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날 며칠 동안 이삿짐을 날랐다.
오두막을 허물고 그곳에 새 보금자리를 짓기로 했기때문이다.

남들은 말한다.
새 집을 짓게 되어 얼마나 좋으냐고.
그러나 대답은 No다.

좋기보다는 '추억어림'때문에 어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심한 날은 가슴이 울렁거리고 우울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나처럼 철저히 이방인이 되어 보지 않았기때문이다.

연고도 없는 첩첩산중으로의 귀농은 분명 예삿 일이 아니었다.
멀쩡한 직장 다 팽개치고 농사짓겠다며, 자연에서 살겠다며 내려온 일이 보통 상식으로 이해가 되는지...
등떠밀려 온 것도 아니고 내가 용감하다 못해 무식하게 밀고 내려온 곳이지만 들판에 벌거벗고 선 기분이었다.

귀농은 뭐 말라비틀어진 귀농이냐고 반대하던 내가 가장의 확고한 의지와 자연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맞아떨어져 내려온 곳이 울진에서도 오지인 쌍전리 이곳 오두막이었다.
귀농하자마자 지금껏 주현이 방으로 썼던 작은 방에서 네 가족이 올망졸망 함께 잤다.

다른 방도 있었지만 그 방이 군불을 지피는 방이라는 이유로 그리 했다.
그때는 아이들이 어렸기때문에 네 식구가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낯선 곳으로 내려온 이방인을 유독 아무 텃새 없이, 얼굴빛 하나 안변하고 반겨 주었던 오두막....
그 오두막은 도시 물들은 우리를 경계하려 하지도 않았고, 만만히 보는 법도 없었다.

추운 겨울엔 따사로이 품어 주었고, 따가운 여름엔 혹여 산골가족들 땀띠라도 날새라 흙벽으로 살글살금 바람을 불어 넣어 주었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고 고열로 잠못 이룰 때 산골가족의 등을 토닥여 주었고, 손맥박을 세며 함께 밤을 새워주었었다.

그을음이 쪄든 석가래 아래로 우리 네 식구를 긴 팔 뻗어 말없이 안아주었다.
그런 오두막이 우리에겐 강남의 무슨 팰리스보다도 훌륭한 영혼의 안식처요, 은인이요, 도반이었다.

장대와 나무껍질로 지은 위그암(인디언들의 원추형 오두막)에서 인디언들은 영혼을 맑히고, 삶을 어느 민족보다 기름지게 했듯이 이 오두막 또한 낯선 곳에서 온 우리 가족에게는 영혼을 닦아준 곳이요, 남들이 가기를 두려워하는 삶을 선택한 이방인 가족에게 한없는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혈육이었다.

이방인 가족만 오두막의 은혜를 입은 것은 아니다.
봄이면 이름모를 새들의 분만실을 처마밑에 마련해 주었고, 풀벌레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으며, 풍경과 바람이 만나는 까페가 되어 주었다.

이제 그 오두막을 허물기 직전이다.

"나의 안식처여!
고맙고, 고맙구나.
너와 함께 한 세월 결코 잊지 않으마.
너로 인해 엄동설한에도 등따순 날을 보낼 수 있었고, 너로 인해 낯선 곳에서 덜 서러웠구나.
넌 한없이 산골가족에게 베풀고 흙으로 돌아가는구나. 나의 부모가 내게 그렇게 했듯이...

나의 혈육이여!
고맙고, 고맙구나.
우리 새로운 세상에서도 서로 등 비비며 사는 관계로 만나자꾸나."

내가 귀농 짐보따리 다시 싸서 서울로 튀지 않고 잘 뻐팅기고 산 것이 내가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서 그렇다느니, 삶의 가치를 알게 되어 그렇다느니 하며 생색내기 바빴다.
지금 생각하니 그 덕은 바로 오두막에 있었던 것을....

수없이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눈물이 자꾸 흐른다.
짐승소리가 터져 나오는 입을 장갑낀 손으로 막아 보지만 도리가 없다.

포크레인이 닥아간다.
가슴은 뛰고 입에서 기도인지, 주술인지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온다.

"나의 오두막이여, 이제 다른 인연으로 우리 다시 만나자.~~~!!!"

포크레인은 제일 앞의 가작과 마루를 걷어 낸다.
바깥 마루.
문도 변변히 없어 뱀도 들어오고, 개구리도 들어오고, 도마뱀도 들어와 나를 긴장하게 해 주었던 공간이기도 했지만 햇살 가득한 가을 날 그곳에 앉아 책을 노을에 적셔 읽었던 황홀한 공간이었다.
이젠 안녕!!

다음은 주현이 방이다.

갈래 머리 유치원생으로 엄마, 아빠가 가자는대로 철없이 내려온 산골.
이제 중학교 1학년의 숙녀가 되었으니 네가 주현이를 키웠구나.
귀농하자마자 네 가족 다람쥐 가족처럼 한 방에서 누워 낯선 곳에서의 아리한 밤을 지냈었지.
그런 가족에게 구름 이불을 덮어 주며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던 작은 흙방...

그 방이 연기 속으로 사라진다.

그 연기는 산골가족의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주겠다는 다짐이라도 하듯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다음은 안의 마루를 부술 차례다.
난방도 안되는 마루였지만 겨울에 화로 가득 불을 담아 네 식구 고구마도 구워 먹고, 밤과 하얀 가래떡도 구워 먹으며 긴 겨울 잠을 함께 잤었지.
그리하여 산골 아이들의 가슴에 화롯불과 같은 뜨겁고, 정스런 추억을 담아 주었던 곳...

거친 포크레인은 나의 추억이 따라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오두막을 허물었다.
그 진행속도에 따라 나의 통곡소리도 하늘을 찔렀다.
입을 틀어 막아도 짐승처럼 터져 나오는 소리.
나와 오두막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같은 소리로 수없이 오두막에게 고맙다고 했다.

오두막은 가슴 뻐근하도록 흐느끼는 이 도반의 소리를 듣고 있는지 마는지...

이제 오두막은 나의 눈에서 사라졌다.
내 눈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산골 가족의 가슴에 더 찐한 추억의 불자국을 남겼다.
낯선 곳에서 뿌리내리려 기를 쓴 산골가족의 마음이 아플 때면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고, 육신이 탈이 났을 때는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었던 오두막이여!
이젠 ,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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