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눈이 서서히 녹고 있다.
잔뜩 얼었던 마음에도 낙숫물 소리가 들리고, 대지에서도 싹들이 겨우내 동상걸리지 않으려고 발가락 운동하는 소리가 드리는듯하다.
이제 개울의 살얼음도 무거운 몸을 풀고 행길로 바짝 나앉으면 나도 겨울의 긴 시간을 털고 대지로 나앉아야 한다.
그 땅내음이 물씬 풍기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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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입을 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 봄이다.
농사꾼이야 봄, 여름, 가을없이 바쁘지만 봄에는 일단 작물을 서둘러 땅에 꽂아야 하기때문에 맘이 더 급하다.
그때도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싫은지 찬기운을 내뿜는 어느 봄날이었다.

유기농으로 짓는 농사라 퇴비를 많이 뿌린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작업복에 냄새가 배기 마련이다.
그 날은 이웃 할아버지의 품을 샀기때문에 세 사람은 열심히 퇴비를 뿌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두막에서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답운재 밭에서 일할 때는 그 근처의 휴게소에서 점심을 사먹는다.
날이 춥기때문에 밥을 싸가지고 가야 어설프고 해서 그렇게 한다.
시골의 휴게소가 그렇듯 사람이 우리 말고 없었다.
주문받으러 온 할머니가 냄새가 난다고 하면서 영 표정이 아니다.
냄새가 나니 난다고 하는 것인데 그 소리며 표정이 쉽게 귀와 눈을 빠져 나가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냄새난다고 한다며 걱정을 하신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우린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쥐죽은듯이 기다렸을 뿐.
음식을 갖다 준 할머니가 또 냄새가 난다고 귀에 박아준다.
잔뼈가 굵도록 농사만 지으셨지만 경우 바르시고, 말씀도 헤프지 않으시고, 정이 많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마음이 쓰이셨는지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고개를 못드신다.
밥을 놓고 가면서도 또 한번의 냄새소리를 듣는다.
이쯤되면 밥이고 뭐고 다 포기해야 한다.
"다른 손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골 휴게소에 농사짓다 들어오면 냄새 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몇 번이나 그리 냄새난다는 말을 하느냐"고 했다.
젊은 사람이 60넘은 사람한테 눈 똑바로 뜨고 그런다고 되돌아 온다.
그래서 분명히 말했다.
"난 상관없다. 어떤 말을 들어도 우린 상관없다. 그럼 80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에게 그러는 것은 경우에 맞느냐??"
"냄새가 나서 난다고 한 것이 뭐가 잘못 됐다고 그러느냐"는 식으로 이어지는 언성.
내게 냄새가 난다고 말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 80이 가까운 할아버지가 안절부절을 못하는 모습에 부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쯤되니 식당 주인이 나타나서 진정시킨다.
그 할머니도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분인데 더 이해가 안갔다.
이곳이 도시 근교의 휴게소라고 하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
이미 점심먹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뛰쳐나올 수도 없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이시고 아무 말씀도 없이 식사를 시작하셨기때문에 우린 전염병걸린 사람처럼 할아버지의 행동을 따라 한다.
밥이 어느 구멍으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근처에도 휴게소가 있어 자주 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식당에서 나와 밭으로 돌아오며 할아버지께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참았으면 될 일을 괜시리 어르신 앞에서 언성을 높여 죄송하다고...마음편치 않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입으로 말하는데 왜 내 눈이 대답을 하는지...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을 눈은 무엇인가를 쏟아내고 주책이다.
이 이야기도 혹여 그 식당에 폐가 될까봐 그저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었었다.
지금은 식당 주인과 사람들도 모두 바뀌었으니 이리 말하는 거다.
귀농하고 처음 이곳에서 적응하기 힘든 것 중 하나는 농사짓는다고 하면 일단 사람을 반으로 접어서 본다.
보태주는 것도 없으면서 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농사짓는다는 이유가 작용하여 사람을 접어서 보는지...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사람들이 서울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다더라, 핵교를 어디 나왔다더라 등등의 말이 흐르면 태도는 180도 달라진다.
무엇이 변했는가.
사람은 그 사람 그대로다.
그러니 대하는 모습도 그대로 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농사를 짓든, 돈을 짓는 직업이든 그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머리는 그런데 언행이 셋트로 노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제발 그러지 말길 바란다.
어느 식당에 가서 혹여 농사를 짓다 온 사람을 만나건, 공사장에서 일하다 땀냄새 풍기며 온 사람을 만나거든 제발 그러지 말길 바란다.
왜 사람들은 거죽에 치중하는지...
냄새도 사람에게서 나는 속뜰의 향기를 보려고 하지 않고 머리 띵한 향수 등으로 치장한 향기만 보려하는지 알 수 없다.
날은 푸근한데 이 글을 쓰는 내내 등이 시리다.
그 시림은 가슴으로 들어와 허락도 없이 진을 친다.
이제는 한동안 가슴을 단속해야 한다.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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