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멀리 떨어진 뒷간가는 길로 들어서면 철지난 밭에 앉아 있던 새들이 일제히 파드득거리며 놀라 날아아간다.
눈이 더 오기 전에 겨울양식을 마련하려 했는지, 연말이라고 일가 친척이 모두 모여 망년회를 하는지 몰라도 내가 방해를 한 것같아 슬 미안해진다.

저러다가도 눈이 사정없이 내리면 온다간다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
그럴 때 뒷간가는 길이 허전함은 말하면 잔소리…

내가 뒷간에서 용무를 보는 동안 내다 보니 그들은 다시 밭에 모여 앉아 아까 하던 일을 계속한다.


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내 부모 세대는 대충 70대다.
그 세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나는 아무렇지 않아 세대'다.
당신이야 어떻든 자식만 잘 되면 되었다.
내 입에 거미줄이 쳐져도 자식들 목구멍에 기름진 것을 넘겨주고, 내 몸이야 바스러져도 자식들 머리에 먹물 넣어주려고 기를 썼던 세대.
그러니 자식에게 사탕처럼 달콤한 부모가 못되었다.
그 상황에서 그걸 바랐다가는 다치지만...

   
그래서 그런 우스개 소리도 있지 않은가.
바나나가 너무나도 귀했던 시절, 어쩌다 바나나가 들어오면 어미는 자식 입에만 넣어 주었다.
엄마는 왜 안먹느냐고 묻는 자식에게 "엄만 바나나 싫어하니 너희나 많이 먹어라."고 대답한다.
그 자식이 커서 성공하여 바나나를 많이 사와서는 지 자식들하고만 먹더란다.
할머니는 바나나를 싫어하신다며...

자식을 위해서 간, 쓸개 다 빼고 산 세대가 나의 부모 세대다.
그러면서도 미주알 고주알 생색내지 않는 그런 세대.

먹고 살기는 빠듯했지만 자식에 대한 희망주머니는 빠듯하지 않았다.
당신은 없고 오직 자식만 있었던 세대.

거기다가 빌어를 먹더라도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는 세대 또한 우리 부모세대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자식들 공부시킨다고 새끼줄에 굴비 꿰어 매듯 자식들을 줄줄이 허리에 꽤차고 서울로, 서울로 향한 세대.
그런 세대에 효자노릇 톡톡히 했던 세대가 지금 40대가 아닐런지.

부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죽으라 공부를 했어야 했다.
나를 위해 공부하기보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공부해야 했다는 말이 옳을지도 몰랐다.

그 길만이 온 집안이 살 길이었고 내 어미가 목숨부지해야 할 이유였다.
그가 어찌 어찌 성공하여 자식을 낳았다.
내 부모 세대처럼 자식을 대책없이 낳아 고생하지 않겠다며 통박 하나는 잘 굴려 하나 아니면 둘만 낳았다.
그러니 자식이 입을 씰룩이기만 해도 입에 채워 주었다.
내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으나 부모에게 영향을 받은 고정된 가치관은 경제적 풍요로움에도, 시대의 변화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대는 변했는데 가치관은 그대로...
머리는 부모세대에게 물려받은 얼룩이 남아 있지만 몸은 '캔디 아빠' 노릇을 해야 했다.

자기 자식들에게는 고생 안시키고 잘 해 주어야 한다며 오냐, 오냐 키우기 시작한 세대.
난 부모에게 그리 달콤한 사랑을 받을 여유도 없이 컸으니 한풀이라도 하듯 '캔디 아빠'가 되었다.

그러니 그 자식들은 부모가 어떻게 돈을 벌어오는지 알바 아니다.
그저 학원이다, 과외다 앞세워 보내면 시계불알처럼 생각없이 왔다갔다 하면 되는 세대가 우리의 자식세대다.
이렇게 엄청난 세대 사이에 낀 '어중띤 세대'가 바로 우리 40대가 아닐까.

그래서 40대를 '어중띤 세대'라고 하고 싶다.
박완서 님은 자신의 세대가 어중띤 세대라고 어느 책에서 쓰셨다.
우리나라 말 보다는 일본말이 더 쉬웠고, 책도 일본 책이 더 쉽게 읽혀지도록 강요받으며 자란 세대라고...

그렇다면 정신적 과도기인 세대 또한 '어중띤 세대'가 아닌지.

우리의 부모 세대는 그 희생을 우리가 알아 주었다.
알아준다고 달라질 것이야 없겠지만 자식이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은 가슴 뻐근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다 보니 고생하여 골다공증 환자처럼 육신의 골이 다 빠졌어도 흐뭇한 세대가 '난 아무렇지 않아' 세대다.

그럼 이 놈의 '어중띤 세대'는 어떤가.
자식들을 사탕처럼 달콤하고 부족함 없이 키웠지만 이 놈들이 부모 알기를 뭘로 안다.
가장 따윈 안중에도 없다.
자식들이 애비 말을 가장의 말로 들어 주고 안들어 주고는 옵션이 된지 오래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이래저래 외롭다.

안그래도 힘든데 재수 옴붙게도 사회에서는 '명퇴'라는 것에 눈탱이를 얻어 맞으니 제정신은 저당잡힌지 오래다.
옛날 세대는 정년퇴직이라는 것만 있었지만 지금은 '명퇴'라는 뜨거운 감자를 늘 안고 살다보니 속이 비어가는 이 '어중띤 세대'.
까딱 잘못했다가는 가장의 자리를 부지할 수 있을지조차 불안한 이 '어중띤 세대'

이 한 해의 끝에서 왜 세대 타령인지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꼭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 '어중띤 세대'여!! 힘내시라. 우리가 누군가.
그 악조건 속에서도 담배 씨만한 희망 하나로 집안의 기둥이 되어 주었던 세대가 아닌가.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여, 이 '어중띤 세대'의 가장을 위해 힘찬 박수를 보내줄 용의는 없는가. "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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