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필리핀에 큰 화산이 폭발하여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이제 우리는 대피소동 정도의 뉴스에는 눈도 꿈쩍 안하는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하기야 세계가 지진과 태풍, 해일 등으로 엄청난 인명피해, 재산피해를 보아왔던지라 이제는 그것이 일상이 된듯 무감각해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예전같았으면 나도 '안된 일이구나'쯤으로 간단명료한 느낌표를 찍었겠지만 자연에 얹혀 살게 된 지금은 느낌의 파장이 깊고, 길게 유지된다.

예전에 읽었던 '구르는 천둥'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의 말이 생각났다.
"머지 않아 대지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크게 흔들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 열병을 앓거나 먹을 것을 토하는 것과 같으며 당신들은 이것을 신체가 스스로를 바로 잡는 과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정말 가슴에 새길 말이다.

누가 이 대지를 병들게 했는가?

자칭, 영리하고 현명하다는 사람들은 지금 코 앞의 이익만 보았지 바로 뒤의 일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자연은 글자 그래도 '스스로 그러하게' 두어야 하는데, 즉 '혼자 있게 내버려 두라'하는데 친절한(?) 사람이 자주 그를 추근덕거리니 탈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은 오두막 뒷산에서 꽃사과를 땄다.

거름을 주거나, 가꾸지도 않았는데 아니, 관심 한번 주지 못했는데 해마다 풍성한 꽃사과를 달고 우리를 기다리는 그 앞에서는 이 작은 몸뚱이가 더욱 땅에 붙을지경이다.

받는 것이 없어도 주는 것이 자연임을 알았다.
싸잡아 말하기는 뭐 하지만 사람이란 동물은 받아야 준다.
그것도 다 주나? 말로 받고 되로 갚는다.
아니, 받고도 입닦는 사람도 많다.
나도 그 부류에 속하니 입찬 소리할 처지는 못된다마는....

아이들 구슬만한 크기의 빨간 꽃사과.
햇살을 받으니 더욱 귀티가 난다.
반으로 잘라보니 그 작은 공간에 있을 건 다 있다.
사과처럼 가운데 동그란 모양의 속살이 있고, 그 옆에 흑미보다도 작은 씨도 있다.
꽃사과를 따고, 줍는데 진종일 신바람이 났다.
신바람이 안나면 비정상이지. 공짜에 이골이 났는데....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꽃사과나무 머리에 달린 것들은 까치와 까마귀의 양식으로 남겨두었다.
예전같았으면 작대기로 후들겨 패서라도 다 땄을텐데...
꽃사과 씨만한 이 양심도 도시에 살 때는 구실을 변변히 못하다가 자연에 얹혀 살면서 되살아난 신체 부위다.

주현이가 핵교에서 돌아오면 간식으로도 주고, 효소도 담을 참이다.
꽃사과 자루를 머리에 이고 신바람이 나서 산을 내려오는데 슬그머니 걱정이 생긴다.

자연에게 잘 보여야 이곳에서 내몰리지 않고 더불어 살텐데 하고 말이다.
그래도 까마귀랑 까치의 양식을 남겨준 것을 봐서라도 나에게 매몰차게 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나에게 자식을 다 털린 꽃사과나무의 표정이 떨떠름하지 않고 밝은 것으로 보아 그렇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나의 판단이 맞아떨어지길 기도하며 산을 내려왔다.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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