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많은 내가 요즘 이른 아침에 자주 깨는 일이 좋종 있다.
허리에 탈이 나서 잠결에 뒤척이다 그 통증으로 인해 잠에서 깨는 것이다.
다시 잠을 청하려 하나 바른 자세로 고쳐 눕기조차 쉽지 않다.
이제 잠도 달아나고 이런 판국이라면 잠자리를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
이 깊은 산중에 자다 깨어 홀로 앉아 보는 일은 흔치 않다.
낮의 고된 노동도 노동이려니와 늦게 자는 나쁜 버릇도 한 몫을 하기 때문이다.
늦도록 풀벌레 소리가 나 자기를 기다리더니만 지금은 쥐죽은듯 고요하다.
깊은 밤에 혼자 깨어 달빛 아래 앉으니 모든 산중 것들이 가찹게 닥아앉는 기분이다.
자연은 사람처럼 미주알고주알 생색을 내지 않아 대하기에 부담이 없다.

   
이제 산중생활을 시작한지 올해로 만 5년이 되었다.
1년, 1년이 보태져서 5년이 된 것뿐인데 5년을 보내는 마음은 이렇게 각별할 수가 없다.
괴테가 하루하루를 따로 두고 생각하면 너무도 안타깝다고 했다. 5년을 한 다발로 묶지 않으면 덩어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왜 5년을 한 다발로 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귀농한지 만 5년이 지난 요즘 느끼는 내 감정을 생각하니 저절로 머리가 끄덕여진다.
한 해, 한 해의 산골살이는 우선 1년을 경험하기 급급했다.
봄에 씨를 뿌리고, 풀을 매주고, 바람에 쓰러지지 말라고 줄도 매주고....
그러다 뿌린 만큼 거둔 적도 있지만 뿌린 것을 죄다 포기해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사람과의 사이에서 오는 기쁨, 아픔을 겪고 올해는 이랬으니 내년에는 이러겠지 하는 정도의 기대로 두 번째 해를 맞이하고 말이다.
그리 5년이 지나는 동안 산중생활의 사이클도 알게 되고, 연고없는 낯선 곳에 조금씩 심지를 박기 시작했던 그 깊이도 조금씩 안정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5년이라는 묶음의 매듭을 하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다음 매듭을 지을 때까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가 입에서 요란스레 달그락거리는 요즘이다.
초보농사꾼이 좋아하는 조용필의 노래 가사 중 이 대목이 가슴을 휘젓는다.
'내가 산 흔적이랑 남겨둬야지...'
그 흔적은 눈에 보이는 흔적이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이길 원한다.
지금껏은 눈에 보이는 사안에 째진 눈을 굴렸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는 일, 가슴이 시키는 일에 귀기울일 때가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고가 열려 있어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산중살이가 소몰이 하듯 나를 그쪽으로 자연스레 몰고 간 덕이다.
귀농을 하지 않고 도시생활을 계속하였다면 이 5년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쩌면 5년이라 하여 별나게 인식 조차도 못했을 것이다. 코 앞의 욕심이 눈에 가려서...
이제부터는 덕깽이진 귓고래를 청소하고, 가슴에 통풍이 잘 되도록 환기시킬 일이 시급하다.
또한 마음이 한 쪽으로 쳐지지 않도록 마루 운동을 하는 선수처럼 중심을 잘 잡을 일이다.
그리되다 보면 가슴 속 울림을 제대로 알아듣고 시키는대로 할 것이 아닌지.
5년은 이처럼 사람을 두 번 만드는 데 소요되는 기간인가 보다.

바지가랭이로 새벽의 찬 공기가 끼어든다.
어느 샌가 풀벌레 소리도 깨어(산골에서는 소리도 자고 깨고를 한다) 가세를 하니 새벽에 너무 놀았다는 신호다.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런 소중한 시간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그 쯤에 이르니 허리 아픔이 꼭히나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오히려 허리아픔이 고맙게 여겨지는 새벽이다.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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