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이니 한창 팔팔 할 때다.
그때 40대 수반에서 50대의 사람들을 보면 '난 저리 어중띠게 늙지 않을 것같은데..'하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 하면 이리 팽팽한 피부가 어떻게 저리 되며, 머리칼도 어떻게 그리 허옇게 되는지 궁금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4학년하고도 중반에 서고 보니 조금은 알 것같다.
갑자기 그리 되었겠는가.

이런저런 큰 일을 치르다 보면 그리 한번씩 폭삭폭삭 늙는 것을..
큰 일이라는 것이 집안의 상을 치르거나 하는 일 외에도 부부 사이에, 그리고 이웃 사이에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으면 우리 모두는 그리 한 묶음씩 늙음으로 치닫는 것을...

그것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그리 어중띤 늙음으로 가는 것을...

지난 주일에는 천안에 있는 선산에 갔었다.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 천주교 묘지에 묻히고 싶어하셨다. 그렇지만 부모님과 조상이 계시는 선산으로 가야 한다며 당신 자리를 미리 마련해 놓으셨었다.

   
한겨울에 당신이 하늘나라로 가게 되면 자식들이 땅파느라 고생한다고....
그리 가묘까지 잘 다듬어 놓으신 것도 안심이 안되셨는지 제일 좋은 계절인 가을 어느 날 이승에서의 짐을 꾸리셨다.

그 자상한 성품이 풀로 자랐는지 신생아 손가락만큼 잘잘한 풀들이 햇살을 받아 윤이 나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귀농하고 한 번 밖에 못가봤으니 얼마나 무심한 자식인지...
그런 미안함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어둑해지도록 딸은 아버지와 그렇게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말을 걸면 뭐라고 대꾸라도 할텐데 말주변 없는 딸이 먼저 말을 해야 하는가 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세월의 흐름을 떠올릴 뿐이다.

'세월'을 말할 때 눈자위 먼저 씰룩거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상황이 그쯤되니 가슴속 옹알이가 터져 나와 딸은 큰소리로 떠든다.

딸은 말하고, 아버지는 듣는다.

그리고 이제야 효도한답시고 평소에 아버지가 입으로 늘 중얼거리시던 기도문을 바쳐드린다.
그 소리는 점점 탄력이 붙고 목젖도 얼떨결에 뜨거워진다.

지금 이 순간, 산자와 죽은 이의 구별이 있을까.
아마도 같은 울림에, 같은 모습으로 마주 앉았을 것이다.
평소 좋아하셨던 담배도 한 개피 피워 놓고, 좋아하진 않으셨지만 소주도 한 잔 부어드렸다.

알 수 없는 복잡한 생각을 털고 아버지와 작별을 한다.
그 미련의 끈이 질겼던지 난 그 옛날 멱감고 놀던 냇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오염될대로 오염되고 쓰레기 천지로 변해 을씨년스러웠지만 그 옛날 어린시절 난 그곳에서 피래미와 붕어를 잡으며 그 은빛 비닐처럼 빛나는 꿈을 키웠었다.
그 옛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나의 필림을 되돌려 보았다.

나의 아버지는 한양에서 공부시켜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많은 자식들을 데리고 올라와 공부시키셨지만 방학때면 많은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빠듯한 생활인데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고향 앞으로를 실천하셨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날엔 텃밭에서 참외와 토마토를 따 주머니에 찔러 넣고 냇가에서 던지며 놀았다. 그러다 터지면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던 기억, 소나기가 쏟아지면 너나 없이 검정 고무신 머리에 얹고 줄행랑치던 기억, 한겨울이면 뚝방에서 불장난하다 눈썹 다 태워 할아버지께 꾸중듣던 기억, 얼개미로 잡은 붕어와 피래미를 검정 고무신 속에 넣어 두고 모래밭에 누워 몸을 말리던 기억, 어린 손자들을 위해 방학때 맞춰 할아버지가 지어놓으신 원두막에서 매미소리들으며 튀밥을 먹던 기억, 어스름 밤이 되면 모기 쫓는다고 할머니가 피워 놓으신 쑥향을 맡으며 멍석펴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던 기억, 기억들....

냇가에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많은 보석을 가슴에 차곡차곡 담아 두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그 어린시절의 보석을 삭막한 서울살이를 하면서 하나하나 꺼내 썼었고, 산골에서 하나하나 글로 풀어내고 있다.

그 보석은 눈 앞의 보석과는 달리 꺼내 쓸수록 다시 채워지는 그런 요술보석이다.
마음이 허할 때면 그 보석으로 위안을 삼았으며, 힘든 파도를 만났을 땐 든든한 위로자였다.

그런 어린시절이 있었다는 것, 이 얼마나 행운인가.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그리 보석을 심어주셨던 거였다.
그러니 그 보다 더 값진 유산이 있을까.

생각해 보라. 요즘 아이들의 가슴 속에 그런 보석이 반짝이고 있는지.
그들 가슴에 검정 고무신 속의 붕어와 피래미의 그 맑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는지.
보석은커녕 학원이다, 과외다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부모들은 어떤가.

그들 또한 아파트에, 차에, 자식들 성적에 목숨을 건다.
다들 어디로 치닫는지는 알바 아니다.
앞만 보며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생각해 보자.
내 가슴 속에 보석이 있는지,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 보석을 심어주는 일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지...

나 또한 입찬 소리할 처지는 못되지만 귀농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과 자연에서 맘껏 놀자는 것에 걸었으니 반은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페르시아의 어느 시인은 "은전 두 닢이 생긴다면 그 중 한 닢은 빵을 사고, 나머지 한 닢으론 영혼을 위해 히아신스를 사리라"고 했다.

우린 나와 내 자식의 영혼을 위해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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