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니 산중의 농부도 똥오줌 못가리지만 다람쥐도 만만치 않음을 자주 본다.
입에 겨울 양식을 볼록이 물고 이리 저리 작은 몸을 굴려 가을걷이를 하는 것을 보면 여간 신통하지 않다.

오늘도 들로 나가는데 다람쥐와 마주쳤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생각나 그가 지나간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느 절에 한 비구니가 다람쥐의 추수하는 모습을 보고 쫓아가 그들의 굴을 파보았단다.

땅 속에서 발견한 밤과 도토리를 묵이나 해먹을 요량으로 가져왔단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온 가족이 겨울 동안 먹을 양식을 전부 빼앗긴 다람쥐가 새끼까지 다 데리고 와 그 비구니의 고무신짝을 물고 죽어있더란다.
그 비구니는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그 다람쥐 가족을 위해 49재를 지내 주었다는 이야기...

그래서인지 다람쥐를 보면 그의 갈 길을 방해하지 않으려 한다. 내게 해코지 안하니 각자 겨울준비를 하면 된다.
산골에서는 그런 친구들과 다툴 일이 없다. 각자 바빠서...


산골에는 손님이 많이 온다.
지인들은 연락을 하고 오는 편인데 주로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찾아온다.
후자의 경우가 많다보니 산골 오솔길로 낯선 차가 들어오면 무슨 일일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야콘밭에서 일하는데 누렁이가 짖는다.
내려다 보면 차는 안보이고, 또 짖고, 안보이고...

누렁이 놈도 나이먹으니 환청이 들리나보다 하고 무시했는데 사람소리가 들린다.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풀고 내려가 보니 낯선 부부가 오두막의 주인을 부른다.
바깥 마당 의자에 마주 앉았다.

   
걸어서 왔느냐는 말에 차를 다리결에 두었단다. 마을입구에 두고 싶었는데 어느만큼 산 속으로 가야할지 몰라서...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다고 어쩔줄을 몰라하니 속으로 김매는 일을 걱정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담배연기처럼 하나 하나 내어놓는 이야기에 점점 가슴이 무거워졌다.
나이는 55세이고, 자궁암 말기 환자란다.
부족함 없이 살다보니 느는 것은 욕심과 사치 뿐이었단다.
욕심이 크면 기쁨은 기를 못편다고, 그 분 역시 그 법칙에 맞아떨어진 삶을 산 모양이다.

공부못하는 자식들까지 다 유학보내고 어깨 힘주며 살았는데 하루 아침에 벼락을 맞았다며 하늘을 본다.
어느 잡지에 산골가족이 나온 모습을 보고 홈페이를 샅샅이 숨죽이며 보았단다.
그리고 그답 내달렸다며 앙상한 손으로 찻잔을 잡는데 뼈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가슴이 시려와 난 할말이 없었다.
그저 마주 앉아 차를 함께 마실 뿐.

사람이 사람을 세 치 혀로 위로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중해야하는지 산중생활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진작에 욕심버리고 살았어야 했는데 욕심이 병을 부른 것 같단다.
욕심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한 난 뜨끔했다.

오두막을 구경하고 싶다기에 아이들과 사람 편한대로 놓고 사는 집이라 내키지 않았지만 간절한 눈빛에 내가 앞장섰다.
불쑥 찾아온 것이 미안했던지 다음에는 꼭 연락하고 오겠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꽃밭 옆에 핀 민들레를 보더니 암환자에게 좋은 것이라며 손으로 뜯는다.
위암을 앓고 계신 형부에게 뜯어보내려던 참이었지만 눈 앞의 사람이 먼저다 싶어 호미로 한 봉지를 캤다.

캘 철도 아니지만 고구마도 한 봉지 캐서 들려 주었다. 힘든 몸으로 먼 길 온 다급한 분에게 이리밖에 할 수 없음에 등골에선 찬바람이 흘러내린다.
진작에 이 산골을 알았더라면 하고 일어서는 부부를 따라 다리결까지 가려니 막무가내로 말린다.

먼길 떠나는 에미 쫓아가듯 따라나섰다.
다리결에 세워둔 검은색 외제차를 보고서야 아픈 몸으로 왜 걸어왔으며, 왜 나오지 못하게 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뒤돌아보며 손흔들기를 멈추지 않는 그 분에게 생명의 바퀴도 멈추지 않기를 기도했다.
가을 안개는 천 석을 보태준다고 했는데 안개가 자욱이 호수밭에서 줄지어 내려온다.

사람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를 나에게 먼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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