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고,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뻑하면 배신 때리고, 그 놈의 입 간수 못해 내가 한 말 죄다 남의 귀에 쏟아 부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보다 귀농하고 너를 믿고  한 말이 참으로 많았다.

너에게는 기쁜 일보다는 속앓이를 하는 일을 더 털어 놓았었지.
주현이가 아프다고, 그래서 오늘 포항 병원에 다녀왔다고, 초보농사꾼과 말다툼했는데 참 밉다고, 귀농한 막내딸을 늘 마음 저려 하시던 친정 엄마가 교통사고로 입원하셨다고, 초보농사꾼을 은인이라고 말하던 같은 입으로 그가 초보농사꾼을 욕하고 다닌다고....

남들에게 말하기 싫은 사연들을  난 너에게 시도 때도 없이 쏟아냈었지.
세상 돌아가는 것으로 치자면 난 너에게 상담료나 컨설팅 비용을 톡톡히 지불했어야 했단다.

그러나 넌 손사래를 치며 조용히 내 말에 귀기울이기만 했지.
자기는 어떤 위로도 못해 준다고 시무룩해 하는 날에는 오히려 늘어놓던 나의 사연을 걷우고 너를 위로해 줄 때도 있었지. 그건 가뭄에 콩나듯한 빈도였어.

사람들 사이에는 정(情)의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너희들과는 그 편차가 없었지.
내가 안좋은 일로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너희들은 깨금발을 떼고 내 뒤통수가 안보일 때까지 응원을 보내주곤 하던 순간을 내 잊지 않으마.

너 살기도 빠듯하다는 사실을 알지.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로 인간을 정화시키는 일 말고도, 끊임없이 벌과 새들에게 네 존재를 알려야 하고, 가뭄이나 장마 준비를 미리미리 해 두어야 하고, 다른 벌레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독특한 냄새를 만들어 내 풍겨야 하고, 자손 번식을 위해 열매 단도리도 해야 하는줄 아는 알지.

거기다가 나의 하소연을 들어 주어야 하고, 전신을 다해 위로하느라 너 또한 뜬 눈으로 밤새운 날도 많으니 과로사할 지경이었을줄 나는 알지.

그래서일까.
넌 오늘 결국 이 작은 터전에서 열반에 들었구나.
생기돋는 일만 생각하고 들어야 그 기운으로 좋은 일이 생기는데 이건 허구헌날 내 하소연과 푸념만 들으니 그만 병이 생긴게로구나.

너도 도반 잘못 만나 한 생을 이리 접는다 생각하니 한없이 안스럽고 미안하구나.
그런 너에게 가뭄이 심할 때 목 축이라고 물 한 사발 보시하지도 못한 나에게 넌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반이 되어 주었지.

하지만 그래도 입은 살았다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그대 다시 태어난다면 그 때도 나의 도반이 되어 주렴.

인간이 이렇단다.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난다는 것을 내 믿으마.
그럼 평안히 열반에 들길..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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