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너무 해요!!

연호정의 연잎이 기계충을 앓은 것처럼 여기 저기 삐죽거리고 있다.
못물의 색이 어떠한지를 읽기는커녕 몇 낱 없는 연잎을 보니 누가 주인(연꽃)이고, 누가 섬기는 자(못물)인지조차 알 수 없다.

언제쯤이면 제 구실을 할까를 생각하다가 지금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님을 스스로에게 추궁한다.
때가 되면 새 잎이 돋아 연호정을 덮을 것이고, 그들은 스스로 소리 없는 호객행위를 할 것이다.

   
연호정의 연꽃은 다른 어느 못의 넓데데한 연꽃보다 되바라지지 않고 소박하다. 그런 이유로 떠받치는 연잎과 잘 섞여 논다.
산골에 와서는 사람이든 자연이든 소박한 것에 마음이 더 향하는 것은 왜일까.


산골로 와서 후회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부분 1순위는 단연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더 시간을 보낼 것을... 아이들을 외롭지 않게 해줄 것을...
그런 일만은 없어야 한다며 손을 불끈 거머쥐고 이마에 흰 띠 두른 귀농 주동자를 따라 내려왔다.

어쩌면 그것이 귀농을 반대, 반대하다 허락하면서 내 자신에게 약속했던 가장 강한 다짐이었으리.
그것을 잘 아는 초보농사꾼인지라 내가 아이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기야 자기가 마누라 상관 안하듯 상대방도 자기 상관 안하기를 무진장 바라는 남자지만...
그럴 때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전자는 말 그대로 상관이고, 후자는 관심이라고.(말이 새고 있으니 제자리로 가야겠다.)
그리 1순위에 대한 다짐을 하였지만 옹골지게 아이들과 섞여 놀았는지 돌이켜 보면 성이 안찬다.

산골은 아이들을 키우기에 좋은 알 수 없는 것들, 신비로운 것들의 창고이다.
오늘은 훌쩍 커버려 곧 중학생이 될 선우를 보니 후회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을 아이들과 더 의미 있게 보내자는 힘찬 다짐을 했다.
그 다짐을 뒷받침하기 좋은 것이 오늘은 오디 따먹기라는 판단이 섰다.

주현이는 앙증맞은 바구니 하나 들고 따라 나서는데 선우는 지에미의 마음도 몰라주고 낮잠을 잔다.
남아있는 놈이라도 건지자는 차원에서 주현이를 달랑 데리고 나선다.
그러나 익은 오디는 두 모녀를 흡족하게 해주지 못했다.
날이 하도 가물어 다 자란 놈이 하얗게 타버린 것.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한참만에야 겨우 바구니 바닥을 덮은 오디를 아빠위해 술을 담는단다. 그러자면 이것으로 부족하다며 풀숲에 떨어진 오디까지 뱀의 공포도 불사하며 줍는 주현이...
“아가야, 언제쯤이면 니 에미 속을 읽겠니? 술이라면 머리가 흔들리는고만... 술은 무슨 술...”
쥐똥만한 오디를 담은 바구니를 신주단지 모시듯 모시고 가서 지 애비에게 보여주는 주현이...

주현이의 오디술 이야기를 했건만 눈치도 없이 바구니를 엎어 오디를 한 잎에 털어 넣는 초보농사꾼.
“이그, 저러니 EQ가 높아질 턱이 있나. 그나마 알량하게 있는 EQ마저도 깔아뭉개니...”
나의 일그러진 눈썹 미간을 읽었는지 초보농사꾼 어둑어둑해졌는데 산골아가들더러 “땅따먹기”하자고 바람을 넣는다.
오디 때문에 실망한 주현의 표정은 곧 자빠질 것 같다.

땅따먹기를 잘 하는가보다 했더니 "아빠, 너무 해요"하는 두 놈의 볼멘소리가 석류알이 대책없이 터져 나오듯 삐져나온다.
이럴 땐 안봐도 뻔하다.
애비가 땅을 다 따먹었으리...
“수습도우미”가 설거지하다 말고 나가보니 벌써 판이 깨지고 애들 표정은 쑥대밭이 된 상태...

아까 오디 때부터 참았던 부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짓누르고 “얘들아, 엄마랑 땅따먹기 할까?”하자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또 선수치는 초보농사꾼.
“얘들아, 아빠랑 농악하자”
진작에 그리 나가야지 하며 마저 설거지를 하는데 이게 뭔 일이랴, 난리가 났네.
주현이는 장고, 선우는 징, 애비는 상쇠...
몇 해 전 우리 식구 모두 풍물 강습을 받았었다.

제일 잘 끌고 가야하는 상쇠의 실력이 바닥이 났는지 아예 주현이에게 한 강의 듣고 있는 초보농사꾼.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머리에 휴지까지 두르고 차릴 것은 다 차렸는데, 그럼 뭐하나 장단을 다 잊어버렸는데...
박씨 일가들 머리 맞대고 풍악을 울리니 다람쥐도 듣고, 박새도 듣고, 소나무도 마실와 귀를 기울인다.
산골의 밤은 이리 깊어만 간다.


초의 선사는 차를 혼자 마시는 것은 가장 신명나게 마시는 것이고, 둘이서 마시는 것은 보통 잘 마시는 것이고, 서넛이서 마시는 것은 취미쯤인 것이고, 대여섯이 마시는 것은 덤덤하고, 칠팔인이 마시는 것은 보시하듯 나누어 마시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지만 농악은 여럿의 서로 다른 기운이 어우러져야 제 맛이 난다.
그 뿐인가. 상대방의 악기를 살려주면서 자기 소리를 내다보니 섞여 삶의 철학도 배우게 되어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지금, 박씨 일가들은 섞여 삶의 의미를 느끼며 제 흥에 겨워하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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