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전, 둘이 월급을 탈 때는 서로의 월급의 소중함이나 애틋함이 덜했음을 고백한다.
'나도 이만큼 버는데...'하는 되먹지 않은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귀농하고는 더 적은 수입인데도 뙤약볕에서 함께 땀흘리고 함께 고생하여 얻다보니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혼자 잘나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죽으나 사나 부부가 힘을 합해야 수레가 굴러가는 그런 시스템인 산골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는 가치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천주교 안동교구에서 '귀농자 모임'이 있는 날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각지에서 얼굴 형태만큼이나 다양한 사연과 목적으로 귀농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유익한 강의도 듣고, 음식도 나누어 먹으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그런 자리다.

우리 역시 해마다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가 좋은 시간을 갖었던 것은 물론이다.
이웃집이 긴 인도여행을 가면서 소밥을 부탁했기에 산을 넘어 소밥을 챙겨 먹이고 출발했으나 이미 강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은 양호준 신부님(가톨릭 상지대학 교수)께서 'MBTI로 보는 성격유형'에 대한 강의를 하고 계셨다.

마이어스와 브릭스라는 두 모녀가 다양한 문항을 만들어 사람의 성격 유형을 정형화한 것이라나,,,,
즉 내성적이냐 외향적이냐, 합리적이냐 감정적이냐, 계획적이냐 상황적이냐, 인식형이냐 감각형이냐....하는 것으로 자신의 성격 유형을 하나 하나 조립하여 내 성격이 어떤 타입인지를 알아내는 그런 강의였다.

성격유형의 첫자 'E,S,F,P'를 모자이크해 보니 난 '사교적인 유형'이었다.
옆에 있는 초보농사꾼이 자신의 성격을 체크하여 조립한 'E,N,F,P'라는 성격유형을 보니 '스파크형'이다.
"으악~~~"
내 입에서 순간 비명소리가 절로 난다.

   
그냥 유형 제목만 봐도 범상치 않은데 상황이 이 정도로 까칠하면 스스로 '역시 내가 그렇구나'하고 자숙하는 분위기였으면 좋으련만 초보농사꾼이 손까지 들고 질문을 한다.

"신부님, 전 스파크형으로 나왔는데 어떤 유형인지 설명 좀 해 주세요"

"한마디로 저지르는 형이죠. 수습은 못하면서 계속 저지르는... 그리고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형입니다. 또 술값도 나서서 내고 그래서 주위에 늘 사람이 많지요." 하며 신부님이 웃으신다.

많은 참석자 모두 웃는 것으로 보아 '스파크형'은 초보농사꾼 혼자지 싶다.

모임 중간에 점심시간이 있었다.
올해는 교육관 앞에 있는 복집에서 모두 점심을 먹었다.
복지리를 땀흘리며 잘 먹고 나간 초보농사꾼이 강의 시작할 시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질 않는다.
한참 후에 나타난 초보농사꾼에게 어디갔다 왔느냐니 얼버무린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남자와 사는 마누라 역시 '공의 행방에 대한 추측력' 또한 범상치 않은 법...
양쪽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은 후 다시 물었다.(일명 이 표정은 '귀신은 뭐하나'표정이다)
사태가 이쯤되니 그제서야 분다.

"뭐, 점심먹고 담배가 차에 있기에 담배 가지러 가는데 괴목같은 것으로 만든 탁자를 팔더라구."
처음 목청은 여봐란듯이 떵떵거리더니 문장의 뒤로 갈수록 꼬리를 흐린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다.

그새 일을 저지른 것이다.
개눈엔 똥만 보인다고 스파크형에겐 그런 것만 당연히 호기심 레이더에 걸렸겠지.

그러나 어쩌랴.
옆에 사람들이 있으니 최대한 볼륨을 낮추어 안그래도 째진 눈을 허옇게 뜨고 한 마디 날렸다.
"내가 못살아. 어떤 나무인지도 모르면서 어디서 바가지 쓴게 분명해. 누가 당신더러 탁자 사오라고 했냐고???"
숨이 턱턱 막히는 대목이다.

평소에 자상한 남자가 저러면 말도 안한다.
그냥 호기심이 발동했고 그 호기심에 걸맞는 '스파크형'이다 보니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다.
얼마나 주고 샀냐니 그건 절때루 안부는 것으로 보아 금액이 만만치 않은 것같다.

점심시간에 간단히 일을 저지른 초보농사꾼과 아무렇지도 않게 점심 전에 듣다만 강의를 마저 들었는데 이때 초보농사꾼이 '스파크형'으로 나왔고 그 성격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 해주신 것이다.

참으로 요상한 성격유형 모델이다.
딱 맞는다.
여봐란듯이 성격대로 그새 일을 간단히 저질렀으니...

이런 '스파크형'과 살다보니 내 머리에 김이 나는 것도 모자라 합선될 지경이다.

"아니, 근데 귀농자 모임에서 뭔 성격유형 강의랴, 안그래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남자와 사는데 여기 와서까지 그걸 재인식할 필요가 뭐 있댜??" 하며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어느 성격유형이 좋고, 나쁘고는 없다. 다만 이처럼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만났으니 상대방의 그런 성격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부부든, 이웃간이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멋진 마무리 멘트를 날리시는 신부님....

그렇다.
초보농사군이 귀농 전에 저질렀던 일에 비하면 겁나게 무겁고 큰 탁자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귀농 전 모터 보트니, 스킨 스쿠버 장비니, 암벽등반 장비니 ... 그 비싼 것들을 사들일 땐 정말 자라처럼 뒤로 발라당 자빠질 지경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런 저지름 정도야 귀엽게 봐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상대방의 성격 또한 우리네 세상살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같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질 않은가.

점심 때 탁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금방 먹은 복지리가 목구멍으로 살아 기어올라올 것같았는데 교육이 끝나고 나의 둥지 산골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그래 '스파크형'을 이해하자'고 주문을 외웠더니 뒤집어진 속이 제자리를 찾는 것같았다.

이 정도면 그 먼 안동까지 고무탄내나도록 달려간 보람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오늘 일은 '오냐 오냐 하면 할아버지 수염뽑으려 달려든다' 고 초보농사꾼이 이 일을 발동으로 잠시 가라앉았던 잠재력이 되살아나 더 사고를 칠지 모르니 항시 견제와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집에 돌아와 초보농사꾼이 선우랑 탁자를 내리는데 얼마나 무겁고 큰지 둘이서 쩔쩔매다 결국 차에서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 부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같아 서둘러 집으로 들어왔다.

이런 홍역을 심심찮게 치르고 세월밥을 먹다 보면 우리 부부는 나 모르는 사이 많이 닮아있겠지...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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