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아이들 교육문제다. 어른들이야 좋아서 왔다지만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시키느냐며 눈을 가늘게 뜬다.

귀농 초든  지금이든 아랫배에 힘주며 한 말이 자연에서 배우고, 부모가 깨어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면 눈의 흰자위만큼만 믿는 표정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이 자연에서 배우고, 부모가 깨어있고, 그리고 또 한 박자를 맞춰주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았다. 다름 아닌 아이들의 스승이다.

   
산골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는다. 한 달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책값이 축내고 있을 정도로...
그런 선우가 어느 날 자신의 꿈이 작가가 되는 것이란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역사를 알아야 하니까   22권짜리 `이야기 한국사'를 사달라더니 읽기 시작한다.

아이를 앉혀 놓고 물어보았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 선생님께서 글쓰기를 할 때마다 작가로서의 가능성이 보인다며 말씀해 주시니 힘이 난단다.

``정말 소질이 있으니 더 열심히 해보자,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되면 선생님 모르는 척하면 안된다, 미리 사인을 해달라....''

아이들의 꿈이란 그런 거다. 자기가 믿고 따르는 분의 그런 말 한 마디로 자신감을 갖게 되고, 꿈을 정하며 키워가는 것이다. 그 역할을 담임선생님이 하신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선우의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이제 초등 6년생이 그 꿈을 이루든 이루지 않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우선 꿈이 있다는 것과,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향해 노력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과연 선우를 서울에서 키웠다면 지금처럼 저런 모습일까?

선우는 초등 2년을 다니다 울진으로 왔다.
그래서 도시의 교육제도나 정서, 교사와 학생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어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전교생이 30명도 안되는 산골 학교에서 아이들은 스승의 이슬을 먹으며 꿈을 키우고 있다.

월요일마다 반 아이들과 학교에서 저녁밥을 함께 지어 먹고 어둠 속에서의 프로그램을 거르지 않고 행하는 모습, 공부가 떨어지는 아이들을 방학 때나 방과 후에 모아 놓고 따로 지도하는 모습, 숙제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이에게 과감히 세찬 매를 드는 모습... 그 모든 것에는 `사랑'이 안개처럼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느 날 선우가 양말을 두 켤레 신는다.
왜냐고 묻는 엄마에게 "오늘 숙제를 다 못해서 발바닥을 맞을텐데 덜 아프라고요''하며 씩 웃는 선우의 입가에서 희망을 보았다.
바이얼린 줄을 함께 팽팽히 당길 스승이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팽팽한 바이얼린으로 그들은 훌륭한 음을 연출해 낼 것이다.

차맛의 가장 신묘하고 참된 정수는 물맛과 차향이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고 초의선사가 말했듯이 스승과 제자 역시 제자에 대한 사랑과 스승에 대한 신뢰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한 바퀴 안에 있을 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든다.

산골 아이들은 오늘도 서리내린 아침 공기를 가르며  자신들을 자석처럼 이끌어 주시는 '스승'을 향해 힘차게 달려 가고 있다.
그러니 나의 오지 산골로의 귀농은 대성공이 아니겠는가.


군불 때는 아이들 방에 창호지를 새로 발랐다. 옆에 문풍지를 여유로 매달았으니 한겨울 문풍지 소리로 아이들은 귀를 소제할 것이다.
창호지를 바르고 동그란 쇠 손잡이 옆에 빠알간 단풍잎을 넣어 덧발랐더니 방안 분위기가 한결 화사해졌다.
이제 아침이면 햇빛이 창호문을 통해 얼굴을 간지르며 아이들을 깨울 것이고, 저녁이면 달빛이 스며들어 겨우내 건조한 아이들의 가슴을 은은히 비춰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꿈도 익어갈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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