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서울에 갔었다.
어제 맘 같았으면 새벽차를 탔어야 옳았다.

그러나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이 있다고 했듯이 발목을 잡는 급한 일들.... 첫차 놓치고, 둘째, 셋째 차 놓치고....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발을 동동거리다 탄 서울행 버스....

그렇게 목동의 한 병원에 도착하여, 달랑 한 시간 엄마 얼굴을 눈에 넣고 매몰차게 돌아온 산골.

용감하게도 하루에 서울을 왕복했다.
'등이 가려워도 손이 닿지 않는다'는 오지의 별명을 가진 이 울진에서...

병실에 누워 계신 엄마의 모습을 봤을 때는 울지 않았다.
냉정한척, 침착한척 가증스러운 연기를 하고 냉정하게 돌아섰었다.

이 정도인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신이 도왔다고 떠벌리기까지 했다.

'동서울-->울진'이라고 버스 앞 유리에 이름표를 턱 붙여 놓은 버스를 타고서야 눈물이 삐질삐질 삐져나온다.

친정 엄마는 막내딸만큼은 박사 학위를 턱하니 따길 바라셨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다닐 때도 박사과정이든 , 일본유학이든 가라고 옆구리를 찌르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많이 혼나셨지만 엄마의 교육열은 조금도 식지 않으셨었다.
당신의 뼛가루를 팔아서라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셨다.

엄마의 그 헌신적이고, 눈물겨운 교육열을 난 엄마 발뒤꿈치의 때만큼도 못 따라간다.

그런 엄마가 막내딸이 농사짓는다며 산골로 들어앉는 모습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셔야 했다.
난 귀농이 새로운 삶 어쩌구 저쩌구 하며 마음을 다잡고 내려왔지만 엄마에겐 천재지변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병실의 엄마에게 더 가슴미어지게 미안했다.

그렇게 내 정신인지, 니 정신인지 분간 못하는 나를 집어 먹고 버스는 그 꼬부랑 밤길을 용케 달려 울진에 턱하니 다시 토해 놓았다.
아까 서울 가면서 세워 놓은 산골 차가 왜 그리 낯설게 느껴지는지...
아주 먼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 들 정도로 낯설어 그 똥차를 자꾸 만져 보았다.

걱정하는 초보농사꾼에게 서울상황을 설명하고 안심시켰더니 딸과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새벽까지 마주 앉은 사람은 나와 고 1이 되는 아들 선우.

엄마를 위로하려는 표정이 역력하다.
선우는 뭔가 마음이 어수선하면 방을 돌아다니는 버릇이 있다.
초보농사꾼 딱 닮았다.

그 놈이 손을 내민다.
어렵게 내가 말을 토했다.

"선우야, 엄마가 달랑 한 시간 할머니를 보고 왔구나"

"엄마, 다음부터는 후회할 일 하지 말아요. 엄마는 산골도 걱정되고, 우리도 걱정되고, 집짓는 것도 걱정되어 그렇게 아쉽게 돌아오셨을 거예요.
그러나 엄만 잘못 하신 거예요. 다 끊고 서울 할머니 곁에 계셔야 했어요. "

선우도 그 새벽까지 깨어 할머니 걱정, 엄마 걱정을 하고 있어서 힘들었는지 눈에 핏발이 섰다.

"니 눈에 핏발이 섰구나. 그만 자거라"

"엄마 , 엄마 마음 다 알아요. 엄마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다음에 이런 유사한 상황이 생기면 후회할 일 하지 마시고 뒷일은 그냥 끊으세요. 그냥 끊으셔야 해요.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구요.
엄마가 늘 그러셨잖아요.
할머니 두 분은 이제 한번 손 놓으면 그만이라고...
그러니 엄마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어린 아들의 위로가 시린 맘을 녹여준다.
나보다 속 깊은 아들도 자고, 이젠 나만 깨어 있다.
이제 내가 나를 위로할 차례다.

그러나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한 난 자신을 모질게 질책하는 밤이다.

얼마 전에 읽은 '속세의 인연'이라는 벽안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쓰신 편지글이 생각난다.

"속세의 인연"

초겨울에 문안 인사를 올렸는데
남도에는 벌써 봄이 왔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소승은 겨울 내내 방 안에 앉아 열심히 좌선을 했지만
마치 넓은 강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어느 날에나 부처의 뜻에 다가갈지 모르겠습니다.

속세의 인연을 다 할 수 없어서 어머님의 간병을 위해 만부득이 잠시 산을 내려갈 생각입니다.
곁에 있는 도반들에게 미안한 마음 그지없지만
이 하찮은 중생은 끝내 연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님이 동자인 나를 절에 맡기고 갔던 그 애절한 마음이나
아들인 제가 속세의 병든 어머니를 간병하는 마음이 그리 다를 것이 없으나 인연이란 만부득이 버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 결국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원래 중놈은 그리움이란 헛된 망상을 버려야만 함에도 시름시름 앓는 어머님을 두고서
밤마다 이렇듯 가슴이 미어져 오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나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피안(彼岸)행 열차를 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 남은 어머니에 대한 죄를 사하는 길이오니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난 아직 멀었다.
내가 조금의 지혜라도 깨우쳤을 때는
엄마는 벌써 별이 되어 산골의 막내딸을 두 손 모으고 비추고 있을 것이다.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저작권자 © 울진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