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에도 강약이 있고, 늘 그 소리가 그 소리인 것같은 물소리에도 고저와 장단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인생의 악센트가 다르다.
명예에 모든 에너지를 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방끈에, 돈에, 폼나게 사는 것 즉, 겉치레에 악센트를 두는 사람 등 가지 각색이다.

예전엔 나도 그런 것들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지금은, 최소한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내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삶을 선택한 지금은, 과연 어디에 악센트를 두고 있는지,
오늘은 날잡고 점검해 볼 일이다.


주현이가 휴일이라고 선생님, 친구들과 올갱이를 잡으러 간단다.
아주 작은 시골학교에의 선생님과 아이들은 도시의 콩나물 교실 상황에서의 스승과 제자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관계가 아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산골에서는 자주 본다.
이 얼마나 행운인가.

그렇기에 산골에서는 스승이 여럿이다.
불영계곡이 스승이요, 이제 막 알을 깐 박새가 아이들의 스승이요, 오늘은 올갱이가 딸 주현이의 도반이자 스승이었을 것이다.

불영계곡 유리알같은 물 속에서 건져 올린 올갱이를 신주단지 모시듯 가슴에 안고 주현이가 왔다.
PET병을 반으로 자르고 올갱이를 넣었으니 물흘리지 않으려고 땀꽤나 흘렸지 싶다.

그러고는 밭에까지 쫓아와 나의 주특기인 김매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내게 언제 올갱이국을 끓일 거냔다.
지금처럼 바쁜 농사철에 손이 많이 가는 올갱이 국을 끓이자니...
몇 번 하다 말겠지 했지만 그의 성화는 계속되었다.
옛말처럼 불개미를 사타구니에 넣고 견디지 도저히 치근덕거려 풀을 뽑을수가 없다.
시어머니가 따로 없다.

지애비가 자빠지게 좋아하는 것이 올갱이국이라는 것을 아는 주현이의 속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쯤되면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고 입을 씰룩이며 밭을 내려와야 한다.
결국 호미를 던지고 내려와 주현이와 올갱이 요리를 시작한다.

먼저 된장을 풀어 올갱이를 끓인 후, 건져 불에 소독한 바늘로 일일이 올갱이를 깐다.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어떤 것은 알맹이가 하루살이만하다.
얼마를 도끼눈을 뜨고 올갱이를 깠을까.
눈이 다 아프다.
그러나 그릇을 들여다 보니 바닥도 못덮었다.

   
자식이 애비에게 올갱이국을 선물하고 싶은 저 성의만 아니었어도 올갱이국이고 뭐고 지금 산골의 농사 일은 널브러져 있는 상황에서 우아하고 쥐똥만한 올갱이까는 일을 포기했을 것이다.

잊은듯이 신경끄고 작업을 해야지 조바심냈다가는 협심증 걸리기 딱이다.

그래도 군말 않고 어린 주현이는 잘도 깐다.
아마도 지애비가 좋아할 그 모습을 떠올리며 깠을 것이다.
다 까고 들여다 보니 어른 한 주먹꺼리 밖에 안되지만 여간 소중한 재료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은 아까 끓였던 된장국에 올갱이와 궁합이 맞는 부추를 송송 썰어넣고, 청양초 숭숭 썰어넣고 송글송글 끓이면 올갱이국 완성!!

이번에는 주현이가 밭에서 일하는 애비를 재촉한다.
그 애비는 자주 먹을 수 없은 국임을 알았는지, 주현이의 마음씀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이웃에 사는 형 부부를 불렀다.


흙에서 땀흘려 일한 몸을 씻고 산중에서 먹는 올갱이국 맛이 어떠했을까.
그것도 어린 딸이 국내 제일의 청정지역인 불영계곡에서 잡아다 끓여준 국이니 말하면 잔소리지싶다.

말주변 없는 초보농사꾼도 주현이의 공로(?)를 몇 번이나 오버해가며 치하해 준다.

사는 것 별 것 아니다.
무궁화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 외식한다고 해서 가슴팍 뻐근하게 행복한 것도 아니고, 해발 500고지가 넘는 오두막에서 올갱이국을 먹는다고 해서 김빠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사는 기분이 째지고 안째지고는 그런 기준이 아니다.

13살짜리 딸이 아빠를 위해 커봤댔자 원기소 알만한 올갱이를 잡아다 까는 그 정성과 사랑으로 치자면 호텔 외식에 댈 게 아니다.

이웃과 함께 올갱이국을 먹고 늦은 밤 마당에 섰다.
오두막 뒤 두릅산에서 캥캥거렸던 노루도 잠들고, 나를 늘 긴장시키는 밉살맞은 뱀도 잠든 시간이다.

해마다 씨뿌리지 않아도 작년에 나왔던 자리를 기억했다가 화려하게 피어 온통 산골을 장식한 봉선화처럼 우리 주현이의 마음도 늘 화려하고 수수하길...
공작새처럼 아름다운 빛깔로 피어 내 가슴을 때도시도없이 벌렁거리게 했던

지금은 새벽 5시.
날이 밝기 시작한다.
새들도 지들끼리 아침 잠을 들깨우는지 소란맞다.
저들은 어느 나무 아래서 잠을 잤을까.
잘도 숨었다 나온다.
투명 플라스틱 마루 지붕 위로 이슬이 맺혀 구르고 있다.
그 이슬이 그들만의 빕법으로 대지를 깨울 것이다.
이제 자연을 스승으로 둔 산골아이들을 깨울 차례다.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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