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고 흐린 날이 계속되다 보니 별 볼 일이 없다.

하루 일을 마치고 요강을 비우러 가면 머리 위가 궁금하다. 연고도 없는 곳에 온 내게 그리 다정하게 대해주던 친구들이 있으니 내겐 각별하다. 오늘은 빗속을 뛰어가 요강을 오줌통에 비우고 잽싸게 뛰어들어 왔다. 비를 털고 들어오려니 별친구들은 혹여 많은 비에 별일은 없는지가 궁금해졌다. 다시 마당에 선다. 하늘을 여느 때처럼 올려다본다.

그러면 별보다 먼저 빗방울이 별들은 잘 있다고 내 얼굴에 문자메시지를 남긴다. 내 그들이 있어 위로받은 날이 얼마인지...


사람이 살다가 무언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그 결정에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항목을 나열하게 된다. 가장 꼭대기를 차지하는 항목이 충족되면 나머지 항목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결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하게 된다. 내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을 때도 그랬다. 사표결정이 그리도 어려웠다. 그래도 무 자르듯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 결정의 첫째 항목을 차지했던 “아이들의 정서”에 대한 비중이 우선순위로서의 제 몫을 단디~했기 때문에 조금의 후회도 없는 거다.

마찬가지로 귀농할 때도 그랬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싶다는 갈망이 컸다. 그러다보니 산골로 둥지를 옮기고 나서 아이들의 비중은 “온전함” 그 자체였다. 도시에서야 에미만 비중이 크지 애비야 회사 일로 제정신이 아니니 비중의 단어나 알고 살았는지...


산골로 오니 신이 난 건 아이들. 애비와 노는 것이 스케일 면에서나, 호기심 면에서나, 스릴면에서나 압권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놀랐다.
나름대로 도시에서도 기저귀찬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이면 다른 집보다도 별나게 배낭에 텐트 싸들고 산으로, 계곡으로 돌아다녔는데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젯밤에 갑자기 애비가 아가들을 불러 모은다. 내일부터 학교 갈 때 아빠가 덕거리까지 차로 못데려다 주니 너희들이 알아서 좀 일찍 얼어나 걸어가란다. 아이들은 서울에 가시느냐, 아니면 교육 들어가시느냐 언저리 질문만 해댄다.

그러다 이내 그게 아님을 스스로 깨우친다. 산골 와서 애비와의 끈끈한 교감으로 터득한 모양이다.

아이들은 놀라 내 눈치만 본다. 이럴 때는 에미가 바람막이였으니...
"선우아빠, 근데...그러니깐... 애들이 그럼 너무 일찍 일어나야 하고.. 그러니 거시기, 좀 더 있다 그리하는 것이...''
"알았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보챈다. "...네....에...''
아이들의 표정이 꿈뻑 넘어갈 것같 다.
"단, 비오는 날이나, 눈오는 날은 아빠가 데려다 주고.....''

그랬다. 난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걸어서 다닌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이다. 이곳으로 둥지를 옮기던 날, 초보농사꾼은 귀농을 그리 반대 반대하던 나와 아이들과 울엄마(내가 무서워 못 있으니 잠시 엄마를 모셔왔던 것)를 이삿짐 옆에 덩그마니 남겨 놓고 서울로 갔다.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으니 자기의 결심을 상사가 이해하고 수리될 때까지 회사를 굳세게 다녀야 했으므로...

그 때 아이들은 걸어서 덕거리 학교차가 오는 데까지 다녀야 했다. 안스러워 아침에는 내가 낯선 길을 동행해 주고, 오후에는 둘이서 걸어 올라왔다. 그 때 선우는 초등학교 2학년, 주현이는 갈래머리 유치원생. 저나 나나 환경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걸어가는 것에 길들여져야 했던 산골아이들...

그리고 나중에서야 주동자인 초보농사꾼이 산골에 합류해서부터 지금까지 잘 태우고 다니더니만 이게 웬일... 아빠가 귀찮아서가 아니라 이제는 너희 둘이 걸어서 다닐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리해야 몸에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또 일어나는 시간, 자는 시간, 걸어가는 시간 등을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해야 할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는 그리 알라는 최후통첩을 한다.

몸이고, 정신건강이고 뭐고 아이들은 죽상이다. 나 또한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애기아빠가 아이들 앞에서 한 말이기에 토를 달지 못했다.
이게 아마 에미와 애비의 차이이리... 저녁에 몸을 뒤척이며 생각하니 귀농하자마자 낯선 길을 걸어 다니던 아이들을 그리도 가슴에 오래 두고 있었는지 몰랐다. 내가 나를... 에미는 그런 거다. 같이 나은 자식이지만 에미맘은 그런 거다.

그랬다. 초보농사꾼 말이 옳았다. 선우가 초등학교 5학년이면 이제 스스로의 일을 계획하고 세상사는 이치도 스스로 하나씩 터득해야 할 나이이다. 주현이도 3학년이면 다 감수할 수 있는 연세이고...

아침에 서둘러 아이들을 깨웠다.
지들도 개겨봐야 별 소용없음을 알았는지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더니만 이내 잠자리에서 털고 일어난다. 가방을 매고 두 놈이 걸어간다. 두런두런 얘기를 하는가 싶더니 비포장 길 중간에서 뛰어가기 시작한다. 둘이 아마 그랬을 거다. "주현아, 늦으면 학교차가 가버리니깐 우리 뛰어가자." "그래, 오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은 주로 출가수행승을 두고 말한 것이라지만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뜻이 담겨 있어, 힘들 때 자주 입으로 옹알이하던 말이다. 홀로 수행하는 사람이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타인과 섞이거나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수행하는 모습을 코뿔소가 하나의 뿔을 지닌 것에 비유한 말이라지만 어디 그 뜻만 있겠는가.

세상사는 이치를 가만히 보면 우리네 또한 그 말의 뜻에 더욱 유념하면서 제 살과 영혼을 관리할 일이다 싶다.

이제 산골아이들은 아침 일찍 서둘러 오두막을 나서서 개울을 따라 걸으며, 하나하나 자연을 눈에 넣으며 “혼자서 가기”위한 담금질을 할 것이다. 아이들의 등 뒤로 햇살이 환히 비춘다. 그 햇살이 저들이 혼자 살아가는 동안 내내 가슴에 따뜻하게 간직되기를 바라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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