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왜 여유가 없는지를 산골 재래식 화장실에 쭈구리고 앉아서야 터득했다.

난 성격상 무엇을 주절이주절이 걸어놓고 보는 스타일이다.
못 하나도 박을 수 없는 아파트 콘크리트 벽에는 무엇 하나 걸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못을 박으려면 드릴 아니면 별달리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보기만 해도 따뜻하여 숲 속에 와 있는 기분이 드는 나무나 흙은 그렇질 않다.
내 좋아하는 것들을 여기 저기 풍경처럼 걸어두고 미소 지을 수 있으니 그 안의 사람이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고 화장실에서 바로 보이는 알몸의 오동나무를 보며 생각해 보았다.


농부들이 가장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는 언제일까?
문득 단풍진 앞산을 내다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겨울인줄 알았다.

눈 내리고, 얼음 얼어 산골에서 옴짝달삭할 수 없는 겨울에 많은 생각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리.
이제 가을걷이는 야콘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일년 내내 비가 많이 와서 전국의 고추농사가 엉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우리 답운재 고추들은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다.

고추골에 난 어린 풀을 잡기 위해 초보농사꾼과 인쟁기질을 하여 몰골이 꾀죄죄해가지고 밭가에서 잠시 쉴 때의 단맛처럼 고추는 농부에게 수확의 단맛을 보게 해주었다.
다음 종목은 감자.

분이 많아 맛도, 영양도 끝내준다는 비싼 감자씨를 귀가 신생아 머리털만큼이나 얇은 초보농사꾼이 사와 심었다. 많이...
뚫린 구멍마다 도시 길가의 두더지잡기 게임처럼 불쑥불쑥 싹이 나와야 하는데 기계충을 앓은 것처럼 듬성듬성 머리숫이 나오니...

결국 초보농사꾼은 자신의 귀 여린 탓을 하며, 그 와중에 종자값을 계산하며 그 너른 감자밭에 예초기질을 해댔으리...
난 트집 잡을 사이도 없이 초보농사꾼이 침튀겨가며 그 맛과 영양을 자랑하던 감자에 대한 희망의 싹을 얼떨결에 같이 잘라내야 했다.
그리고 고구마(종목도 다양하다).

야콘을 심고 나니 준비해둔 밭이 남아 고민하던 중에 그런대로 도시인들에게 주전부리 역할을 할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던 자식.
수확이 그런대로 되었지만 손에 쥐여진 것은 초보농사꾼의 손톱 밑에 낀 흙때만큼 을씨년스러웠다.

유기농을 한다는 자부심이 없으면 볼멘소리가 산골을 찔렀겠지만 씩 한번 “바람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산골엔 있었다.
신은 삐딱하게 서있는 솟대처럼 사람을 한쪽으로만 몰아붙이지 않았다.
초보농사꾼이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일명 “땅 속의 배”라는 야콘이 그의 마음을 외롭지 않게 해주었다.

조용필의 노래 가사처럼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라고 놀려댔었는데...
야콘이 행여 얼까봐, 썩을까봐 창고 주위를 배회하는 농부의 걸음걸음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이제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본다. 그것을 보는 농부의 마음은 한 해 동안 땀으로 씨름했던 그곳이 끝간데 없이 초연할 수 있는 마음의 발원지요, 득달같이 달려들어 자신을 내어맡길 수 있는 용기의 샘인 것이다.

그래서 농부에게는 시금털털한 두엄 냄새 속에서도, 세찬 바람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담대함과 여유가 있는 것이다.


밤바람이 차다.
어둠 속에서도 온몸으로 제구실을 다하기 위해 잠 못 이루는 풍경 소리에 정을 느낀다.
맘 같아선 득달같이 달려들어 풍경 위에 앉고 싶지만 내 귀만 거기에 얹어놓고 들어온다.
귀 기울여 본다.

내 귀에서 쇳소리가 나는지 바람 흐르는 소리가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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