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작물과 효소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일이었다. <식물의 신비세계>를 읽어서도 그렇지만, 자연의 모든 생명체도 감정이 있어 음악을 좋아하고, 사람의 칭찬을 좋아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때부터 초보농사꾼은 대형 앰프며 스피커를 사나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혈기는 어디로 가고 그것들은 발효식품처럼 오두막 한켠에서 숙성되어 가기 시작했다.

   
원인은 단 하나. 손재주가 무재주기 때문...
그거야 내가 보장하는 일이라 채근도 하지 않았다.
그리 2년 넘게 있다 결국 햇살을 보게 되었다.

그 사정을 안 초보농사꾼의 후배가 그것을 달아주기 위해 서울에서 한밤중에 도착한 것.
각종 전선, 부속 등의 재료와 전문가 세 사람을 태우고..

산골의 밭은 오이처럼 길게 생겨서 작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작물들에게 공평하게 음악이 들리도록 6개의 대형스피커와 엠프를 설치했다.
선배가 스피커의 비가림을 해주려면 농사철에 애먹는다며(그게 아니라 손재주가 없는걸 후배가 안게지...) 스피커의 통나무 집까지 완벽하게 작업을 끝내고 호수밭을 내려오니 짙은 어둠도 그들을 따라 내려왔다.

밤새 운전하고 내려와 일요일 하루 종일 작업하고 내일 출근이라며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거기까지가 이야기의 전부라면 재미없는 일.

다음 날 아침
2년만에 야콘과 고구마, 효소에게 음악을 들려준다는 흥분이 새벽 잠을 깨웠다.
초보농사꾼 흥분의 무게로 작동을 시키고 1분도 안되어 펑펑 최루탄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시각효과까지 주려는지 연기가 치솟았다.

호기심많은 초보농사꾼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을 나머지 대형 엠프 둘을 차례로 연결하니 그들도 질세라 펑펑 엔드 최루탄...

결국 앰프 3개와 스피커를 작년 고추말아먹듯 말아먹은 것.
난 말이 없었다.
워낙 순식간에 해먹은 일이라...

그 고생을 하며 네 명이 달아주고 간 것을...
신은 공평하여 손재주는 없어도 원인규명은 잘하는 초보농사꾼...
합선이란다.

후배에게 사정얘기를 하니 끝마무리를 잘못하여 그렇다며 얼토당토않게 미안해하는 후배.
자기가 주의성이 없어 그리되었다며 절절매는 선배.
앰프를 당장 구해서 또 내려오겠단다. 이제는 그것을 뜯어말리느라 애를 먹어야한다.
잠시 하늘을 본다.

그럴 때 색연필 종이 심지 돌돌 풀듯 나의 머릿속에서 풀려나오는 작은 울림...
함석헌 옹의 “그 사람을 가졌는갚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탓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양보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번연히 속는 줄 알고도 마음을 내어 맡기고는 속앓이를 하는 그런 세상에 난 대답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가졌다고...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가라는 대목에선 할말이 없다.
스러지는 노을이 통고산 머리에 걸려있다.

지는 노을은 정으로 달아오른 내 마음도 끌고 내려가려 든다.
거기에 대고 입을 씰룩여본다.
“나도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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