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바람이 드세다.

그 바람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바람 속에 선 사람의 정신상태에 따라 그와 놀아나는 기분 또한 다르다.
정신상태가 퇴색한 비로드천 같은 날은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처럼 머리 속이 쑥대밭이다.

그러나 독버섯처럼 화려한 날은 바람과 내가 손발이 잘 맞아돌아간다.
산중살이 5년만에 이런 터득까지 하니 이러다 돛자리 펴고 앉아 하는 벌이로 전환해야 하는 건 아닌지 슬 걱정이 된다.


처음 귀농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이 여행을 끝내고 다른 세상에 같을 때도 이리 낯설겠구나.
이 쪽을 봐도 산이요, 뒤돌아 봐도 산, 아무리 둘러봐 봤자 보이는 건 산 뿐이었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에 들어와 앉은 거였다.

피붙이는 커녕 어떤 연고도 없는 이곳 울진하고도 깊은 산골로 네 식구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딱 5년 전에.
갈래머리에 유치원생이던 딸 주현이, 초등학교 2년생인 아들 선우의 손을 잡고 산골로 들어와 들꽃을 눈에 넣으며, 입에 가득 겨울 양식을 문 다람쥐를 챙기고, 빨간 고추잠자리를 쫓아다니며 아이들은 커갔다.

그리고 귀농 주동자인 남편과 난 마음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러다 마음지치는 일이 생기면 연호정에 달려갔다.
진흙 속에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고, 욕심이 없어 사방으로 가지를 뻗지 않으니 흔들림도 없는 연호정의 연꽃을 보면서 지친 마음을 추스렸었다.

사람이 세 치 혀로 화려한 수식어를 써가며 위로한들 그에 비기겠는가.
그렇기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반대 반대하다 허락한 귀농을 도로 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질 않았다.
그러다 영혼까지 다치는 일이 생기면 또 다른 나의 선지식이 그 영혼을 치유해 주었다.
그것은 내 곁에 '스스로 그러하게' 존재하고 있는 自然.

   
그는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두 눈 부라리고 앞만 보며 달려가는 내게 어떤 말도 걸지 않았다.
오줌색깔처럼 노오란 얼굴로 앉아있을 때, 그는 바람이 되어 어깨를 다독여 주었을 뿐이다.

철따라 제 역할을 다 함으로써 무딘 내가 느끼고, 깨닫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 기다림의 기간은 5년.
이제 새해들어 귀농 6년차에 접어든다.

이제는 사람이 왜 눈만 유독 동그란지 그 이유를 알 것같다.
앞만 보며 가지 말고 눈을 돌려 주위도 살피며 가라는 뜻인 것을....
금아 피천득 님의 '반사적 광영'이란 표현이 생각난다.
반사적 광영이란 남의 광영을 힘입고 영광을 맛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 표현이 여기에 걸맞을지 몰라도 자연의 광영에 힘입어 내 무한한 영광과 혜택을 거저 얻었듯이 이제 나의 산중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것같다.

그러자면 우선 눈 주위의 근육운동을 열심히 하여 눈이 옆으로도 잘 굴러가도록 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5년이 낯선 곳에 마음을 안착시키는데 허비한 시간이라면, 이제 6년차부터는 조용필의 노래 가사처럼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하지 않을런지.

그렇다고 거창한 삶의 흔적 운운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서 거저 얻었듯이 나도 거저 이웃에게 무언가 나눌 수 있는 그 준비운동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날이 춥다.
아들 놈 오줌줄기만큼 나오던 물이 그나마 인색하게 군다.
철철 넘쳐날 때는 감사할줄도 모르다가 볼짱 다본 것처럼 굳게 입다물고 있는 수도꼭지를 보니 세상 이치도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 늘 그 모습으로 좋게 작용하는 것들에 감사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결핍되어봐야 뜨거운 국물을 마신 것처럼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에 감사하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틱낫한 스님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해야 하는가보다.
그렇다면 물 안나온다고 얼굴 구기고 있을 일이 아니라 화로에 불을 담아 수도 가까이 놓고 그를 구슬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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