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편지 쉰 두번째 - 죽이고 살리는 일

2006년 4월 4일 점심부터 비가 오고 그리고 안개 자욱한 날

산골에는 무쇠 화로가 하나 있다.
아궁이에서 화로에 벌건 불을 담고 나면 아궁이 한 곁에 회색빛 얼굴을 하고 물러나 앉아 있는 재를 얇게 덮는다.

재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그 무엇처럼 불의 송장이 아니라 그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그 옛날에는 며느리가 집안의 불씨를 꺼뜨리면 날벼락이 떨어졌다질 않는가.

우리네처럼 재물, 명예에 목숨을 건 것이 아니라 그 불씨에 목숨을 걸었던 시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걸었던 그 불씨가 더 신성해 보인다.
요즘 사람들이 물불 안가리고 얻으려 하는 돈, 명예, 지위, 학벌에 비하면....

2년전에 옥천나무축제에 갔다가 줄장미와 홍매실 나무 몇 그루를 사왔다.
줄장미는 오자마자 신바람이 나서 제 위치를 잡아 이산가족처럼 뿔뿔이 흩어 심었고, 홍매실은 한 곳에 다닥다닥 심었다.
1년 가식했다가 뿌리가 튼실해지면 옮겨 심을 요량으로...

나의 주관심사는 튼실해지는 것까지는 그 다음이고 이 추운 곳에서 잘 살아 남을까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저나 나나 겨울을 잘 나고 봄을 맞이하게 되었다.

1년 정도 자랐다고 여기 저기 쭈삣쭈삣 잔가지를 내미는 줄장미를 위풍당당하게 전지가위로 이발을 해주었다.
전지해 주면 잎이 더 무성해지고, 몸매도 튼실해진다는 것은 어디서 주워 들어가지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성, 튼실해져야 할 줄장미가 그만 줄초상이 난 것.
결론은 반 타작.
반은 죽고, 반은 죽지 못해 살고...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줄장미를 잡은 것이다.

뭣도 모르면 전지에 대한 입품이라도 팔아야 하는데 무식이 용감하다고 그런 용기는 어디서 발동했는지...

자식을 키우는 일도 이에 견줄 수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도 제 때에, 제 위치를 정확히 전지(剪枝)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산만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튼실해지며 중심이 선다.
그러나 잘못하면 어찌 되는가.
줄장미처럼 '이게 아닌가벼'할 순 없다.

그러니 최소한 전지의 필요성을 느끼는 부모라면 그 기술과 혜안이 있어야 한다.
이럴 때 너나 없이 부모라는 짐이 버거워지는 대목이다.

부모가 어떻게 전지 가위를 휘두르냐에 따라 아이의 심성과 언행이 좌우되니 이게 보통 일인지.
부모가 까딱 잘못했다가는 애 잡을 일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불필요한 곁가지를 치기 전에 안팎으로 내 분수와 처지를 자주 점검하고 부모로서의 언행을 다스려야 하는데 줄장미에게 전지 가위를 휘두르던 그 용기는 어디로 갔는지 ....

겨울이 이제 물러가겠다는 기척을 한다.
오늘은 홍매실 나무를 비를 흠뻑 맞고 이식했다.
오늘처럼 비가 와야 초보가 이식을 해도 죽을 확률이 적을 것이라는 까막눈의 판단이 섰기때문에 행동을 강행해야 했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온다.

그래도 비를 맞고 안하면 죽을 확률이 많으니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는 일에는 눈, 비가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다면 새 터를 어디에 잡아줄까.
따사로운 봄날, 은빛 햇살에 연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각도까지 이 머리에 고려해가며 위치를 선정했다.

우체통과 친구 하라고 그 옆에 한 그루, 비포장길 걸어오는 아이들 머리 위에 나부끼라고 길가에 한 그루, 달밭에 일하러 갈 때 눈에 넣으려고 밭가에 한 그루..

그런데 큰 문제다.
몸통 밖 사방으로 삐져 나온 저 곁가지들을 어쩐다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전지 가위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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