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며 꽃피우는 왕달맞이꽃 보는 기쁨 아무도 모를 것"
사람은 대부분 잠재적으로 때가 되면 막연하게 어디론가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사는 것같다. 연어처럼....
어떤 이는 때를 잘 가릴 줄 알아 살아 생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어떤 이는 그러지 못하고 소풍나온 좌판을 접는다는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교직에 한 평생을 몸 바치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온 서면 쌍전리 새밭의 어느 귀향인을 만나 보았다.
▷ 대부분의 경우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 고향으로 오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 울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고향을 떠났다. 그러니까 39년 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다. 밖에 있으면서도 주말마다 고향집에 와서 농사를 지으며 내 손때를 늘 묻혀 두고 갔었다.
그러면서 ‘난 고향으로 돌아갈거다’라며 다짐, 아니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웠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고향집으로 돌아온 것은 하루 아침의 생각이 아니다.당연한 결과이다.
▷ 다른 사람들은 교장이 되면 재임받아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데 3년 반 정도 정년을 남겨 두고 퇴직한 이유가 무엇인지?
- 공직자들은 아래 사람을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리가 순환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사 한 사람이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새로운 교사를 채용하고, 교감, 교장의 승진 기회 등이 주어진다.
교육개혁 별 거 아니다.
그런 기본적인 자세부터 변화가 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교직생활을 하면서도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했었는데 고향에 돌아와서도 아래 사람을 섬기고 정보도 서로 공유할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나이들기 전에 실천하고 싶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것을 잘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싶었다.
▷ 고향으로 돌아온지 5개월되었는데 그동안 느낀 점이 있다면...
- 이곳으로 둥지를 틀고 나서 야콘농사도 짓고, 들꽃도 키우고 있는데 일이 힘들어도 자연과 함께 있다 보니 새로운 의욕이 생겨 신바람이 난다.
돈만 벌어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다면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차 한 잔 놓고, 막걸리 한 잔 놓고 이야기 하는 재미 또한 교직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한 이곳만의 기쁨이다.
5개월 동안 방문한 사람만 해도 약 500명을 넘는다.
안동대학교 교수님과 학생들, 평생교육원생들, 교육자, 퇴직한 교감, 교장 선생님들, 봉화군청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거기다가 귀농하고 싶다고 땅 구해 달라는 사람들도 많다.
시골마을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시골이 활성화된다면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람있었다.
▷ 농촌이 변해야 된다고 많이들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철학이 있다면...
- 농산물의 수확량이 문제가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작물에 관심을 갖고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농사만으로는 제자리 걸음 밖에 되지 않는다.
농사 이외에 농촌관광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촌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조상들이 했던 자취를 더듬어 보는 문화, 함께 즐기는 문화, 다시 먹어보는 문화 등을 찾아내어 지금 농촌에 접목시키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생각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누군가 솔선수범해야 하는데 미흡하나마 그 역할을 하고 싶다.
▷ 듣기로는 꽃이 필 때, 펑펑 소리를 내고 빙글빙글 춤추는 꽃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꽃인가?
- 몇 년 전에 울진에서 거의 사라져 가는 왕달맞이꽃을 아내와 발견했을 때 한없이 가슴이 뛰었다. 조심스럽게 그 꽃의 씨를 받아 번식시키고 있는 중이다.
다른 달맞이꽃과는 달리 왕달맞이꽃은 소리를 내고 춤추며 꽃을 피운다.
이런 야생화가 흔치 않다.
신기하지 않은가. 다른 야생화도 있지만 현대인들이 이런 꽃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면 여간 기쁘지 않다.
어스름 날이 저물면 기다렸다는듯이 제 몸을 흔들며 꽃을 피웠다 아침 7시 해가 뜨면 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년 친환경농업엑스포 때에도 왕달맞이꽃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장소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엑스포를 보러온 사람들에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메리트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 사실 농장 주위를 가꾸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조경업자에게 돈만 주면 더 번듯하고 깔끔하게 조성해 주겠지만 거기에는 사랑과 정이 결여되어 있다.
사랑과 정으로 마을을 가꾸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하고 싶다.
그리고 야생화 등을 더 많이
그리하여 나 한 사람보다 마을 전체가 고부가가치를 올리고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보도 서로 공유하고,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노력해나가려고 한다.“
남명화 교장은 집 뒤에 협소하지만 옛날 조상들이 쓰던 생활용품과 농기계를 보관, 전시도 하고 있었다. 또한 야생화를 키우고 농장 주위에 손수 연못과 정자도 만들어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고향의 품과 같은 포근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환한 낮에 찾아 갔는데 해가 지면 꽃이 소리를 내고, 춤을 춘다는데 안보고 올 수 없었다.
과연 어둠이 깃들자 소리를 내고, 빙그르 돌면서 왕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위가 달처럼 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신이 나서 낯선 방문자에게 설명해 주는 어느 퇴직 교장선생님의 적극적인 모습에서 시골의 힘찬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남명화(1949생) 님의 약력
삼근초등학교 쌍전분교장 졸업
울진중학교 졸업
울진농업고등학교를 나와 대구교대 부설 초등교원양성소 수료,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과 졸업
영덕군 병곡북부, 성호, 울진군 삼당, 죽변, 쌍전분교, 삼근, 영주시숭흥 등에서 교사생활을 했고, 울진군 평해, 봉화군 서벽, 동양, 영주시 풍기북부 등에서 교장으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