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올림픽을 평생 치른다.
4년에 한번 며칠 열리는 스포츠 제전이 아니다.

평생을 올림픽 구호 아래 제 몸과 정신을 닥달하다 판이 끝난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

우리들의 윗세대는, 남보다 배굶지 않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자니 남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했고, 어찌 어찌 죽을 똥 싸가며 돈은 벌었는데 이번에는 옆 사람보다 더 잘나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배곯지 않아도 되는 세대가 되었지만 몇 십년 동안 탄력이 붙은 그 인생패턴은 프레이크를 밟을줄 모른다.
그러니 이번에는 죽으라 벌어 거죽을 치장해야 했다.
사람도 치장하고, 아파트도 치장하고, 차도 삐까번쩍 광이 나야 사람도 뽀대가 나는 것으로 착각하고 상대방을 평가하는 기준도 사람됨됨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아파트에 산다더라가 된다.

그러니 속뜰에 신경쓸 일은 없다.
너나 나나 할 것없이 경쟁을 하듯 그리 정신없이 돌아갔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라는 구호를 목청껏 외치며 몸과 정신을 굴린다.
내가 무엇때문에 그 구호 아래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얼마나 얼빠진 생각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이미 세월의 끝자락을 부여 잡고 있는 힘을 다해 흔들고 있겠지....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그러니까 나도 묻어가는 인생이었기때문이리.

귀농 전, 둘이 벌면서도 늘 만족할 줄 몰랐다.
욕심은 욕심을 낳고...

둘째 주현이를 낳고 돌이 닥아올 무렵(95년도) 직장을 그만두었다.
주현이를 더 이상 친정 엄마께 맡길 수 없을 정도로 편찮으셨다.

자식을 남에게는 죽어도 못맡기겠고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사표를 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 일을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전 직장에서 하던 원고감수와 직장인들 교육 리포트 채점 등을 집에서 하게 되었다.
예전에 했던 강의도 나가고...

내 일이 있어 좋았다.
그 이유도 있겠지만 솔직히 돈이 들어오니 좋았겠지...

거기에 만족하면 좋으련만 아파트 아줌마들이 그룹을 만들어 줄테니 과외를 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한 팀만 한다는 것이 어차피 하는 것 두 팀, 세 팀...
아이들은 어린데 일 욕심은 하늘을 찌르고...

얼마나 바쁜지 하다못해 거실에서 주방을 가는데도 뛰어다녀야 했다.
밤이 되어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간, 마감일을 재촉하는 원고지를 앞에 놓고 '내가 왜 이래야 하나?'하는 회의는 왔지만 어서 돈을 모아 아파트도 지역을 바꾸고 싶고, 욕심의 열매는 주렁주렁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 집안에서도 뛰어 다니다 발을 헛디뎌 뼈에 금이 갔다.
깁스를 하고 목발생활을 했다.
당연히 기존의 하던 일은 하나의 착오도 없이 계속 했다.
그러자니 오족했을까.

지금의 일을 정리하라는 뜻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눈꼽만치도 못했다.
사람이 눈치가 없으면 평생 고생하는 것은 여기에도 해당된다.

깁스를 푼지 얼마 되지 않아 더 큰 일이 벌어졌다.
자주 엉덩이 부근이 아프고, 열이 났다.
깁스를 하고도 무리를 해서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가래톳인가 그런 건줄 알고 약을 지어 먹고 하던 일들을 또 질기게 계속 했다.
그런데도 통증은 점점 심하고, 약기운은 점점 짧아졌다.
그때라도 몸과 정신을 그만 닥달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병원에 가니 당장 수술을 하란다.
얘기하기 조금 창피하지만 항문 안에 염증이 심각하여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염증이 온 몸으로 번져 머리 부분으로 올라가면 클난단다.
결국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실려갔다.

수술을 하고 병원에서도 원고를 보았다.
수술부위가 부위니 만큼 앉아있는 것은 통증을 참기 어려웠을텐데도 병원침대에 붙어 있는 식사 상에 앉아 원고랑 씨름을 했다.
당연히 마감일에 차질이 없었다.

퇴원을 하고 다시 나의 일많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남에게 맡기지 않으려고 직장까지 그만두는 데까지는 제정신이었는데 내 일에 대한 욕심과 물질적인 욕망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 잘 때는 거의 매일 책을 읽어 주었고, 집안 치우고, 또 원고를 보다 보면 새벽 2시, 3시는 기본.
내 책이라도 볼라치면 바로 5시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때 소원이 내일이라는 부담없이 밤새워 책도 보고 여유를 부려보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밤을 새우면 내일 당장 과외때 졸 것이고, 원고 보는 일에도 차질이 생기고, 직장인들 레포트 채점도 그들은 그 점수가 승진에 관련된 것인데 꼼꼼히 주관식 채점을 해야 하고, 강의하며 졸 순 없지 않은지...

그러다 모두 잠든 시간 혼자 깨어 베란다 밖을 내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 난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인가. 내가 무엇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두었는데..... 지난번 발을 다쳤을 때, 일을 정리해야 했어. 그 눈치를 못챘기때문에 수술까지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 앞의 돈통을 아무 일없이 걷어 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때 신에게 그런 기도를 간절히 했다.

내가 내 손으로 이 일들을 못끊으니 내 일을 다 끊게 해달라고...
안그랬다가는신이 수술보다 더 큰 메시지를 날릴 것만 같았다.
욕심이 한계 수위를 넘은지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리 간절히 기도했더니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귀농'으로...

그때 소리쳤다.
"내 일을 끊게 해달라고 했지 누가 산골로 보내달라고 했느냐"며 악을 썼다.
신이 착각을 해도 한참 한 것이라며 귀농 얘기를 처음 꺼낸 남편에게 귀농이라니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을 믿고 귀농한지 올해로 7년차.
'신은 왜 나를 , 어떤 뜻으로 산골로 보냈을까?'
이것이 7년 동안의 화두다.

이제 조금씩 알 것같다.
나의 생활이 과거보다 느리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하나
눈앞의 큰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를 위한 작은 꿈을 세우고 그 꿈을 위해 부부가 어깨동무하고 함께 간다는 것, 둘
자연이라는 큰 스승 앞에서 나의 아들과 딸이 밝게 잘 자라고 있다는 것, 셋

그리고,
그리고 책을 밤을 새워가며 읽을 수 있다는 것, 넷(이것 하나만으로도 소원 푼 것이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도시에서 그렇게 살다가 이런 오두막에서 사는 것이 정말(이게 중요함) 행복하냐고...

내가 지금껏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주절이 주절이 창피한줄 모르고 한 것은 그것이 바로 모범답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행복은 거죽이 동백나무 잎처럼 반지르르 하다고 해서 영혼도 기름기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요즘 대추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는 바람까지 꾀어 들여 시원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성당다녀와 짜투리 시간이지만 밭으로 가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추나무가 내게 그런 호의를 베푸는데 산골아줌마가 모르는척하면 되겠는가.
못이기는 척하고 책들고 대추나무 그늘 아래로 나섰다.
책을 본다.
도시같았으면 아직도 머리에 흰띠를 두르고 올림픽 구호를 외치며 골다공증 환자처럼 영혼이 비어가는줄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내일은 내가 오늘 호사를 부린 시간만큼 뙈약볕에서 호미질을 즐겁게 할 것이다.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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