가. 차 한 잔을 두고 서로 오두막 앞의 산정만 바라보았다.

아직도 송홧가루 날리는 소나무는 그리 호들갑스럽게 온 몸을 뒤흔들고 있다. 난 요즘 화두인 ‘해거리’ 얘기를 했다. 그 말이 그에게 소용이 있었는지, 내 본 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등을 보이며 그는 이런 말을 흘리며 떠나갔다.

"왜 사람은 남의 이목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만 아니라면 나도 이리 살 수 있는데..."
조용필의 노래가사처럼 사람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다. 나도 도시에서는 앞만 보고 살았다. 주위엔 불구대천의 원수가 깔린 것처럼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냅다 앞만 보고 내달렸다. 샤프심만한 틈만 보여도 어디 나사 하나 풀린 여자쯤으로 인식하는 세상에 모든 나사가 완벽히 죄어져 있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그것이 내 영혼을 그만큼 죄어오는 줄도 모르고...

그러나 자연을 보면서 마음의 한 켠은 비워두어 인간도 해거리를 해야함을 알았다. 자연처럼 한 해를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 한 켠은 해거리용으로 비워두어야 고통이 있을 때 그곳에서 영혼을 달래고,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기를 받아 걸림돌을 잘 타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대는 지금 다친 영혼을 위해 마음의 어느 쪽을 비워두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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