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무서움에 떨다보니 새벽에서야 잠이 들었다.

그 덕에 아이들 방학하는 날인데 학교차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내가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차에 올랐다.

   
그날따라 초보농사꾼이 없는 걸 아는지 봄날 같던 날씨가 돌변하여 살을 후벼 판다. 오두막을 나와 비포장길을 접어들었는데 길가 산에서 굴러 떨어진 큰 돌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피하기 위해 핸들을 꺾었고, 낭떠러지로 떨어질까봐 다시 산쪽으로 꺾고 하는 과정에서 땜빵을 했던 타이어가 펑크가 났는지 차는 균형을 못잡고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길 위로 제대로 내려와서도 그 모양인 차는 결국 제 몸을 간수하지 못하고 낭떠러지로 접어들었다.

“저 언덕 밑으로만 가지 않게 해주소서”순간의 기도가 스치자마자 바퀴는 자판기의 동전 떨어지듯 전속력으로 제 갈 길로 가기 시작했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와 차체 부딪치는 소리,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비빔밥처럼 착착 이겨져 내 고막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얼마를 그리 굴렸을까? 쿵 소리가 크게 나고도 덤으로 두어 바퀴 구르고 쇳덩이는 멈추었다.

"선우야, 주현아~~ 괜찮니?''
"엄마, 전 괜찮아요. 엄만 괜찮으세요?''
아이들은 어느덧 커서 지 에미 먼저 챙긴다.

겨우 차 문을 열고 내려가 내 옆에 앉은 주현이를 내리켰는데 뒤 칸에 앉은 선우는 안전벨트를 안해서 차와 한 몸이 되어 박자 맞추어 차와 착실히 굴러주었던 것. 그 결과 짐칸 구석에 되는대로 쳐박혀 빠져 나오질 못한다.

에미는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 제 자식을 잽싸게 건져 내지 못했다. 한참 만에 에미 손을 잡고 다친 다리를 움켜쥐고 빠져 나온 선우.
발이 땅에 닿자마자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소리로 읊어댄다. 제일 많이 다친 우리 선우가...

폐차장으로 가야 할 차지만 그래도, 그래도 문을 곱게 닫으려니 산골아가들의 책바구니가 나뒹굴고, 책들은 저 편한 자세로 여기 저기 엎드려 있다. 차에서도 두 놈이 책을 잘 보기에 예쁜 바구니를 하나 마련하여 책을 담아 주었었다.

그냥 올 수가 없었다. 바구니와 책만을 주섬주섬 주워 옷으로 흙먼지를 닦고 가슴에 앉았다.
아까는 차와 굴러 내려왔는데 지금은 그 언덕을 낯선 산골에 남겨진 세 식구가 걸어 올라온다.

오두막으로 되돌아가는 세 식구.
선우는 발을 절룩거리며 아빠가 차를 보시면 놀라실거라 걱정이 많다.
아무렇지도 않은척 씩씩하게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아이들을 위로해 보나 서러움은 벌써 목구멍을 타고 넘는다. 어느새 눈물은 주책없이 제 길을 타고 내리고...

주현이와 난 안전띠를 맨 탓에 실컷 얻어맞은 정도의 아픔이지만 선우는 다리를 전다. 선우가 다리를 절 때마다 선우의 기울어지는 몸 각도만큼이나 눈 속에서 견디다 못한 물도 출렁이고...

지애비 예천으로 1박2일 교육간 사이 벌어진 일. 교육가기 전부터 아이들과 오두막에서 자는 일이 걱정이었다.
한 번도 우리까리 잔 일이 없었으니... 무서워서...
“그래도 이 나이에...” 하면서 용감하게 자기로 하고 초보농사꾼은 산골에 남겨질 식구들 걱정에 망설이다 교육을 간 것을 이리 일을 냈으니...
무서움은 마음이 짓는 것이라 했던가. 마음이고 뭐고 무서워 잘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을 더 세게 끌어안고... 결국 새벽에 늦잠이 들었고, 아이들 데리고 학교가던 터에...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오두막 작은 방에 앉은 세 사람.
청심환 나누어 먹고 서로의 몸에 묻은 흙을 털어준다. 왜 그리 서러운지. 왜 그리 서러운지.
피붙이 하나 없는 이 낯선 산골에서 늘 얹혀사는 듯한 기분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조금 마음을 내려놓고 혀리를 펴려는데 이게 웬 일인지...

입김이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만 같은 날씨가 화답을 한다. 그 날 밤, 잠자리에 누운 주현이가 감았던 눈을 뜨더니
"엄마, 꼭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하고는 눈을 감는다. 어린 것이 앞자리에서 두 눈 부릅뜨고 다 보았으니...

그 때 어린 놈들의 부르짖는 소리는 내 가슴에 더빙으로 남아있다. "엄마, 낭떠러지로 차가 굴러요. 아~~악''
그랬다. 놀란 두 놈을 당분간 초보농사꾼과 옆에 하나씩 끼고 자기로 했다. 선우, 주현이가 잠들고도 난 영화를 수십 번이나 더 봐야 했다. 그런데 “영화”가 슬펐는지 내 마음만큼이나 베개는 물이 고여 밤새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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