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찢었습니다.
7이라는 숫자가 어찌나 씨게 달려드는지 뒤로 자빠질뻔했습니다.

벌써 한 해의 반을 살았습니다.
살았는지, 그저 흘려 보냈는지는 나만이 아는 일이겠지요.
오늘같은 날, 뒤로 남아있는 반년을 생각하며 이를 꾹 깨물고, 양손에 힘을 불끈 줘보지만 해마다 연말의 결과물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습니다.

7월,
인디언들은 이 달을 사슴이 뿔을 가는 달이라고도 했고, 나뭇가지가 열매 때문에 부러지는 달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게 있어 7월은 중간점검의 달로, 오늘도 다시 한 번 아랫 배에 힘주고, 긴 한숨 내뱉고 용기를 가져 봅니다.

하루하루가 딱딱한 껍질 속 칸칸마다 꽉 들어찬 호두 같기를 장독대 위에 물 한 사발 떠놓고 달밤에 빌고 싶은 심정입니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백합이 입을 힘껏 다물고 내가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 시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 도반은 도반입니다.

엊그제의 일입니다.
효소실에 들어가다 세척실 큰 함지박의 물에 빠진 새를 보았습니다.
이 가벼운 것이 왜 거기에 빠져 목숨을 놓았을까...

창문을 보니 모두 닫혀 있습니다.
늘 조금씩 열어 두었다가 얼마 전에는 며칠 비가 오기에 창문을 닫았고 그 전에 들어온 새는 나가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불쌍한 생각에 건져내어 집 앞 꽃밭에 묻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생명을 묻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람이란 동물은 단순하지 못하여 그 현상만 보면 될 일을 꼴난 머리로 꼭 ‘연상’을 합니다.
늙으신 양가 부모가 살아계신 나로서는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입니다.
이번에는 수석실에 물걸레 청소를 했습니다.
수석이 진열된 구석에 새 집이 하나 있는 겁니다.
‘이곳에 새집이 있다니....‘



사람이란 동물은 때려 맞추는 것도 잘하고 엊그제 죽은 새와 연관이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일단 어린 새가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의자를 놓고 올라갔습니다.
그 손바닥만한 세계의 광경을 보고 그만 뇌진탕 걸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 안에는 이제 막 부화한 신생아 아니 ‘신생조‘ 세 마리와 미쳐 부화하지 못한 새알이 하나 싸늘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 엊그제 그 물 위에 뜬 새가 어미새였구나’
늘 조금 열어 두었던 곳으로 들락거리며 살림을 차리고 자식까지 낳았는데 비가 계속 온다고 미련한 인간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이런 변을 당한 거였습니다.

일가족의 몰살,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번에는 새집째 꽃밭에 묻어주었습니다.
마저 살다가지 못한 서러움이 꽃으로 환생하라고..

졸지에 바빠진 꽃삽의 흙을 털며 생각해 봅니다.
우리네 세상살아가는 일도 그렇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요.
그렇기에 천년만년 살 것처럼 미리 걱정하고, 한숨만 지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달마에게 물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달마가 대답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대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친국과 지옥이 나처럼 가엾은 한 사람에게 달려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에게 달마가 계속 말했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깨어 있는 사람의 자리가 천국이고 깨어있지 못한 사람의 자리가 지옥이다”

맞습니다.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지금 가진 것에 행복해 하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지요.

 

귀농 전, 도시에서의 출근길은 전투복장을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깨어지고, 피흘리고, 곪습니다.
검도선수처럼 머리엔 호구를 쓰고 철갑 옷을 입고 속에 철근이 박힌 안전화를 신어야 합니다.
또 방탄조끼보다 더 쌘 조끼를 입어야 왠만한 언어 화살에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그래도 돌아올 때는 패잔병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자연으로 출근하는 귀농 후의 아침 모습은 다릅니다.
다 닳아빠진 바지에, 강한 햇살을 받아 등이 바래질대로 바래진 윗도리, 비닐 장화를 신고 나가면 그만입니다.

그래도 돌아올 때는 콧노래 부르며 시큼한 땀 냄새에 더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둥지로 향합니다.
오늘 밭에서 퇴근하며 생각해 보니 그게 도시와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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